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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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올라야(?) 시청률이 오른다

D.H.Jung 2006. 5. 2.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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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퀴즈 프로그램 참여기

우여곡절 끝에 <우리말 겨루기>에 출연했다. 무려 스무 번도 넘게 낙방한 끝에 올라간 자리였지만 실력이 부족했는지 1단계에서 맨 꼴찌로 떨어졌다. 기분이 좋았던 것은 방송을 만드는 분들의 진지함 때문이었다. 그 진지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어줍잖은 방송출연의 경험 때문이었을까. 필자는 우리말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래서 TV속 네모난 세상을 둘러보니, 요즘 방송에는 ‘말이 올라야 시청률이 오른다’고 해야할 만큼 우리말에 대한 프로그램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걸 감지할 수 있었다. 영상의 물결이 봇물을 이루는 이 시대에 우리말과 우리글에 대한 프로그램이 많아지는 이유는 도대체 왜일까.

TV매체와 인터넷 세대
인터넷이라는 쌍방향 미디어의 탄생은 TV의 전망을 불투명하게 할거라는 막연한 추측과는 정반대로, 최근 TV와 인터넷 사이는 신혼부부처럼 따끈따끈하다. TV가 가진 영향력과 인터넷의 양방향성이 만나면서 그 폭발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SBS <야심만만>은 MSN의 사용자 ‘만 명에게 물었습니다’를 통해 그 소재를 발굴해내고 있고, 최근 인기가도를 달리고 있는 KBS <상상플러스> 역시 포털사이트 네이트의 설문조사 및 검색을 활용하고 있다. 이것은 수동적인 시청자가 아니라 직접 참여하는 인터넷 세대들을 적극 끌어들이려는 TV의 노력과, TV라는 거대매체에 자사의 간접광고효과를 노리는 인터넷 매체간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것은 또한 실생활에 깊게 들어와 있는 ‘TV와 인터넷(요즘은 이 말을 거의 한 단어처럼 같이 사용하는 것 같다)’의 영향력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젊은이들이 나누는 대화의 대부분은 TV 프로그램인 경우가 많고, 그 TV프로그램에 대해 가장 격렬한 말이 오고가는 곳이 바로 인터넷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니 ‘의견을 받아들여 방송을 한다’는 형식은 여러모로 유용한 셈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이 있다. 네티즌들이 알게 모르게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해 의견을 개진하면서 민감해진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언어’이다. 소위 말하는 댓글, 악플, 노플 등은 네티즌들에게 언어가 얼마나 중요한 양식(糧食)인가 하는 것을 말해준다.

영상세대들은 글을 멀리할거라고?
한때 영상세대니 뭐니 하면서 이제 그들에 의해 문자는 버려지고 영상만 남을 거라는 오해를 심어줄 만한 신문사설들이 줄을 이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이건 매체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처사다. 매체는 신문 같은 문자매체와, 방송의 영상매체, 그리고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전자매체가 있는데 당시에 죽게된 것은 문자매체였을 뿐, 문자 그 자체는 아니었다. 글, 말, 문자는 고스란히 영상매체 속으로 들어왔다. 우리는 전에 없는 수많은 글들을 읽어가며 영상을 보게 되었다. 신문의 기능은 그대로 인터넷 신문으로 넘어오면서 보다 역동적(interactive)으로 변모했다. 오히려 영상세대들은 문자에 더 민감해졌다. 신문이 일방적으로 문자를 던졌을 뿐이라면 이들은 그 문자가 던져지는 동시에 수많은 다른 이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영상세대들이 문자를 멀리할 거라는 기존의 통념을 뒤엎고 오히려 문자에 민감하게 된(문자메시지의 범람을 보라!) 전후 사정이다.

말이 오르는 프로그램이 잘 나갈밖에
그러니 언어를 다루는 프로그램은 초미의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말 겨루기>는 KBS가 아마도 공영방송이라는 취지를 갖고 시작한 프로그램이었던 것 같다. 2003년 정재환이 진행하던 이 프로그램은 이제 한석준 아나운서로 바톤을 이어가고 있다. 초창기에 이 프로그램이 그렇게 인기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말에 대한 비상한 관심들은 그대로 이 프로그램의 인기에 불을 붙였다. 같은 월요일 연예오락프로그램인 <야심만만>이 16% 정도의 시청률을 기록하는데, 시사교양프로그램인 <우리말 겨루기>가 14%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는 것은 경이적인 일이다. 이 프로그램의 인기비결은 첫째 인터넷을 통해 시청자들이 직접 참여하는(방송까지) 프로그램으로 매니아층이 두텁다는 것이고, 둘째는 정통 퀴즈프로그램이 갖는 긴박감이 시청자들에게 손에 땀을 쥐는 재미를 준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특정한 지식이 아닌 우리말 겨루기라는 특성이 있어 누구나 참여가 가능하고, 거기서 잘만 하면 꽤 많은 상금을 얻을 수도 있다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말에 대한 정보냐? 오락이냐?
하지만 <우리말 겨루기>와는 다른 <상상 플러스>의 ‘올드&뉴’와, 이러한 추세에 발맞춰 MBC에서 야심 차게 기획한 사투리 퀴즈쇼 <말 달리자>는 시청률 상승의 요인이 조금 다른 곳에 있다. 당연한 것이지만 연예 오락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우리말 겨루기>가 추구하는 정보의 즐거움보다 오락에 더 치중한다는 것이다.

<상상 플러스>의 ‘올드&뉴’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 사람들은 ‘바로 이거다!’ 하고 손뼉을 쳤을 것이다. ‘세대간의 벽을 허문다’는 취지에 많은 사람들이 동감했고, 그 재미있는 진행에 빠져들었다. 노현정이라는 재치 있는 아나운서의 전격기용은 프로그램의 균형(재미와 정보)을 유지하는 역할을 해주었다(적어도 처음에는). 하지만 ‘혹시나’는 ‘역시나’로 흐르고 있다. 명분을 어느 정도 쌓고 시청률이 본 궤도에 오르자 본격적으로 재미를 추구하게 됐고 그러자 정보성은 퇴색되었다. 그러자 올바른 말을 추구한다던 이 프로그램의 취지가 무색하게도, 출연자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바로 네티즌들의 공격 대상이 되었다.

최근에 시작한 MBC의 <말 달리자>는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주는, 사투리를 알자는 좋은 취지로 일단 초기의 합격점을 받은 듯 하다. 사투리로 일반인이 설명하고, 그 문제를 푸는 연예인들의 답답함은 웃음을 자아내게 하면서도 우리 사투리를 다시 보게 하는 힘이 있다. 이 프로그램에는 연예인들(가수, 배우, 개그맨을 망라한)은 물론, 아나운서, 국립국어원에서 나온 전문가까지 실로 종합선물세트라고 할 만큼 각계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것은 역시 재미와 함께 정보성(교육성)을 최대한 가미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하지만 저 <상상플러스>가 초기의 뜻과는 달리, 개봉하는 영화나 신보의 홍보마당이 되는 현상을 보면서, 그 뜻이 얼마나 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소통부재의 세상, 유쾌한 웃음의 장이 되길
우리말에 관련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등장해 호응을 얻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소통부재의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세대간의 언어장벽은 그렇지 않아도 깊은 세대간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어 버린다. 사투리는 이제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지만 이 아름다운 지역색은 상호간의 깊은 이해가 없이는 정치적으로 이용될 소지가 다분하다. 따라서 서로의 사투리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 그 지역 간의 골을 없애는 길이다.

굳이 ‘말이 올라야 나라가 오른다’하고 거창하게 말할 필요는 없다. 단지 우리말을 가지고, 지역을 불문하고 남녀노소가 함께 웃고 즐길 수 있는 장이 펼쳐지길 기대할 뿐이다. 아쉬운 것은 시사교양 프로그램으로서 당연한 것이지만, <우리말 겨루기>가 그나마 세대간의 장벽을 넘어서 누구나 쉽게 즐기는 프로그램인 반면, 다른 오락 프로그램들은 젊은 세대들만 공감하는 프로그램인 것 같다는 점이다. 부디 이 좋은 ‘말의 잔치’가 그들만의 ‘말잔치’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