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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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의 제왕', 왜 제목처럼 안될까

D.H.Jung 2012. 11. 28.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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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의 제왕>, 재미있지만 부족한 2%

 

이 거창한 제목의 드라마, 왜 제목처럼 되지 못할까. 아마도 <드라마의 제왕>이 그저 그런 드라마라면 이런 질문은 쓸데없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궁금증이 드는 것은 이 드라마가 꽤 재미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대본도 탄탄하고 연출도 나무랄 데 없으며 연기도 좋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이렇게 잘 만든 드라마도 흔치 않은데 왜 시청률은 좀체 오르지 못하는 것일까.

 

'드라마의 제왕'(사진출처:SBS)

물론 작금의 시청률이라는 게 그 드라마의 인기를 정확히 말해주는 척도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드라마의 제왕>에는 대중적으로 부족한 2%가 존재한다. 그것은 대중들이 정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다. 애매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이렇게 질문으로 바꾸면 좀 더 명쾌해진다. 왜 대중들이 굳이 다른 드라마가 아니라 <드라마의 제왕>을 봐야 할까.

 

드라마를 보는 이유는 참으로 다양하다. 어떤 이들은 연기자들 때문이라고 하고, 어떤 이들은 그 스토리가 주는 재미 때문이라고 한다. 또 어떤 이들은 아예 내용과 상관없이 거기 나오는 패션이나 스타일 때문이라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일반 대중들이 드라마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그 이야기가 자신과 무관하지 않다는 정서적인 유대감 때문이다.

 

<드라마의 제왕>은 드라마를 소재로 다룬다. <경성의 아침>이라는 드라마를 제작하기 위해 사활을 걸고 뛰는 앤서니 김(김명민)과 그를 방해하고 막으려는 제국프로덕션의 오진완(정만식)의 대립구도가 기본구도이고 이 위에 작가 이고은(정려원), 남주인공 강현민(최시원), 감독 구영목(정인기), 여주인공 성민아(오지은)와의 갖가지 충돌과 사건사고를 펼쳐놓았다. 드라마 한 편을 만드는 데 넘어야 할 무수한 산들이 극의 위기상황과 대립구도로 제시되는 식이다.

 

<드라마의 제왕>은 그래서 마치 게임을 하듯 끝없는 위기상황과 해결의 반복으로 이뤄져 있다. 드라마 투자를 위해 간신히 작가를 잡아오면 편성이 문제가 되고, 편성을 따려 하면 연기자가 문제를 일으킨다. 편성도 확정되고 연기자도 결정된 상황에서는 감독이, 그리고 그 다음에는 여주인공이 하나의 숙제로 제시된다. 끝없는 미션이 제시되기 때문에 드라마에 일단 발을 디디면 언제 시간이 그렇게 흘렀는지 모를 정도로 속도감 있게 흘러가는 장점이 있다.

 

이것은 전형적인 미드식의 장르 드라마 구조다. 재미도 있고 무엇보다 이야기 전개에 있어 속도감이 좋지만 이 게임 식의 전개방식 속에 빠져 있는 것이 이미 전술한 대중들이 참여할 수 있는 2%의 공간이다. <드라마의 제왕>은 그 롤러코스터에 타면 빠르게 흘러가는 스토리가 대단히 재미있지만 정작 드라마가 갖는 의미는 빠져 있다. 왜 대중들은 드라마를 보는가. 드라마는 대중들에게 어떤 의미인가.

 

바로 이 점은 그토록 드라마를 제작하려는 앤서니 김의 꿈과 관련된 이야기일 것이며, 또한 그가 그렇게 힘겹게 만들려는 드라마가 어떤 가치를 갖느냐의 질문이기도 하다. 그저 앤서니 김의 성공을 위해, 혹은 돈을 벌기 위해 드라마를 만드는 것이라면 그것이 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 수 있을까. 물론 복마전이 되어버린 드라마판을 보는 재미가 있겠지만 그것만으로 일반 시청자들이 채널을 고정시킬 강력한 동인이 되지는 못한다.

 

<드라마의 제왕>은 재밌다. 하지만 그 재미는 정서를 동반하지 않는다. 시청자들이 앤서니 김의 성공을 지지하는 그 마음이 생겨나질 않는다. 그가 놀라운 꼼수를 써서 위기를 모면하고 한 단계씩 정상을 향해 달려가는 그 과정은 머리를 즐겁게는 하지만 마음까지 뿌듯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바로 이 안타까운 2%를 채워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것만 있다면, 어쩌면 이 괜찮은 드라마는 제목 값을 해낼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