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가 리얼 버라이어티에 미치는 영향
나영석 PD가 최재형 PD로 바뀌고 멤버들도 대거 교체되면서 <1박2일>의 가장 큰 공백은 PD의 자리였다. 내성적이고 유순한 성격의 최재형 PD는 방송에 얼굴을 내미는 것을 꺼려했다. <1박2일> 같은 미션형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PD의 캐릭터는 상당히 중요하다. 미션을 전달하고 수행시키는 PD의 캐릭터에 따라 연기자들의 캐릭터도 달라질 수 있고 따라서 미션 내용도 팽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1박2일'(사진출처:KBS)
<1박2일>의 초대 PD였던 이명한 PD는 ‘독한 PD'로서의 캐릭터를 세움으로써 프로그램에 야생의 느낌을 불어넣었다. 그간 예능에서 연예인들이 복불복으로 쫄쫄 굶기도 하고 또 텐트치고 1박을 보내는 장면 자체가 화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명한 PD의 독한 캐릭터가 프로그램의 분위기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바톤을 이어받은 나영석 PD는 독하다기보다는 장난꾸러기 같은 캐릭터로 연기자들을 몰아세웠다. “안됩니다!”와 “땡!”으로 이승기가 재현해냈던 것처럼, 그의 캐릭터는 누가 뭐래도 복불복 룰은 지켜져야 한다는 고집불통의 이미지에다, 악동 같은 귀여운 면모까지 덧붙여져 사실상 <1박2일>의 연기자들 못지않은 캐릭터로 급부상했다.
새롭게 <1박2일>을 맡게 된 최재형 PD는 그러나 초반 이런 분위기에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룰을 세웠다가도 “처음이니까...”라며 양보를 해주는 모습은 그의 선한 성격 그대로였지만,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PD 캐릭터로서는 너무 심심해보였다. 그러던 그는 조금씩 자신의 캐릭터를 드러냈다. 그는 새를 닮았다고 새PD라 불리며 전 PD였던 나영석 PD와 비교 당하기도 했고, 연기자들과의 족구대회에서 헛발질을 하면서 ‘족구계의 엄태웅’이라는 굴욕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다가 '여름방학특집 3탄-백투더베이직(BACK TO THE BASIC)'에서 최재형 PD는 디비디비딥 게임으로 무려 15연패를 당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확고한 그만의 캐릭터를 만들었다. 그를 따라다니며 한 게임 더 하자는 김승우를 뿌리치며 도망가는 모습이 만들어낸 굴욕 캐릭터는 김종민과의 오목대결에서도 이어졌다. 김종민에게 진 최재형 PD는 김승우를 이긴 후에 그에게 복수하듯 “김종민 아래 아래”라고 김승우를 놀리기도 했다. 자신의 굴욕을 감수하면서까지 김승우에게 당한 걸 설욕하려는 모습은 독특한 최재형 PD만의 캐릭터 색깔을 분명히 했다.
최재형 PD의 캐릭터는 기존 PD들과 달리, 연기자들을 몰아세우려다가(당한 것 때문에) 오히려 자신이 당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나온다. 어딘지 <1박2일>이라는 복불복 프로그램에 잘못 걸려든 것 같은 인상을 보여주는 최재형 PD는 그래도 열심히 하려 하지만 이미 적응할 대로 적응되어 여우가 되어있는 연기자들에게 오히려 당하는 캐릭터. <톰과 제리>에서 강한 힘을 가졌지만 오히려 당하기만 하는 톰을 닮았다고 할까. 이 당하는 이미지는 어딘지 최재형 PD의 어리숙함 속에 담겨진 선한 심성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사실 연기자들도 자신의 캐릭터를 세우기까지는 그만한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이수근이 지금처럼 <1박2일>의 중추가 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캐릭터를 잡기까지 무려 1년이 넘게 기다려준 덕분이다. 하물며 역할이 다른 PD는 오죽할까. 최재형 PD도 사실상 자신의 캐릭터를 끄집어내는데 그만한 시간이 필요했던 법이다. 지나와서 생각해보면 그에게 이명한 PD나 나영석 PD가 보여주었던 캐릭터를 강요했다면 그것은 오히려 부자연스러웠을 것이라 여겨지기도 한다. 그 부자연스러움은 자칫 연기자들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최재형 PD가 제 역할과 캐릭터를 찾아내면서 <1박2일>은 훨씬 생기를 되찾게 되었다. 리얼 버라이어티는 그 성격상 누군가 당하면 당한 대로 돌려주기를 반복하면서 그 역학의 힘에 의해 추동력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제 당했던 최재형 PD가 좀 더 강한 미션으로 연기자들을 몰아붙이는 것이 자연스러워질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연기자들은 제리가 톰을 곯려주듯 반격을 가할 것이지만.
물론 <1박2일>은 여행이 그 핵심적인 소재이지만, 그 여행을 즐겁게 이끌어가는 과정으로서의 연기자들과 제작진 사이의 역학관계가 중요한 프로그램이다. 유독 ‘망했어요’라는 자막이 많이 등장하게 된 이 프로그램에서, 새 되는(?) 입장으로 캐릭터를 세운 새 PD는 이제 프로그램을 기대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1박2일>의 부활은 어쩌면 새 PD의 캐릭터가 생겨나는 과정과 비슷한 궤를 그리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옛글들 > 명랑TV'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가수', 새가수 초대전, 지지받은 이유 (2) | 2012.09.05 |
---|---|
주말예능이라면 <정글의 법칙>처럼 (0) | 2012.09.04 |
'슈스케4', 강용석 없이도 충분한 이유 (0) | 2012.08.26 |
티아라의 방송 강행, 무리수인 이유 (1) | 2012.08.24 |
강호동 복귀, 그 메가톤급 파장은 (6) | 2012.08.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