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화려한 휴가’, 그 날들을 기억하라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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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휴가’, 그 날들을 기억하라

D.H.Jung 2007. 7. 6.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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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용헬기의 프로펠러가 팽팽 돌아가고, 군인들의 군화발이 절도 있게 움직인다. 총알이 날아다니고 폭약이 터지고 이건 마치 전쟁영화의 도입부분 같다. 그런데 이건 전쟁영화가 아니다. ‘그 평범한 날’ 벌어진 납득되지 않는 일일뿐이다. 택시를 몰며 사는 강민우(김상경)가 그가 사랑하는 박신애(이요원)와 함께 웃음을 터뜨리며 코미디 영화를 본다. 그 장면은 마치 멜로 영화의 시작 같다. 그런데 이건 멜로 영화가 아니다. 잠시 후 그들의 몸은 피로 적셔진다. 등장인물들은 마치 전원일기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정겹기 그지없다. 그건 마치 휴먼드라마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그들의 어깨에는 총이 매어져 있다. 그리고 그들은 언제든 총알이 날아와 그들의 머리에 꽂힐 것 같은 불안감을 준다.

‘화려한 휴가’는 이 모든 일상의 장르적인 그림들을 뒤집어버린 ‘그 날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날’이란 단어가 마치 보통명사처럼 특정한 날을 지칭하던 80년대, 군화발과 총검이 평화롭던 일상을 난자하는 장면을 통해 영화는 먼저 이런 일이 이 땅에서 벌어졌다는 것을 믿을 수 있겠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영화는 주인공인 강민우의 시선을 통해 보여짐으로써 이념적인 코드를 배제하고 대신 인물들에 집중한다. 이 영화 속에서 인물들은 실로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나며 살아있다. 인물들이 쏟아내는 촌철살인의 대사들과 웃음을 절로 나게 만드는 상황들, 그러면서도 깊게 느껴지는 진심들이 어우러지면서 모든 장르를 뒤집어버린 영화는 여느 장르영화보다 훨씬 재미있어진다.

그리고 따뜻하고 생생한 이들에게 가해지는 폭력 앞에 관객들은 이들을 지켜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마치 당시 광주에서 살았던 사람이라면 가졌을 폭력에 저항하던 시민들을 지켜주고 싶은 심정처럼. 이렇게 시간여행을 통해 80년대 광주의 한 시민이 되어버린 관객들은 영화를 통해 놀라운 친밀감과 안타까움, 공포, 연민, 분노를 느끼게된다. 이 즈음 영화가 하는 말은 ‘보라’는 것이다. 당신이 한 짓을, 혹은 당신이 보지 않으려 했던 것을.

그것은 2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눈뜨고 보기 어려운’ 광경이다. 그러니 이 시대의 트라우마는 지금도 끝나지 않고 여전히 진행형인 셈이다. 보지 않으려 했던 것을 보면서 느끼게 되는 것은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이토록 아름다우면서도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사람답게 저항하기 위해 죽어나간다. 차마 도청에 사람들을 남겨놓고 떠나지 못해서, 헛된 인생 한번이라도 사람을 느끼며 살기 위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혹은 자신들은 폭도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이 하나하나 생의 선을 넘어갈 때, 지프차 위에서 박신애는 소리친다. “광주시민여러분, 우리를 기억해 주세요.” 영화 속 80년대 외쳐진 그 소리는 영화 스크린을 타고  27년이란 세월을 넘어 현재 객석에 앉은 관객들의 귓속을 파고든다. 차마 보기 싫었던 차마 기억하기 싫었던 ‘그 날들’의 장면들은 이렇게 현재를 사는 우리의 기억 속에 남게 된다. 그 날들을 기억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갑작스레 군화발이 치고 들어오는 영화관이 아닌 곳에서 지금 당신이 편안하게 영화를 볼 수 있는 자유가 어떻게 얻어진 거라는 걸 인식하게 해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