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참 좋은 시절',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외 신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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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시절',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외 신뢰

D.H.Jung 2014. 6. 9.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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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시절>, 참회하는 사람에 대한 신뢰

 

잘못은 누구나 저지를 수 있다. 다만 잘못을 인정하고 참회할 수 있어야 그게 사람이다. KBS 주말드라마 <참 좋은 시절>이 전하고 있는 메시지다. 이 드라마에는 유독 잘못했다”,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라는 대사가 많이 나온다.

 

'참 좋은 시절(사진출처:KBS)'

드라마의 시퀀스들도 거의 대부분이 잘못을 참회하는 것들이다. 이 집안에 얹혀사는 강동희(옥택연)의 친엄마인 하영춘(최화정)은 어린 시절 자식을 버린 죄를, 구박받으며 살아가는 것으로 참회하는 중이다. 강동희가 그런 엄마를 안쓰럽게 생각하며 갑자기 잘 대해주자 그녀는 잘 해주는 것이 겁난다고 말한다. 그냥 하던 대로 구박하는 것이 마음 편하다고 말한다.

 

강동희는 역시 자신의 자식들에게 동생이라고 속여 키운 죄를 사죄하는 중이다. 그는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딸 동주(홍화리)에게 차라리 화를 내고 말하기 싫으면 차라리 패라고 말한다. 어떻게든 자식에게 사죄하고픈 아빠의 마음이 절절히 느껴지는 대목이다.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온 강태섭(김영철)은 부인인 장소심(윤여정) 여사에게 끊임없이 잘못했다고 말한다. 그는 어떻게든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려고 마음먹는다. 그래서 해원(김희선)과 아들 동석(이서진)의 결혼을 반대한다. 과거 해원의 아버지가 사고를 내는 바람에 동옥(김지호)이와 아버지 강기수(오현경)가 그렇게 됐다는 걸 그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실을 알고도 동석은 해원을 받아들인다. 그는 아버지가 한 모든 일을 자식이 책임져야할 이유는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해볼 건 다 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심지어 가족을 놓자고까지 한다. 해원은 그런 동석이 고마우면서도 자신을 질책한다. 아빠를 원망하는 마음과 이런 사실을 다 알고도 뻔뻔하게 동석을 사랑하는 자신을.

 

내가 너무 나쁜 년 같아서. 우리 아빠 너무 불쌍하고 가엾은 분인데 그런 아빠를 자꾸 원망하고 미워하고 나 와 이러노 와 이거밖에 안 되노 내는.... 내가 너무 싫다. 우리 아빠가 어떻게 했는지 다 알면서 양심도 없고 뻔뻔하게 동석이 오빠를 사랑하는 내가 너무 싫다.” 그래서 이걸 덮으려는 동석과 달리 해원은 무릎을 꿇고 장소심 여사에게 사실을 고백하려 한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이 비밀을 폭로하겠다던 강태섭은 오히려 당황해하며 해원에게 입을 열지 말라고 신호를 보낸다.

 

<참 좋은 시절>을 보며 가슴 한 구석이 따뜻해지고 먹먹해지는 건 이 드라마가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예의와 신뢰를 저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무수한 드라마들이 악역을 내세워 보여주는 건 욕망 앞에 놓인 인간은 본래 악하다는 것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참 좋은 시절>은 다르다. 악한 것이 아니라 미숙한 것이고, 그래서 잘못을 저지른다. 하지만 그 잘못에 대한 죄책감은 반드시 있게 마련이며 그래서 참회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사람이 사는 길이라는 걸 이 드라마는 보여준다.

 

동석과 해원을 가로막는 과거 사고의 증거로서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동옥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동옥을 그리고 있는 시선을 보라. 그녀는 지능이 아이에 멈춰 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존재다. 가족이 그를 아껴주고 우진(최웅)은 그녀를 그 자체로 사랑한다. 우진의 엄마를 만나기 위해 스테이크 먹는 연습을 하는 동옥이 열심히 연습해서 칭찬 받으려고그랬다고 하자 우진은 거꾸로 그녀에게 잘못했다고 말한다. “누나 제가 잘못했어요. 빵을 막 손으로 집어먹으면 어떻고 나이프로 잘라먹으면 어떻고 포크로 찍어먹으면 어때요.. 앞으론 그냥 누나 마음대로 해요.”

 

과거의 사고가 있었고 그래서 그 후유증이 남았지만 동옥은 결코 불행하지 않다. 동옥은 그렇게 현재를 행복하게 살아간다. 이것은 작가가 바라보는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다. 사람은 사고를 당할 수도 있고 또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사람을 영원히 못 믿을 존재로 만드는 건 아니다. 물론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고 잘못을 인정하며 진심어린 참회를 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참 좋은 시절>을 보며 가슴 한 구석이 따뜻해진다면 우리에게도 여전히 기회가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