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맨>, 강지환의 복수 아닌 반전을 기대하는 이유
선의는 어째서 보상받지 못하고 악용될까. KBS 월화드라마 <빅맨>의 김지혁(강지환)은 강동석(최다니엘)과 그의 가족들에게 철저하게 이용당하고 버려지는 인물이다. 회사의 비리를 모두 뒤집어쓴 것도 모자라 고용된 깡패들에게 끌려가 바다에 던져진다. 육체적 고통보다 더 큰 것은 아마도 배신의 아픔이었을 게다. 그가 바란 건 겨우 가족 하나뿐이었지 않은가.
'빅맨(사진출처:KBS)'
하지만 고아로 자라며 그토록 간절했던 가족에 대한 애착은 오히려 그가 희생양이 되는 이유가 되었다. 그는 이 모든 것이 강동석이 연출한 거짓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기까지 오히려 동생 강동석을 걱정했다. 그를 찾아와 부모인 양 살가운 척 하는 강동석의 부모들 앞에서 그는 행복감에 어쩔 줄 몰라 했다.
김지혁의 착각이 못내 안타까우면서도 어떤 공감대를 일으키는 것은 그것이 우리네 서민들의 현실을 거의 그대로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늘 저들은 우리를 가족으로 부르며 지지를 호소하곤 했다. 그래서 순수한 선의로 아낌없이 지지를 보낸 후엔 어떻게 되었는가. 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말하면서 일부 기득권층을 위한 정책들을 만들었고, 사지에 몰린 서민들은 고통의 바다 속에 던져졌다.
김지혁이 바란 것이 그저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다는 사실이 못내 아프다. 그것은 바로 우리네 서민들의 소박한 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대단한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 것도 아니고 엄청난 명예와 출세를 꿈꾸는 것도 아니다. 그저 가족끼리 단란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해달라는 것. 하지만 이 소박하고 순수한 꿈은 어쩌면 너무 소박하고 순수하기 때문에 악용된다.
동생으로 알고 있는 강동석을 위해 자신이 대신 죄를 뒤집어쓰는 것을 알리지 말아달라고 하는 김지혁의 말이나, 또 동생을 위해 자신이 사랑하던 여자를 선선히 보내주는 김지혁의 행동에 강동석은 아무런 감흥이 없다. 보통 사람의 마음이라면 가슴 먹먹함을 느껴야 할 일이지만 애초부터 사람보다 돈이나 권력에 대한 욕망이 우선인 그들에게 김지혁의 인간적인 행동들은 그저 우스운 일로 치부된다. 무감한 그들은 소시오패스의 섬뜩함을 보여준다.
김지혁의 선의가 악용되는 그 과정 속에서 그의 선의를 믿고 시장 부지를 내놓았던 시장 사람들도 악용된다. 한 사람은 자살을 선택하고 한 사람은 자신의 가게를 팔아 시장상인들에게 내놓는다. 서민들의 편에 섰던 김지혁의 불행은 고스란히 서민들에게도 이어진다. 이것이 과연 낯선 풍경일까. 우리는 무수한 정치 현장에서, 선거 속에서 이런 풍경을 보아오지 않았던가.
돌아온 김지혁의 복수극은 그래서 지금 우리네 현실의 무게감을 충분히 담아내고 있다. 대중들이 그의 제대로 된 복수를 꿈꾸는 이유다. 하지만 여기에도 현실이 어른거린다. 그가 제 아무리 맨발로 야구방망이 하나를 들고 현성그룹을 찾아간다고 해도 반전은 일어나지 않는다. 거대한 건물 앞에 맨발로 선 그는 그저 초라해 보일 뿐이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조화수(장항선)라는 더 강력한 악이다. 악을 더 큰 악으로 대항하려는 것. 선의가 그 순수한 힘으로 악과 대항할 수 있는 현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시장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나선 김지혁의 복수극은 서민들을 마음을 움직이는 구석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악을 무너뜨리기 위해 더 큰 악을 불러오는 복수에 머물지 않고 상황의 반전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건 너무 큰 기대일까. 선의가 선의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세상은 여전히 요원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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