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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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다 장보리'라는 괴물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D.H.Jung 2014. 9. 15.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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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다 장보리>, 막장인 듯 막장 아닌 막장 같은 정체

 

MBC <왔다 장보리>는 주말드라마의 판세를 뒤집은 드라마다. KBS 주말드라마가 늘 전체 시청률 1위를 기록해왔었지만 <왔다 장보리>는 그걸 단숨에 뛰어넘어 최근 들어 마의 시청률이 되고 있는 30%대를 훌쩍 넘겼다.

 

'왔다 장보리(사진출처:MBC)'

역시 막장드라마의 힘이 세다는 얘기가 나온다. <아내의 유혹>으로 일일 막장, 막장 마니아 시대를 연 김순옥 작가의 작품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항간에는 이 드라마를 그저 막장드라마라고 치부하기 어렵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김순옥 작가는 현실에선 더 기가 막힐 일들이 벌어지기 때문에 되려 선악 구분이 분명한 드라마의 권선징악 결말을 통해 시청자들은 통쾌감을 느낀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은 마치 막장드라마의 변명처럼 들리지만 한편으로는 맞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현실은 더 막장이다. 그런데 현실의 막장과 드라마의 막장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적어도 드라마의 막장에서는 선이 이기고 악이 응징당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의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실로 <왔다 장보리>에서 가장 중요한 코드는 권선징악이다. 장보리(오연서)라는 절대 선의 인물과 그 인물을 둘러싼 화기애애한 가족적인 분위기가 있다면 연민정(이유리)으로 대변되는 절대 악, 나아가 뜻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감정마저 제 맘대로 조종하는 소시오패스와 그녀를 둘러싼 범죄적인 분위기가 있다. 드라마는 이 양 극단을 왔다 갔다 하면서 패악적인 연민정에게서 분통을 터뜨리게 만들고, 착하디착한 장보리가 그래도 잘 살아나가는 모습에서 위안을 갖게 만든다.

 

막장 그 이상의 막장을 보여주는 현실은 그래서 <왔다 장보리>라는 비현실적이고 극도로 자극적이며 그래서 막장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개연성 없는 드라마를 자꾸만 보게 만든다. 만일 이 드라마를 처음부터 본 시청자가 아니고 그래 도대체 어떤 드라마인지 한번 보자고 마음먹고 본 시청자라면 처음 이 황당무계한 전개의 드라마 앞에서 경악했을 지도 모른다. 장보리와 연민정의 극단적인 대립구도 안에 깊게 들어와 있다면 그 간절한 권선징악의 욕구 때문에 이들의 행동들이 그리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부모가 심지어 자식을 버리고 이용하며 거짓말을 일삼고 그것이 들통날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들은 아무리 정상참작을 하더라도 병적이다.

 

막장드라마의 전형적인 코드로 등장하는 누가 누구의 엄마이고 자식이냐출생의 비밀코드는 이제 그 사실이 드러나는 신파에 머무르지 않고 그 사실을 폭로함으로서 상대방을 공격하는 무기가 된다. 연민정은 장보리의 출생의 비밀을 갖고 협박을 일삼지만, 연민정 자신도 자신의 숨겨진 딸(장보리가 키우는)에 대한 출생의 비밀을 갖고 있다. 이 얽히고설킨 출생의 비밀공격은 드라마를 극단적인 신파와 치고받는 싸움구경으로 만들어낸다.

 

김순옥 작가의 특징은 <왔다 장보리>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시작부터 거두절미하고 숨 가쁘게 전개되는 이야기의 속도감은 <아내의 유혹>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흘러온 김순옥 작가표 전매특허다. 또한 드라마는 끝없는 인물들 간의 싸움을 보여준다. 그것은 그저 심리적 갈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진짜 동네 드잡이 싸움을 보는 듯한 장면들이 계속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드라마를 전혀 보지 않은 시청자라도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이 장면을 보게 되면 잠시 멈춰 설 수밖에 없다. ‘도대체 뭔 일이 벌어진 거야하고 시선이 갈 수밖에 없는 것.

 

그 정신없는 김순옥표 드라마의 롤러코스터에 동승하는 것이 꺼려지기는 하지만 일단 올라타기만 하면 이 드라마는 기막히게 달콤하고 답답증을 일으키다가도 통쾌함을 선사하기도 하는 드라마게임의 쾌감을 선사한다. 그것이 비현실적이고, 또 개연성도 없는 세계지만 빠른 속도감이 그런 이성적인 판단을 마비시키고 대신 권선징악의 세계의 쾌감만을 추구하게 만들어버린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보여줬던 것처럼 괴물의 탄생은 누군가 흘려보낸 폐수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 사회의 비정상적인 시스템이 만들어낸다. 괴물보다 더 괴물 같은 건 그래서 그 현실의 시스템이다. 김순옥 작가가 만들어낸 <왔다 장보리>는 바로 그 괴물을 닮았다. 어느 날 갑자기 현실로 뛰쳐나와 평온한 강변의 한 때를 보내는 사람들을 향해 달려들며 그 공포를 통해 당신이 사는 세계는 그리 안온하지 않다는 것을 이 드라마는 불온하게 보여준다.

 

<왔다 장보리>라는 막장드라마를 막장으로 보지 않게 만드는 힘은 그래서 김순옥 작가 스스로 얘기한 것처럼 이 드라마를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무시하지 않게 만드는 더 막장 같은 현실에서 나온다. 더 이상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장보리 같은 인물의 성공담이나, 소시오패스처럼 살아가는 연민정 같은 인물의 패배는 <왔다 장보리>라는 괴물을 탄생시킨 근원적인 힘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겉으론 멀쩡해 보이지만 수면 아래서 점점 커져가는 병을 숨기고 있다. 마치 출생의 비밀처럼 언제 튀어나와 평온한 삶을 난도질할지 알 수 없는(어쩌면 그런 난도질을 기대하게까지 만드는) 그런 공포와 기대를 갖게 하는 병. <왔다 장보리>를 보다보면 그 숨겨진 병증이 눈앞에 드디어 정체를 드러내고 있는 듯한 공포감과 쾌감을 동시에 느끼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