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듯 같은 94년 <서울의 달>과 2014년 <유나의 거리>
1994년 김운경 작가가 쓴 <서울의 달>은 파격적인 드라마였다. 상류층의 삶을 주로 다루던 당시 드라마 분위기에서 달동네 서민들의 삶을 소재로 했다는 것만으로도 그 가치는 충분했다. 드라마가 상류층 삶의 선망에 머물던 것을 서민들의 현실 공감으로 바꾸어주었던 것이 <서울의 달>에 시청자들이 열광한 이유. 당시 이 드라마는 5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유나의 거리(사진출처:JTBC)'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2014년, 김운경 작가는 또다시 서민들의 이야기, <유나의 거리>로 돌아왔다. <서울의 달>이 달동네 하숙집을 배경으로 했다면, <유나의 거리>는 다세대주택이 배경이다. 각자 떠돌다가 어찌 어찌 흘러들어와 한 공간에 머물게 된 이들이 엮어가는 따뜻한 사람 사는 이야기가 20년 차를 가진 두 드라마의 공통된 주요 스토리다.
김운경 작가 스타일 그대로, <유나의 거리>는 특별히 자극적인 설정 없이 마치 본격 소설을 읽는 듯한 잔잔한 흐름을 보여준다. 막장드라마들이 주로 하는 빠른 전개에 대한 강박이나 억지 스토리 같은 건 아예 보이지 않는다. 대신 <유나의 거리>의 매력은 보는 이들을 푸근하게 만드는 인물의 캐릭터에 있다.
소매치기를 소매치기하는 유나(김옥빈)는 감옥에 수시로 들락거리는 아버지처럼 배운 손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가끔씩 길거리의 행인들 지갑을 넘본다. 본인은 벗어나고 싶지만 마치 중독처럼 거리로 이끌린다. 그 단점을 빼고 나면 그녀는 어느 날 우연히 만나게 된 건실하지만 집도 없이 살아가게 된 ‘설명하자면 긴’ 딱한 사정을 가진 청년 김창만(이희준)을 챙겨줄 정도로 정이 많다.
유나가 사는 다세대주택의 주인 한만복(이문식)은 과거 잘 나갔던 건달이지만 지금은 한 풀 꺾인 콜라텍 사장이다. 여전히 건달 행세지만 한때 자신이 모셨던 낭만건달 장노인(정종준)을 여전히 모실 정도로 정은 있는 인물이다.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그를, 그저 사람 좋은 할아버지처럼 보이는 그래도 한 때는 쌍도끼로 불렸던 장노인이 돕는다. 후배의 개업식에 ‘건달의 역사’를 운운하며 계보를 나열하고, 한국어를 잘 모르는 일본인에게 문신을 해서 ‘쌍도끼’가 ‘산토끼’ 문신으로 바뀐 장노인은 기막힌 코믹 캐릭터를 보여준다.
김창만은 유나의 소개로 이 다세대주택에서 비관 자살한 여자의 빈 방으로 입주한 인물로 별로 잘 하는 게 없어 보이지만 뭐든 척척 해내는 인물이다. 드라마는 이 다세대주택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코믹하면서도 따뜻하게 그려낸다. 서로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이들이 어떤 사건 속에서 서로를 도와가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훈훈한 느낌을 전한다. 여기에 김창만과 유나의 심상찮은 멜로가 덧붙여진다. 두 사람의 관계는 그들이 숨기고 있는 진짜 삶, 이를테면 유나의 소매치기 습관 같은 것들이 하나의 장애요소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워질 것으로 보인다.
사실 김운경 작가의 <서울의 달>을 떠올리게 하는 드라마를 20년이 흐른 후에 다시 볼 수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20년이 흘러도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서민들의 신산한 삶을 드라마를 통해 확인한다는 건 한편으로는 씁쓸함을 남긴다. <유나의 거리> 첫 회에 잠깐 보여지는 서울의 달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느낌을 전해준다. 여전히 쓸쓸하고 처연한 그 느낌. <유나의 거리>를 보며 <서울의 달>을 보던 20년 전 그 가슴 한 구석에 느껴지던 그 따뜻함을 여전히 느낄 수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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