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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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명랑TV

'무도'의 갑질 시스템 고발, 어찌 웃을 수만 있을까

D.H.Jung 2015. 2. 16.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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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도' 추격전에 담아낸 씁쓸한 현실

 

역시 <무한도전>이다. <무한도전>이 추격전에 사회 시스템을 고발하는 메시지를 담아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물론 그것은 <무한도전>만의 열린 이야기 구조를 통해서다. 과거 '여드름 브레이크' 같은 추격전에서는 곳곳에 숨겨진 메시지들이 철거에 의해 보금자리를 빼앗긴 서민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기도 했다.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수수께끼처럼 곳곳에 단서를 놔두어 시청자들이 그걸 발견하게 해주는 것.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이번 상자 쟁탈전도 마찬가지다. 이 게임의 룰에는 일종의 속임수 같은 것이 깔려 있다. 그것은 상자를 열어 돈을 가져간 이의 액수는 다른 이가 또 상자를 열었을 때 사라져버리지만, 상자를 열 때마다 그 돈을 충당하기 위해 출연자들이 나누어진 빚은 사라지지 않고 누적된다는 룰이다. 이런 불공평한 룰이 어디에 있을까. 결국 천만 원 넘게 쌓여가는 빚더미 속에서 어느 누구도 게임을 멈출 수 없는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마지막 상자를 열어 그 누구도 돈을 가져갈 수 없는 상황을 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수순이다.

 

그래서 유재석이 "죽어라 일해도 빚만 느는" 상황을 한탄하고 분노하지만 중요한 건 이런 시스템 자체의 부조리를 얘기하고 바꾸려는 출연자가 없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 이토록 죽어라 뛰고 또 뛰는 것일까. 왜 이 부조리한 게임의 룰을 던져놓은 이들과 싸우지 않고 그 룰 속에서 똑같이 피해를 당하는 출연자들끼리 치고 박고를 해야 하는 것일까. 이것은 탐욕의 문제가 아니라 룰의 횡포다.

 

이처럼 룰 자체가 부조리하게 되어 있는 이번 상자 쟁탈전을 통해 <무한도전>이 보여주려는 건 그래서 게임 그 자체가 아니다. 제대로 된 룰 안에서는 게임이 가능한 것이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이번 아이템은 하나의 상황극처럼 보이는 면이 있다. 모두가 척 보면 연상할 수 있는 '갑질 하는 시스템'에 대한 풍자 상황극이다.

 

이 이야기를 보다보면 현재 우리네 서민들의 등골을 휘게 만들고 있는 주택 문제나 최근 복지 증세를 둘러싼 잡음, 게다가 서민들을 분노하게 만들고 있는 연말정산 문제를 발견하게 된다. 정부가 빚 내서 집을 사라 권하는 주택 문제는 사실상 서민들을 빚에 종속시킨다. 뼈 빠지게 벌어서 원금도 못 갚은 채 이자만 내며 근근이 살아가는 모습이 저 <무한도전>의 상자 쟁탈전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집이라는 부동산의 액수를 쥐고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빚을 쥐고 사는 삶이다.

 

복지를 위해 세금을 늘려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렇게 해서 결국은 서민들의 세금부담만 더 늘어나고 가진 자들의 세금부담은 오히려 적어지는 이상한 시스템은 또 어떤가. 국가의 재정이 바닥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어디 세금을 덜 내서 생긴 문제던가. 자원외교나 4대강 사업 같은 어이없는 정책을 밀어붙이다 보니 생겨난 만성적인 부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이런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 부족한 세수는 서민들의 부담으로 고스란히 다가온다. 죽어라 일해도 빚만 늘어나는 건 그래서다.

 

상여금 1천만 원이라는 허수를 놓고 벌인 상자 쟁탈전이라는 기묘하고 부조리한 시스템의 게임 속에서 결국 상여금은 사라지고 멤버들은 모두 800만 원에서 1,300여만 원의 부채가 생기게 됐다. 결국 시스템을 만들어 제시한 <무한도전>5,500만 원의 수익을 가져갔다. 그리고 마치 큰 선심이나 쓴다는 듯 빚을 탕감하는 것으로 상여금을 대치하겠다고 하는 대목에서는 최근 '13월의 세금폭탄'으로 불리며 국민들을 분노하게 만든 연말정산을 떠올리게 한다. 무언가 혜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을 잘못 만들어놓고 다시 현행대로 유지한다는 식으로 혜택을 대신하는 것이 아닌가. 마치 <무한도전>이 이런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여전히 국민들의 분노가 가라앉기만을 기다리는 듯 연말정산 후속대책 논의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정권과 국회를 벌써 잊으면 안 된다고.

 

<무한도전> 상자 쟁탈전은 마지막에 가서 빚을 탕감해준다는 얘기에 감지덕지해 하는 출연자들의 모습을 통해 갑질 하는 시스템의 견고함과 씁쓸함을 말해주었다. 서민들끼리 무한히 경쟁하게 만드는 잘못된 룰 속에서 시스템은 더더욱 견고해진다. 결국 이 과정에서 빚더미의 고통에 빠지게 되는 건 서민들뿐이다. <무한도전>의 이번 추격전은 물론 깨알 같은 예능으로서의 재미를 담고 있었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결코 웃을 수만은 없는 씁쓸한 현실을 되돌아보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