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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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마저 초월한 '개과천선', 문제작인 까닭

D.H.Jung 2014. 6. 7.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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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김명민의 딜레마가 담는 예사롭지 않은 질문들

 

<개과천선>의 이야기 전개는 생각보다 예사롭지 않다. 어느 날 겪은 기억상실로 인해 윤리적으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김석주(김명민) 변호사라는 인물은 그 자체로 흥미로웠다. 같은 사람이지만 김석주는 과거와 현재가 분리되어 있는 것. 현재의 김석주는 과거의 김석주가가 저지른 잘못들을 스스로 고쳐나가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개과천선(사진출처:MBC)'

따라서 <개과천선>은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다. 한 사람의 정체성이란 과거와 현재가 단절되지 않고 일관되게 흘러온 사적인 역사에 다름없다. 그런데 김석주 변호사는 기억 상실로 인해 이 정체성이 단절되어 버린 것이다. 현재가 과거를 부정할 때 과연 그 사람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터미네이터>나 최근 개봉한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패스트>가 보여주듯 과거를 바꾸려는 현재의 노력은 현재의 자신을 변화시킬 수밖에 없다.

 

<개과천선>이 놀라운 것은 이 드라마가 기업의 편에 서서 서민들의 힘겨움 따위는 신경쓰지도 않던 피도 눈물도 없는 변호사가 그저 서민들을 위한 변호사로 변신하는 이야기 정도를 다루는 단계에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이런 이야기였다면 김석주는 서민들의 슈퍼히어로로 그려졌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아마도 시청자들에게 꽤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줬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개과천선>은 단순한 서민들을 위한 슈퍼히어로 이야기를 선선히 던져버리고 진지한 정체성의 문제로 돌아간다. 그것은 기억상실로 개과천선한 김석주 변호사가 과거 약혼녀였던 유정선(채정안)을 만나면서부터 다시 시작한다. 김석주 변호사가 유정선에게 인간적인 끌림을 느끼게 되는 동시에, 유정선은 서민들을 나락으로 몰고 간 주가조작 혐의로 법정에 서고 구속을 당하게 된다.

 

여기서 김석주 변호사의 정체성 혼란에 의한 두 번째 딜레마가 시작된다. 첫 번째 딜레마가 서민들을 위한 변호사냐 아니면 가진 자들을 위한 변호사냐를 두고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려는 변호사로 재탄생된 김석주의 문제를 다뤘다면, 두 번째 딜레마는 이렇게 서민들을 위한 변호사로 변신한 김석주가 개인적인 사랑을 앞에 두고 겪는 문제를 다룬다. 변호사는 공적인 직업이지만 그 역시 지극히 사적인 감정을 가진 한 인간이라는 것.

 

무수한 사람들을 피해보게 만들고 그것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서민들을 생각한다면 개과천선한 김석주 변호사는 그들의 편에 서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한 여인에게 점점 마음을 주기 시작한 한 남자의 입장에서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곤경에 처한 여인, 그것도 모든 죄를 뒤집어쓰게 된 여인을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개과천선>은 올해 보기 드문 문제작이다. 그저 그런 판타지를 주는 단계를 넘어서서 인간의 딜레마를 탐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직업으로서의 변호사인가 아니면 한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인간으로서의 변호사인가. 또 공적인 일을 하는 변호사인가 아니면 한 사적인 존재로서의 변호사인가. <개과천선>은 능력을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이미 능력은 검증된 김석주라는 변호사가 서게 되는 딜레마의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를 질문한다.

 

아마도 이런 전개는 시청률면에서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시청자들이 원하는 건 서민들을 위한 변호사로 개과천선하는 과정이 주는 통쾌한 카타르시스일 가능성이 높고, 또 한 여인을 위해 목숨을 걸고 변호하는 한 남자의 절절한 멜로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개과천선>은 이런 일반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 놀라운 드라마다. 그래서 <개과천선>이라는 드라마의 입장 또한 딜레마에 처하게 된다. 시청률인가. 아니면 좀 더 진지한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인가. 만일 후자라면 이 드라마는 비록 시청률은 떨어지더라도 그 어떤 드라마도 가지 않은 선택을 하게 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