<정글의 법칙>, 그들이 정글로 떠난 이유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쓴 <총 균 쇠>는 인류 문명의 흐름이 인종적이고 민족적인 차이 때문이 아니라 총, 균, 쇠로 대변되는 환경적 요인 때문에 지금 같은 구도가 생겨났다고 말한다. 이 책은 서구인들이 과거 원주민을 바라보는 시각을 뒤집는다. 그들은 정글에 사는 원주민들을 자신들의 입장에서 미개인으로 바라봤지만 사실은 다르다는 얘기다. 결국 자기 입장으로만 본 서구인들은 원주민들을 그들의 땅에서 몰아내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총 균 쇠>는 결국 이런 잘못된 시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책이라고 볼 수 있다.
'정글의 법칙'(사진출처:SBS)
<정글의 법칙>을 보다 보면 바로 이런 시각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은 먼저 정글에 들어가 너무나 다른 극한의 환경 속에서 적응해나가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도시에서라면 상상도 못할 벌레나 뱀 같은 걸 잡아먹고, 나무 꼭대기에 기어 올라가 야자수를 따먹으며 물고기를 잡아먹는다. 나무를 잘라 집을 짓고, 뗏목을 만들어 강을 건넌다. 한밤에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부서질 것 같은 집안에서 오돌오돌 떨기도 하고, 달려드는 벌레들의 습격에 온 몸을 흙에 묻어두고 잠을 청하기도 한다.
그렇게 지나다보면 차츰 정글의 환경에 익숙해진다. 그렇게 한 차례의 정글 체험이 끝나고 나면 이어지는 것이 그 지역에 사는 부족을 찾아가는 일이다. 아프리카 나미비아에서 찾아간 힘바족들에게서 온 몸에 붉은 색으로 진흙을 바르고 소와 염소를 목축하며 통나무로 엮고 진흙을 발라 만든 집에서 그네들의 생존법칙을 배운다. 파푸아의 코로와이족에게서는 마치 새둥지처럼 나무 꼭대기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배우고, 바누아투의 말말족에게서는 박쥐와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배우기도 한다.
시베리아 툰드라에서 만난 네네츠족도 마찬가지다. 먹을 것을 찾기가 힘들고 극한의 추위 속에서 그저 계속 걷기만 해야 하는 병만족에게 네네츠족은 자신만들의 법칙을 보여주었다. 손님이 찾아오면 이유도 어디서 왔는지도 묻지 않고 일단 며칠을 극진히 대접해준다는 것. 처음 보는 병만족에게 유목텐트로 초대해 아낌없이 먹을 것을 내주는 모습은 그들의 생존 법칙이 ‘공존’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런 그들만의 생존법칙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들만의 이익과 시각을 고수했을 때 저 서구 식민지시대의 비극이 생겨나는 것일 게다.
너무나 우리와 닮아있는 네네츠족을 만난 병만족들이 그들과 함께 사냥을 나서고 거기서 잡은 새를 네네츠족의 한 어머니에게 주는 풍경은 그래서 의미가 새롭다. 또 그들 원주민들이 극한의 툰드라에서 살아갈 수 있는 노하우가 묻어나는 그들의 생활터전을 보고 감탄하는 병만족들을 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아마도 그 힘겨운 고행의 단계를 넘어왔기에 원주민들의 지혜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갖게 된 것일 게다.
이 예능 프로그램이 굳이 <정글의 법칙>이라 이름 지어진 이유는 저 <총 균 쇠>가 보여주는 시각, 인간의 법칙이 아니라 자연의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는 그 겸손한 자세를 견지하려는 의지일 것이다. 물론 그 야생의 공간이 너무 자극적이고 혹독하다는 비판적 시각이 있다. 하지만 <고쇼>에서 고현정이 “여기와 거기 중 어디가 더 힘드냐”는 질문에 했던 김병만의 답변을 떠올려보자. 김병만은 그 곳은 육체적으로 힘들지만 정신적으로는 평온하다는 이유로 이곳이 그곳보다 더 힘들다고 말했다.
아마 대다수의 시청자들은 정글의 그 혹독함을 보며 김병만의 말이 잘 납득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정글을 제대로 경험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 놓여진 그만한 거리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 거리감, 즉 문명이 편안하고 좋은 것이며 자연이 힘겨운 것이기 때문에 좋지 않은 것이라는 부지불식간에 만들어낸 문명인의 시각을 깨주는 것이 어쩌면 <정글의 법칙>이라는 프로그램의 의미가 아닐까. 이것이 그들이 그 힘겨운 정글로 떠난 진짜 이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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