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정글', 이젠 진정성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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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 이젠 진정성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때

D.H.Jung 2013. 5. 18.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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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성 찾은 '정글', 이젠 재미를 찾아야

 

<정글의 법칙> 뉴질랜드편은 여러모로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끝을 맺었다. 박보영의 소속사 대표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 몇 줄이 지금껏 <정글의 법칙>이 진정성으로 쌓아놓은 공든 탑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뉴질랜드편은 진정성을 의심할만한 조금치의 의혹도 남겨서는 안 되는 상황에 놓여졌다.

 

 

'정글의 법칙'(사진출처:SBS)

편집은 투박해질 수밖에 없었다. 첫 회부터 사전 답사하는 장면을 미리 보여줘야 했고 중간 중간에도 자막 등을 통해 ‘관광이 가능한 지역이나 전문가이드가 반드시 따라야 함’ 같은 고지를 붙여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또 누구나 다 갈 수 있는 관광지나 여행하고 왔다는 식으로 호도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똑같은 관광지를 간다고 하더라도 그 곳을 어떤 방식으로 체험하느냐에 따라 그 강도나 결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것을 제대로 보여준 것이 바로 채텀섬에서 초심으로 돌아가자며 병만족이 한 석기시대 체험이다. 그 섬은 물론 관광이 가능한 곳이고 또 살고 있는 주민도 있는 곳이지만 그들은 말 그대로 석기시대로 돌아가 야생 그대로를 보여주었다.

 

동굴에서 자고 석기만을 써서 물고기나 흑전복을 잡거나 웨카라는 날지 못하는 새를 잡아먹으며 지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게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정글의 법칙>이 정글을 체험하는 방식이라는 것은 이번 뉴질랜드편을 통해 확실히 보여준 셈이다. 이미 전 지구 어느 곳이든 들어가지 못할 곳이 없는 시대에 완전히 외부로부터 차단된 곳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나마 야생이 살아있는 곳으로 들어가 야생 그대로의 삶을 체험하는 것이 더더욱 의미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조금치의 오해도 만들지 않기 위해 선택한 편집은 결과적으로 극도로 스토리텔링이 자제될 수밖에 없었다. 찍어온 촬영분에 적절한 편집과 스토리텔링을 덧붙여야 하나의 맥락이 생기고 재미가 생길 수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자유로운 스토리텔링을 할 수 없는 뉴질랜드편은 상대적으로 상당 부분의 재미를 포기한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재미를 뽑을 수 있는 부분이 사냥을 하거나 그 잡은 것을 같이 먹는 장면이었을 게다. 이번 뉴질랜드편이 <정글>판 최고의 먹방이 된 것은 그런 이유다. 흑전복에서부터 웨카 같은 새, 각종 물고기, 거대 뱀장어, 웨타나 후후 애벌레 같은 벌레에 이르기까지 뉴질랜드편은 끝없는 식탐을 주 스토리텔링의 재료로 삼았다.

 

결과적으로 나온 장면들을 종합해볼 때, 아마도 진정성 논란이 없었다면 뉴질랜드편은 굉장히 다채로운 스토리가 가능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채텀섬에서의 석기시대를 거쳐 쥐라기 숲을 지나 빙하를 보고 마지막으로 <반지의 제왕>이 촬영된 영화 속을 체험하는 일련의 과정이 거기서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들을 좀 더 자유롭게 스토리로 이을 수 있었다면 시청자들로서는 훨씬 재미있는 <정글의 법칙> 뉴질랜드편을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이번 논란을 계기로 <정글의 법칙>은 확실히 자기들만의 진정성을 제대로 보여줬다고 생각된다. 그러니 이제는 좀 더 과감한 스토리텔링을 통해 재미를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 만일 그래도 논란이 걱정된다면 사전 방지 차원에서 프로그램 시작 부분에 ‘재미를 위해 약간의 스토리텔링을 했다’는 식의 고지 정도를 넣어주는 편이 낫지 않을까. 진정성도 좋지만 예능 프로그램으로서의 재미를 어떻게든 복원해야 한다. 이젠 좀 더 과감해질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