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의 최민식, 진화론적 보고서를 액션으로 만들다
만일 뤽 베송 감독의 영화 <루시>에 최민식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이 영화는 그저 진화론적 가설의 보고서에 머무르지 않았을까. 예고편을 통해 또 뤽 베송 감독이 만들어냈던 일련의 영화들을 통해 <루시>가 스칼렛 요한슨이 나오는 그저 그런 신나는 액션 영화라고 생각한다면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서는 발길이 허무해질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루시>는 그런 액션 영화가 아니다.
'사진출처: 영화 <루시>'
<루시>는 흥미로운 진화론적 보고서에 가깝다. 이제 겨우 뇌의 10%를 사용하는 인류가 20%를 넘겨 궁극적으로 100%를 사용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에 대한 가설들이 한편의 영화 속에 담겨져 있다. 그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과학적 편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우리의 근원을 찾아가는 생물학적이고 우주적인 철학적 논제이기도 하다.
<루시>라는 제목이 최초의 인류에게 붙여진 이름에서 따왔다는 사실은 이 영화가 얼마나 시공간적인 한계를 뛰어넘는 가설의 상상력을 끝까지 밀어붙이는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마치 인류학적인 근원을 찾아가는 다큐멘터리처럼 영화가 동물의 세계를 탐구하고 그런 이야기를 노먼 박사(모건 프리먼)의 강연 설명을 통해 구구절절 들려주는 건 그래서다.
하지만 이처럼 진지한 메시지를 담아내는 영화도 뤽 베송이 하면 다르다는 걸 보여주는 작품이 <루시>이기도 하다. 이토록 지적일 수밖에 없는 영화를 뤽 베송 감독은 특유의 느와르적인 액션 감성으로 풀어냈다. 스칼렛 요한슨이 가진 섹시하면서도 시크한 액션은 이 영화의 예고편만으로도 유혹적인 느낌을 줄만큼 강렬하다. 여기에 최민식이 보여주는 악역으로서의 존재감은 <레옹>에서의 게리 올드만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바로 이 점은 자칫 무거울 수 있는 메시지를 담아낸 이 특별한 영화를 추석 명절 시장에 내놓을 수 있었던 이유가 될 것이다. 추석 명절에 어딘지 머리가 복잡한 사람이라면 아무 생각 없이 부수고 터트리는 액션 블록버스터를 꿈꾸기 마련이다. <루시>는 실제로는 그렇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그 외형적인 모습은 영락없이 그 기대감을 만들어내는 영화가 분명하다.
이런 기대감을 만드는데 있어서 최민식은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 무표정한 얼굴로 무심한 듯 총을 쏘는 장면 하나만 봐도 영화가 궁금해지는 그런 연기를 그는 보여주고 있다. 다소 무거운 이야기도 그의 액션으로 들어가면 마치 “도대체 뭔 소리야?”하고 일갈하는 듯한 시원스러움으로 변모한다. 주인공인 스칼렛 요한슨이 그만한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어찌 보면 이 만만찮은 악역 최민식이 거기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처럼 보인다.
우리말을 고집하는 최민식은 이 영화를 보는 우리 관객들에게 특별한 느낌을 선사한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이처럼 우리말이 많이 또 정확히 나오는 영화도 드물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최민식이 우리말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내뱉는 욕지거리 하나까지도 우리네 관객들은 반색할 만하다. 그건 애국주의적인 관점 때문이라기보다는 마치 그가 우리관객에게 주는 작은 선물 같은 느낌이 들어서다.
실로 <루시>를 지루한 보고서가 아니라 흥미로운 액션 영화로 만든 건 배우들이다. 스칼렛 요한슨의 매력적인 액션과 그와 대적하는 최민식의 악역 존재감이 없었다면 이 영화는 자의식 강한 진화론적 상상력을 늘어놓은 범작에 머물렀을 가능성이 높다. <명량>에서도 그랬듯이 최민식은 <루시>에서도 그 영화적 재미의 중심을 제대로 잡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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