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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치' 욕망의 관성에 날리는 죽음의 한 방옛글들/드라마 곱씹기 2014. 12. 27. 06:22728x90
<펀치>, 죽다 살아난 김래원의 욕망과 본질
아마도 거의 모든 콘텐츠에서 죽음은 사태의 본질을 깨닫게 만드는 계기가 아닐까. SBS 월화드라마 <펀치>에서 박정환(김래원)과 신하경(김아중) 검사가 맞닥뜨리게 되는 죽음의 사태가 그렇다. 이태준(조재현)의 심복으로서 그를 검찰총장까지 만들기 위해 해서는 안 될 일들까지 해온 박정환은 그러나 정작 그 권력의 눈앞에서 사망선고를 받는다.
'펀치(사진출처:SBS)'
하지만 수술 중 코마 상태가 되어버린 박정환을 두고 사태의 본질이 드러난다. 즉 이태준은 혼수상태인 그를 찾아와 눈물을 흘리지만 그것은 애도의 눈물이 아니라 배신의 눈물이다. 그는 자신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박정환의 전처인 신하경을 살인자 누명을 뒤집어씌운다. 한편 신하경은 박정환을 살리기 위해, 또 그를 예전의 그로 되돌리기 위해 노력한다. 죽음 앞에서 아군과 적군이 선명하게 드러나게 된 셈이다.
<펀치>가 흥미로운 건 욕망의 끝에서 발견되는 죽음이 아니라, 죽음을 겪고 난 자가 발견하는 새삼스러운 삶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무수한 드라마들을 통해 박정환 같은 야망의 인물들을 봐왔다. 이미 7,80년대의 시대극들이 대부분 그린 것이 그것이 아닌가. 이 야망의 인물들은 ‘성공시대’를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개발시대의 끝자락에서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이다.
90년대 IMF가 터지면서 성공신화는 거품으로 판명 나 버렸고 한 시대를 풍미하며 살았던 이들은 고개를 숙였다. 성공신화의 죽음이다. 그런데 그 죽음을 통해 발견된 것들이 있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발전시키고 성장시키며 살아왔다고 믿었던 삶이 사실은 다른 것들을 소외시키고 파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죽음은 이처럼 본질을 드러내는 속성이 있다.
<펀치>는 마치 권투 경기를 벌이듯 쓰러졌다 다시 일어나 주먹을 날리는 드라마다. 박정환은 죽음의 끝에서 회생했고 그 과정을 통해 사태의 본질을 알게 되었다. 언제까지나 형제처럼 이어질 것 같던 이태준과의 의리는 사실 같은 욕망이 만들어낸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반면 이혼한 전처와는 완전히 식은 줄 알았던 사랑의 불씨가 남아있다는 걸 발견한다. 죽음의 경험은 그에게 본질적인 삶으로의 회귀를 가능하게 해준다.
그런데 왜 하필 다른 것도 아닌 죽음일까. 여기에는 박경수 작가가 갖고 있는 현실인식의 단면이 들어가 있다. 지금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이 현실은 그 정도, 즉 죽음을 맞이할 정도가 되어야 겨우 폭주기관차 같던 욕망을 멈출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다. 권력과 욕망이 폭주하는 현실에서 그만큼 우리의 삶은 피폐해졌다. 심지어 자신을 위협하는 적과 늘 자신을 생각해주는 아군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죽다 살아난 박정환이 자신의 욕망을 벗어나 삶의 본질로 들어가는 과정은 그래서 한번 보면 <펀치>의 한 방에 눈을 사로잡히게 되는 이유가 된다. 그 과정은 다름 아닌 우리들이 지금 겪고 있는 현실을 살짝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과연 무엇 때문에 그렇게 앞으로만 달려가는가. 모두가 달려가니 따라 달리던 우리네 관성에 강력한 한 방을 날리는 드라마. 그게 바로 <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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