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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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시청자를 분노에 중독시키는 TV

D.H.Jung 2006. 5. 22.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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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출동 SOS 24와 폭력이 난무하는 드라마들

세상은 살만한 곳이 못된다. 비이성적이고 비상식적이며 반인륜적이고 폭력적인 곳, 그 곳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사실이 아니라고? 그렇다면 지금 당장 리모콘을 들고 파워 버튼을 눌러라. 일주일 동안 그 네모난 세상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당신은 살맛이 뚝 떨어질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그 일주일만에 이상한 일이 당신에게 벌어진다. 세상은 살만한 곳이 못된다는 건 알았는데, 그래서일까. 자꾸만 TV만 쳐다보게 된다는 것이다. 끝없이 차오르는 분노를 삼키면서. 거기 등장하는 악역들의 끝장을 볼 때까지. 당신은 TV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긴급출동 SOS 24>, 악이 지배하는 세상
폭력남편, 폭력아들, 10살짜리 폭력아이, 여자 스토커, 친형의 폭력과 여동생과의 근친상간, 폭력을 숨기는 아내, 12살짜리 폭력아들, 폭행 당하는 칠순 노모, 쓰레기집 아이들, 5살짜리 앵벌이, 입양아들에 대한 폭행, 무서운 삼촌에 의해 폭력을 당하는 모녀, 버려진 세 자매, 결벽증 아빠의 폭행, 엄마에게 감금당한 아이들, 17살 땅거지, 앵벌이 가족, 매맞는 남편, 현대판 노예할아버지...

지금까지 이 프로그램에서 방영된 내용들을 열거하자면 상습적으로 노출되는 단어가 눈에 띌 것이다. 바로 ‘폭력’, ‘폭행’이다. 충격적인 사실들을 접하고 나면 잠시 이성은 사라지고 저 TV 속의 악마에 대한 분노와 살의로 불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니 웬만큼 중독에 약한 사람은 이 프로그램을 보지 않는 편이 낫다. 악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그것만이 전부인 것처럼 세상을 보게 되고, 사회에 대한 과잉대응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프로그램은 말한다. 차마 묵과할 수 없었다고. 자신들이 유일한 해결사인 것처럼 나서야만 했다고. 명분을 얻었으니 그 악이 가득한 영상들은 이제 무차별적으로 방영된다. 그러나 그런다고 세상이 달라질까. 아니 그들이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생각을 가진 적은 있었을까(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이 제작자들은 좀더 악의에 찬 세상을 꿈꾸는 것만 같다). 사회의 어둠을 없애는 것은 어둠을 들춰내는 것이 아니고 빛을 끌어와 그 어둠을 조금씩 없애는 것이다. 어둠을 그대로 꺼내 보인다면 분노가 분노를 부르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어찌됐건 시청률은 오르기 마련이다. 이미 자극에 중독된 이들은 다른 프로그램이 시시해서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자 드라마들도 꿈틀대기 시작했다.

분노의 힘으로 끌고 가는 드라마들
SBS 드라마 <하늘이시여>의 작가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드라마의 원천은 바로 분노라는 것을. 어쩌면 저 <긴급출동 SOS 24>의 세상은 <하늘이시여>에서 ‘현대판 신데렐라 아가씨 자경’편으로 방영된 바 있다. 돈줄이 끊기기 때문에 결혼시킬 수 없다는 계모는 많은 시청자들에게 분노를 일으켰고, 그러자 시청률은 급상승했다. 하지만 작가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 불쌍한 신데렐라가 자기 친딸인 걸 안 친 엄마가 자기의 아들과 결혼을 시킨 것이다. 이 정도면 상식이 있는 사람이면 ‘이거 너무 하는구만’해야 했지만 이미 분노에 중독된 시청자들은 ‘좀 더, 좀 더!’를 연호했다. 그러자 이제는 친 아빠까지 자기 딸을 데려오겠다고 나선다. 이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하늘에 SOS라도 치고 싶어진다. 누구 <하늘이시여>의 이상한 가족문제를 해결해줄 분은 없나요?

종영한 KBS의 <별난여자 별난남자>는 ‘불치병에 걸린 아들과 모자의 연을 끊으려는 냉정한 어머니’편으로 인기를 얻은 바 있다. 드라마가 종영되면서 화해의 제스처를 통해 분노는 많이 사그러들었지만 여전히 우리들 마음 속에는 ‘어쩌면 저렇게 비정할 수 있나’하는 감정의 앙금이 남아있다.

최근 KBS의 <소문난 칠공주>는 바로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군대식의 줄서기를 강요하는 도무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아버지 나양팔의 밑에는 무려 네 명의 딸이 있다. 어찌 보면 한두 명의 자식이 겪는 고통보다 양적으로 먼저 더 자극적인 설정이 아닐 수 없다. 이야기는 뻔하다. 그 딸들이 어떻게 아버지의 압제 속에서 결혼에 골인하느냐는 것이다. 드라마의 본색은 ‘임신한 딸 질질 끌고 가는 아버지’편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아무리 권위 없는 아버지 시대에 그들을 위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면서 동시에 그 압제에서 벗어나는 자녀들의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 해도 너무 과한 설정이 아닌가. 이 드라마는 아버지의 권위주의와 함께 오로지 결혼에만 목매다는 딸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으로, 칠공주(이 단어 자체도 시대 착오적이다)를 칠푼수로 만들고 있다는 비판에서도 벗어날 수 없다.

이런 자극적인 드라마들로 인해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은 이른바 ‘웰 메이드 드라마’들의 시청률 부진이다. 자칫 시청률에 올인한 방송사에서 이런 드라마들을 빼고 SOS를 부르게 하는 드라마들로 TV를 가득 채우지 않을까 걱정이다.

해독 프로그램들은 언제 나올까
본래 독은 중독 시킨 사람이 해독을 시킬 수 있게 마련이다. 그러니 이런 분노에 중독 시킨 TV는 해독의 책임을 안고 있다. 그런데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처럼 이게 쉬운 문제가 아닐 것이다. 공영방송이라는 KBS 역시 시청률에 목매달기는 마찬가지가 아닌가.

TV라는 이 엄청난 독공(毒功)의 소유자는 자신이 풀었던 독에 대한 해독을 하지 않게 되면 결국 외로운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과거 ‘TV는 바보상자’라고 했듯이 ‘TV는 마약’이라는 인식이 퍼진다면 TV는 순기능은 뺀 역기능만 가진 괴물로 전락할 수 있을 것이다.

시청률 경쟁이 낳는 이 디스토피아는 이제 그 끝을 향해 치닫고 있다. 다양성의 사회에 획일성의 잣대를 세우는 시청률을 먹고 자라는 괴물을 길들일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은 없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