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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처가살이 들고 온 '왕가네', 공감 얻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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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네>, <이순신>보다는 나을 수 있을까

 

시집살이가 아니라 처가살이? 늘상 가족드라마에서 그토록 전가의 보도처럼 다뤄지던 것이 시집살이와 고부갈등 같은 거였다면, <왕가네 식구들>이 들고 온 처가살이는 그나마 소재만으로는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현실적으로야 여전히 시집살이가 더 많겠지만 최근 처가살이라는 말도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왕가네 식구들(사진출처:KBS)'

결혼하고 시집에 들어가 사는 신혼부부가 점점 줄어들고 있고, 심지어 시댁에서도 함께 사는 걸 꺼려하는 추세다. 오죽하면 시집살이가 아니라 ‘며느리 살이’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직장 다니는 며느리 챙겨주는 시어머니들의 고충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대신 아이 보육 문제 등으로 친정과 가깝게 지내는 신혼부부들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당연히 갈등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

 

문영남 작가의 작품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이렇게 달라진 가족관계의 모습은 인물들의 이름에서부터 드러난다. 왕가네의 가장은 왕봉(장용)이지만 이 집안의 실권자는 그의 아내인 이앙금(김해숙)이다. 그녀는 왕봉의 홀모인 안계심(나문희)이 있어도 아랑곳 않고 할 얘기 못할 얘기 다 꺼내놓을 정도로 가장 큰 목소리를 내는 인물이다. 이름대로 왕봉은 그저 봉인 존재이고, 안계심은 있어도 안 계시는 시어머니다. 이름대로라면 이앙금은 아마도 시댁에 어떤 앙금이 있는 인물일 게다.

 

집안의 어른인 시어머니의 존재감이 사라지고 대신 며느리가 실권을 쥐고 있는 건 전형적인 신 모계사회의 가족 풍경이다. 이앙금은 딸들의 사위들을 노골적으로 차별한다. 처가 식구들을 챙겨온 첫째 딸 왕수박(오현경)의 사위 고민중(조성하)은 이앙금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둘째 딸 왕호박(이태란)과 혼전임신으로 결혼한 백수 허세달(오만석)은 구박 덩어리가 되었다.

 

이 드라마가 그리는 여성과 남성은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여성들은 남편 덕에 잘 나가거나(왕수박), 철없는 남편과 상반되게 성실하게 살아가거나(왕호박), 교사직을 포기하고 자기 꿈인 작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거나(셋째 딸 왕광박(이윤지)), 전교 1등의 성적을 거둘 정도로 공부를 잘 하는(막내 딸 왕해박(문가영)) 인물들이다.

 

반면 남자들은 거의 모두가 위기상황이다. 고민중은 역시 이름대로 회사가 위태로워 길바닥에 나앉기 일보직전이고, 허세달은 허세만 가득한 백수이며, 안계심 여사의 늦둥이 왕돈(최대철) 역시 하는 일 없이 빈둥대는 백수다. 중학교 교감 선생인 왕봉은 아이들에게 별 존경을 받지 못하는 인물이고 그의 늦둥이 아들 왕대박(최원홍) 역시 엉뚱한 반항만 하는 인물이다.

 

즉 <왕가네 식구들>은 여성들에 의해 주도되는 가족 구성원을 보여주면서 이 새로운 모계사회 속에서 드러나는 새로운 갈등들을 보여줄 예정이다. 첫 술에 어찌 배부르겠냐마는 첫 회는 식구들의 캐릭터를 빠르게 세우기 위해서인지, 다소 급하고 어수선하게 진행된 면이 없잖아 있다. 하지만 그간 딸 부잣집 이야기가 거의 모두 딸들이 어떤 남자를 만나 결혼하느냐는 관점에만 몰두했던 점들을 생각해보면, 이 딸들이 중심이 되는 딸 부잣집 이야기는 확실히 색다른 시각을 보여주는 것만은 분명하다.

 

사실 <최고다 이순신>이 시청률 면에서나 화제성, 완성도 면에서 그다지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던 터라 KBS 입장에서는 주말극의 자존심을 세워줄만한 힘을 <왕가네 식구들>이 보여줄 지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상황이다. 과연 <왕가네 식구들>은 그만한 저력을 보여줄 수 있을까. 적어도 <최고다 이순신>보다는 낫지 않겠느냐는 평이 대부분이지만, 그러려면 그나마 괜찮게 여겨지는 <왕가네 식구들>의 처음 가진 기획의도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일관성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최고다 이순신>이 그러지 못해 용두사미가 되어버렸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