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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명랑TV

'꽃보다 할배', 나영석 패밀리가 주는 판타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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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할배>, 타인이 가족처럼 가까워질 때

 

투덜이 이서진은 포세이돈 신전 앞에 가서도 투덜거렸다. ‘가까이 가 봐야 별 거 없다는 이서진의 이른바 그리스 멀리 이론은 멀리서 봐야 더 멋있다는 이상한 관전 포인트를 제시했다. 여행 떠나는 걸 꽤나 귀찮게 여기는 이 귀차니즘의 대가(?)는 여행을 짐스럽게 여기는 짐꾼이라는 캐릭터로 역시 <꽃보다 할배>라는 나영석표 예능에는 최적의 인물이라는 걸 증명해냈다.

 

'꽃보다 할배(사진출처:tvN)'

세상에 여행 즐기는 이가 여행하는 이야기만큼 평이한 것도 없을 게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이 나영석표 예능의 페르소나로 자리한 이서진은 경비에 있어서는 한없이 깐깐한 스크루지로 돌변하고, 혼자 있을 때는 자신의 처지를 그토록 토로하면서도 할배들 앞에만 가면 고분고분한 짐꾼으로 돌아가 소소한 것까지 살뜰히 살피는 사람이 된다. 이른바 나영석 패밀리에 이서진이 중심에 서게 된 건 바로 이 지극히 보통사람의 투덜거림을 갖고 있으면서도 실제 미션이 떨어지면 보통사람 이상의 정성을 쏟아내는 그의 특별함 때문일 것이다.

 

이서진의 그리스 멀리 이론은 곧바로 <삼시세끼>로 나영석 패밀리에 합류한 옥택연에게 전달된다. 택연은 그리스 여행을 가서 바로 이 그리스 멀리 이론에 적합한 셀카를 찍어 SNS로 화답한다. 이제 <꽃보다 할배><꽃보다 누나> 그리고 <삼시세끼>는 각각 동떨어진 프로그램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어벤져스>의 슈퍼히어로 캐릭터들이 다른 영화에서 다른 조합으로 나와도 <어벤져스>와의 이야기와 연동되는 것과 마찬가지의 효과를 낸다.

 

<꽃보다 할배>의 어르신들은 <삼시세끼>의 강원도 정선집에 놀러와 밥 한 끼를 같이 챙겨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이것은 <꽃보다 누나>의 누나들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최지우가 그러한 것처럼 잠시 <삼시세끼>의 게스트로 참여했던 그녀는 <꽃보다 할배>의 신참 짐꾼이 되기도 한다. <꽃보다 청춘>에서 순수 청년으로 등장한 손호준이 <삼시세끼> 만재도편에 갑자기 하차하게 된 장근석의 구원투수로 등장하는 것처럼, 이제 이들 프로그램들은 나영석 월드 안에서 자연스럽게 연동되고 있다.

 

그리스까지 가서도 가까이 다가가는 것보다 멀리서 보는 게 낫다는 귀차니즘의 극점을 보여주는 이서진이, 해산물 요리가 먹고 싶다고 했던 백일섭의 이야기를 잊지 않고 음식점에서 그걸 챙겨오는 이야기는 나영석 패밀리가 대중들에게 주는 훈훈한 판타지의 실체다. 이들은 처음 낯선 타인으로 만났지만 여러 차례 여행을 하면서 점점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이순재와 한 방을 쓰던 이서진이 아침에 일어나 이순재의 옷매무새를 직접 만져주는 장면은 가족 그 이상의 끈끈함을 보여준다.

 

박근형이 일정 때문에 먼저 귀국하자 셋이 쓰던 방에 그의 빈자리를 느끼는 신구와 백일섭의 모습이 그려진다. 청력이 좋지 않은 백일섭을 위해 여러 차례 큰 소리로 얘기를 해주고 어색할 수 있는 방 분위기를 친근하게 풀어내주던 박근형의 빈자리를 굳이 이 프로그램이 그려 넣는 건 나영석 패밀리가 이렇게 가족이 된 사람들을 살뜰히 챙기는 방식이다.

 

그것은 이서진의 방식과 닮았다. 어찌 보면 여행이라고는 해도 일이 될 수밖에 없는 그들이다. 하지만 그 일을 일이 아닌 즐거움으로 바꾸는 건 보다 더 깊숙이 가족 같은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그래서 간만에 나게 된 시간에 나영석 PD는 스텝들을 데리고 이서진을 운전기사로 세워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자기가 제일 나이 많은데 운전을 해야 된다고 투덜대면서도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모습. 이서진과 나영석은 그래서 이제는 형제 같고 제작진들 역시 그 패밀리의 구성원처럼 보인다.

 

산토리니에서의 마지막 날. 아쉬운 저녁을 나누며 그리스 여행을 회고하는 자리에는 그래서 나영석 PD도 함께 앉아 있다. 물론 그가 처음 화면에 얼굴을 내밀게 된 건 미션을 부여하는 그 역할을 리얼로서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화면 안에 들어와 이런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이제 제작진과 출연자들은 일 관계가 아닌 진짜 가족 같은 관계가 되었다고.

 

이것은 나영석 PD표 예능이 매번 성공하는 이유가 된다. 그들이 낯선 타인으로 만나 가족 같은 관계를 만들어가는 동안, 그걸 계속 봐온 시청자들 역시 가족 같은 친근함으로 이들을 쳐다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백일섭이 우리는 이제 패밀리가 되었다고 털어놓는 건 진심일 것이다. 그리고 그 <꽃보다> 패밀리가 주는 판타지는 이 어르신들의 즐거움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또 그 분들이 겪어온 세월에 대해 존경을 표하게 되는 이유가 되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