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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명랑TV

진심으로 승부하는 훈작,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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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한 예의, ‘고맙습니다’

드라마를 하나의 캐릭터로 볼 때, ‘고맙습니다’는 얼짱도 몸짱도 아닌 훈남이다. 그런 조어가 가능하다면 이 드라마는 ‘훈작’이라 할만하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엉뚱한 설정에 웃음이 나다가도 그 웃음 끝에 갑자기 울컥하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느껴지는 것은 ‘따뜻함’. 어쩌면 이다지도 훈훈한 사람들, 훈훈한 이야기로 가득할까.

미안하고 사랑한(미안하다 사랑한다) 후에 고마움(고맙습니다)을 들고 온 이경희라는 작가는 아마도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말하고 싶었나 보다. 그 소망이 너무나 작기에 아름답고 감동적인 ‘고맙습니다’라는 정성어린 밥상은 그래서인지 다 먹고 나면 배의 포만감보다 가슴부터 따뜻하게 채워주는 구석이 있다. 그것은 예의 없는 세상 속에서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야했던 시청자들이 처음으로 예의로서 인간대접을 받았을 때 느껴지는 가슴 먹먹한 기분이다.

죽음 앞에 선 그와 그녀, 그녀의 딸
이야기는 세속적인 도시를 떠나 심지어는 상상 속의 이상향처럼 보여지는 ‘푸른도’에서 펼쳐진다. 잘못된 수혈로 에이즈에 감염된 아이, 봄(서신애)이 있고, 아버지를 여의고 치매를 앓는 할아버지를 모시면서 미혼모로 그 아이 봄이와 함께 살아가는 영신(공효진)이 있다. 그의 수술대 위에서 저 세상으로 사랑하는 애인 차지민(최강희)을 보낸 민기서(장혁)가 자포자기한 채 그 집으로 하숙을 들어온다. 잘못된 수혈을 했던 장본인인 그녀의 마지막 부탁, 봄이와 영신에 대한 참회를 대신 전하기 위해서다.

구도를 보면 전형적인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하지만 관계는 죽음을 중심으로 얽혀있어 좀더 인생에 대한 관조가 가능해진다. 자신의 손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는 사실에 민기서는 죽음에 민감하다. 병원에서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로 병자보다는 병을 보며 살았던 민기서가 푸른도에 와서 자신과는 하등 상관없는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려 애쓰는 것은 바로 이런 캐릭터 때문이다. 여기에 푸른도라는 정의 공간에서 만들어진 의사와 환자가 아닌 인간 대 인간의 관계는 더욱 ‘그들의 죽음’을 남 일이 아닌 내 일로 받아들이게 한다.

민기서가 죽음에 민감한, 그래서 어떻게든 살려보려 애쓰는 캐릭터라면, 영신은 죽음을 많이 겪은, 그래서 여전히 아프지만 어느 정도는 고통을 감내하는 캐릭터다. 어느 날 갑자기 죽음으로 돌아온 아버지, 치매라는 기억의 죽음을 달고 살아가는 할아버지, 그리고 핏속에 죽음의 냄새를 품고 살아가는 딸. 그녀는 죽음을 회피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끌어안는다. 이 과정에서 민기서와 영신의 사랑은 좀더 폭넓어진다. 거기에는 죽음을 안고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태도가 들어있다. ‘고맙습니다’는 누구나 죽음을 안고 살아가며 그래서 사랑하게 되는(사랑할 수밖에 없는) 인간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는 드라마다.

숨겨진 진심이 가슴을 울린다
이 드라마의 힘은 ‘진심’에 있다. 영신과 그 가족, 민기서, 석현(신성록) 등 주요인물은 물론 심지어는 보건소 의사 오종수(류승수)에 이르기까지 드라마 캐릭터들은 힘겨운 삶 속에서 ‘괜찮다’며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살아간다. 때론 서로 다투고 때론 미워하면서 그래도 하루 하루를 버텨내는 푸른도 사람들의 모습은 다름 아닌 우리의 얼굴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마치 우리가 퇴근 후 걸친 술 한 잔에 속내를 드러내듯, 아주 가끔씩 진심을 드러낸다. 짧은 순간의 진심은 오래도록 ‘괜찮은 얼굴로 살아왔던’ 당사자의 삶을 반추하게 만든다.

영신은 꿈속이나 술에 취했을 때 진심을 보이며 그것은 민기서에게 번번이 목격된다. 민기서는 잠을 자면서 잠꼬대처럼 갑자기 엉엉 우는 그녀와, 술 취해 민기서를 아버지라 부르며 오열하는 그녀를 목격한다. 민기서는 바로 시청자의 시선이 된다. 그가 겪었을 먹먹한 감정은 고스란히 시청자에게 전달된다. 그러니 민기서라는 이방인이 푸른도라는 섬에 들어가 겪는 일련의 변화과정은 또한 시청자들이 드라마를 보며 겪는 변화과정과 일치된다. 그들의 진심을 목격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생각하게 된다. 타인으로 치부하며 생존경쟁 속에서만 살아가다 잊게 되어버린 인간에 대한 예의 같은 것을 말이다.

훈작을 만들어 가는 훈남들
‘고맙습니다’라는 훈작에는 그래서 훈남들이 출연한다. 공효진이란 배우가 뿜어내는 가공하지 않은 듯한 풋풋한 연기는 훈훈한 인간애를 전하는데 커다란 힘으로 작용한다. 화장기도 없고 화려한 옷도 없으며 아줌마들의 일상과 피곤한 하루에 찌든 얼굴은 여타의 자극적인 드라마에서는 비루하게 취급될 수 있었겠지만, ‘고맙습니다’에 와서는 반짝반짝 빛나는 살아있는 인간으로 빛을 발한다.

장혁은 이 드라마에서는 오히려 단점이 될 수 있는 ‘잘 생긴 얼굴’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이것이 얼굴이 아닌 연기력으로 정면승부 한 그가 얻어낸 최대의 수확이다. 신성록은 프로정신이 투철한 현대인, 그러나 가슴 속 깊은 곳에 최후의 보루처럼 남겨진 순수를 지닌 캐릭터를 섬세한 연기로 소화해낸다. 무엇보다 대단한 건 봄이 역할을 하는 서신애와 치매노인을 리얼하게 보여주는 신구의 연기다. 그들의 목소리는 곁가지처럼 작게 또는 지나치듯 흘러나오지만 그 여운은 오래도록 남는다.

각박해진 세상 속에서 그 세상을 고스란히 반영한다는 드라마가 각박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살기 힘들어 죽겠는데 무슨 놈의 인간이고 예의냐’고 항변하듯 지금의 드라마들은 인간애보다는 감각적인 사랑을, 메시지보다는 자극을, 따뜻함보다는 쿨함을, 그리고 감동보다는 재미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이 시기에 ‘고맙습니다’에 대한 시청자들의 애정은 ‘그래도 진심은 통한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준다. 얼짱이니 몸짱이니 하는 외모 중심적인 생각에서 그것보다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표방한 훈남이 등장했듯이, ‘고맙습니다’는 폼생폼사보다는 진심을 담은 감동을 전해줄 요즘 보기 드문 ‘훈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