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풍수>, 극적 구성이 안 보이는 이상한 사극
보통 출생의 비밀 코드를 쓰면 두 당사자가 만나기 전부터 시청자들은 잔뜩 기대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대풍수>는 좀 다르다. 어린 시절 수련개(오현경)에 의해 쫓기는 신세가 되어버린 지상(지성)이 결국 우여곡절 끝에 자신의 친 어머니인 영지(이승연)와 대면하게 되고 심지어 영지가 지상이 자신의 아들임을 알게 되는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극적 기대감을 느낄 수 없다. 그들은 그저 우연히 마주친 것 같은 인상이 짙다. 왜 이런 밋밋한 전개가 되어버리는 걸까.
'대풍수'(사진출처:SBS)
이것은 수련개가 자신의 친 아들인 정근(송창의)에게 자신이 본래 친모임을 밝히는 장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정근을 제거하려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수련개가 옥사에 있는 정근을 찾아와 도망치게 하려 하자, 그녀를 믿지 못하는 정근을 설득하기 위해 사실을 털어놓는 것. 그리고 갑자기 들이닥친 자객의 칼을 대신 받아내는 것으로 수련개는 자신이 정근의 친모임을 증명한다. 어찌 보면 굉장히 드라마틱할 수 있는 만남이지만 실제 방송분을 보면 전혀 그런 극적 긴장감이 살아있지 않다.
아마도 <마의> 같은 작품에서 출생의 비밀을 드러내는 시퀀스라면 거의 한 회를 소진하면서 그 극적 긴장감을 만들어내려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시청자들을 더욱 몰입시킬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이기도 하다. 이러한 극적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효과야 말로 출생의 비밀이라는 장치가 거의 대부분의 드라마에 들어가 있는 이유다. 그런데 <대풍수>는 이 중요한 시퀀스 두 개를 그저 밋밋하게 흘려보냈다. 어째서 이런 결과가 생긴 걸까.
<대풍수>는 조선을 창건한 이성계(지진희)를 다루지만 그가 중심이라기보다는 그를 만들어내는 킹메이커들의 이야기다. 거기에는 지상 같은 고려 말 최고의 명리학자도 있고, 무학대사(안길강) 같은 고려 말의 승려도 있다. 소재가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소재를 다루는 방식이 효과적이지 못한 면은 두드러진다. 위에서 예로 든 것처럼 <대풍수>는 극적 효과를 주어야 하는 지점에서 그다지 힘을 발휘하지 못함으로 해서 시청자들의 몰입을 유도해내지 못하고 있다.
항간에는 <대풍수>의 인물들이 너무 많다는 지적을 한다. 일견 맞는 이야기다. <대풍수>가 여느 사극보다 어려운 점은 이성계나 공민왕, 최영 장군 같은 역사적인 인물을 전면에 세우면서 동시에 그들 뒤에서 역사를 만들어가는 지상이나 반야(이윤지), 무학대사 같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두 부류의 인물들의 이야기가 병렬적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극의 초점이 흐려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 현재 <대풍수>가 딱 그 형국이다.
사극처럼 장기적으로 방영되는 드라마에서는 각 회(혹은 2회 분량정도)에서 정확히 집중해야 하는 미션이 제시되어야 한다. 그래야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가 명확해지고 캐릭터들도 차츰 선명해진다. 하지만 <대풍수>는 그저 매회가 흘러가는 느낌이다. 하나 하나의 이야기들이 순차적으로 정리되어 전개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극적인 방점이 매회 찍히지 않는다. 이것은 치명적인 약점이다.
물론 이것은 너무 많은 인물들의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다루려 하는 과욕이 부른 결과일 수 있다. 하지만 사극에서 이 정도의 인물은 그다지 많다고도 할 수 없다. 결국 이성계가 주인공인지 지상이 주인공인지 알 수 없는 극적 구성없는 밋밋한 병렬적 스토리 나열은 시청자들을 혼돈에 빠뜨릴 수 있다. 도대체 어디에 집중해야 할 지 알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소재의 문제라기보다는 작가 역량의 문제라고밖에 할 수 없다.
<대풍수>는 지금이라도 이야기의 중심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축을 중심으로 각 사건들을 모아 나가야 한다. 그래야 그 중심(인물)의 이야기만을 시청자들이 따라가더라도 주변(인물)의 사건들이 자연스럽게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이런 변화를 모색하지 못한다면 <대풍수>는 지금껏 사극 중 극적 구성이 보이지 않는 이상한 사극으로 시청자들의 뇌리에 남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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