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문>, 유준상의 과장연기가 만들어낸 효과
SBS <풍문으로 들었소>에서 한정호 역을 맡은 유준상의 연기는 튄다. 고아성이나 이준의 연기나, 한정호의 아내 역할의 유호정 그리고 이 집안 곳곳에서 수군대는 비서나 유모 같은 조역들이 실제 그 인물들처럼 자연스러운 연기 속에 녹아 있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그의 연기는 과장된 것처럼 보이고 목소리 톤도 일상적이라기보다는 연극적이다. 마치 그는 연기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풍문으로 들었소(사진출처:SBS)'
이것은 어쩌면 유준상이라는 연기자가 가진 특징이자 개성일 것이다. 그는 과거 드라마에서도 지상에서 1센티 정도는 들어 올려진 연기를 선보였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방귀남이라는 인물을 떠올려보라. 어딘지 짠한 느낌이 들면서도 코미디 톤이 느껴지는 인물이 아닌가. 그의 연기는 완전한 몰입이라기보다는 보는 이들이 저 사람은 연기를 하고 있구나 하고 이화시키는 쪽에 더 가깝다.
연기라고 하면 모두가 메소드 연기로 대변되는 몰입을 떠올리지만 반드시 그게 전부도 아니고 정답도 아니다. 연기는 완전한 몰입이 아니라 연기하면서도 이를 통제할 수 있을 만큼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기도 하고, 때로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그것이 연기라는 걸 인식시켜 오히려 그 상황에 대한 이성적인 접근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연기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담론들은 지금도 논쟁적일 정도로 정답이 없다.
따라서 중요한 건 유준상의 조금은 과장되고 연기하는 톤이 느껴지는 연기가 <풍문으로 들었소>에 어울리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유준상의 연기 톤은 기묘하게 한정호라는 인물과 맞아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정호는 괴물이다. 겉과 속이 이처럼 다른 인물이 없다. 속으로는 웃으면서 누군가를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을 만큼 무시무시한 이빨을 숨기고 있지만, 겉으로는 바보처럼 웃음을 지어보이기도 하고 짐짓 교양인의 가면을 쓰고 훈계를 하기도 한다.
도대체 무엇이 한정호를 이런 괴물로 만들었을까. 그것은 그가 살아가는 상류사회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얘기하면서 ‘우매한 대중’을 운운하는 이 책에 동의하지 않으며 그런 얘기를 하면 돌 맞는다고 말하는 서봄(고아성)과 한인상(이준)에게 한정호는 이렇게 말한다. “돌 맞고 말고. 그러니까 입 밖에 내지 말고 조용히 실천해라. 그게 진정한 힘이다.” 한정호는 겉으로는 대중과 평등을 외치지만 속으로는 대중의 우매함을 비웃는 그런 인사다.
겉으로 보이는 한정호는 그래서 실체가 아니다. 그는 연기를 하고 있다. <군주론>이 나온 16세기의 군주 연기다. 그가 괴물처럼 보이는 건 그래서다. 지금 21세기에 살면서 16세기 인물을 연기하는 삶을 살고 있다니. 이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결코 웃음이 나오지 않는 비극적인 현실이기도 하다. 그것이 우리네 상류사회가 갖고 있는 시대착오적인 괴물의 실체이기 때문이다. 갑질이라는 시대착오적 행위는 그 속내를 숨겨야할 군주 연기가 속내를 드러냈을 때 드러나는 사건이다.
유준상의 다소 과장된 연기와 연기하는 듯한 연기는 그래서 한정호라는 시대착오적 괴물과 맞춤이다. 주변인물들이 실체적인 삶을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반면, 한정호는 그의 집이라는 무대에서 16세기 시대에 머물러 연기하고 있는 비극적이지만 우스꽝스런 괴물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이 의도된 것인지 아니면 우연히 맞아 떨어진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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