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는 예능 PD들? 알고 보면 그냥 직장인
KBS <프로듀사>가 그리는 건 예능 PD들의 세계다. 최근 들어 예능 PD는 드라마 PD보다 더 주목받는 존재가 되었다. <프로듀사>에서도 실명이 나오듯 <무한도전> 김태호 PD는 모두가 인정하는 ‘예능의 신’이고 <삼시세끼> 나영석 PD는 망하는 설정처럼 보이는 프로그램을 척척 살려내 심지어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까지 만들어내는 영향력의 소유자다.
'프로듀사(사진출처:KBS)'
하지만 이건 겉으로 보이는 모습일 뿐이고, 실제 삶은 여느 직장인과 그리 다르지 않다. 상사에게 까이고 밑으로부터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에게 위협받으며 매일 같이 시청률표를 성적표 들여다보듯 집착하고 프로그램을 위해 출연자들에게 사정사정을 하는 그런 직장인. 예능이라는 분야에서 일하니 그 일도 놀이 같을 것이라 여기지만 실상은 치열하기만 하다.
물론 잘 나가는 스타 PD들이야 말이 다르겠지만 보통의 예능 PD들이라면 출연자를 모셔야하고 시청률 눈치를 봐야 하며 또 프로그램이 언제 폐지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전전긍긍하며 살기 마련이다. 그들에게 판타지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프로듀사>에 출연하는 예능 PD들이 저마다 각자의 위치에서 ‘미생’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들로 그려지는 건 그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백승찬(김수현)이라는 신입 PD는 <미생> 장그래의 예능판 버전 그대로다. 토너 하나를 교체하는데도 수차례 왔다 갔다 하며 눈치를 봐야 하는 그런 존재. 마치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하듯 떠밀려 최고참 출연자에게 프로그램에서의 하차통보를 하라고 지시받는 그런 위치. 제 딴에는 예의를 차린다고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 통보를 하지만 자기 식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출연자 때문에 팀 전체를 곤혹스럽게 만들어버리는 그런 ‘미생’.
라준모(차태현)도 탁예진(공효진)도 중견 PD지만 생활인이기는 마찬가지다. <1박2일>이라고 하면 늘 즐거운 예능 아이템 회의가 이어질 것 같지만 이는 현실과는 다르다. 시즌4 PD인 라준모는 예능 아이템 회의 대신 출연자 전원 교체 통보를 어떻게 하면 기분 상하지 않게 할까를 고민하는 회의를 한다. <뮤직뱅크> PD라면 가수들에게 슈퍼갑일 것만 같지만 요즘처럼 기획사의 힘이 커진 상황에서 탁예진은 잘 나가는 아이돌 신디(아이유) 앞에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예능국 CP인 김태호(박혁권)는 여느 회사의 생존만 남은 중간 관리자와 다르지 않다. 상사 앞에서 어떻게든 잘 보이려고 갖은 입바른 소리를 하고, 어려운 일이나 위험한 일은 후배들에게 슬쩍 떠넘긴다. 하지만 그 역시 생활인의 체취가 묻어난다. 그 복잡하게 인간관계가 얽혀있는 방송사의 일들이 사실은 그 관계의 역학 속에서 굴러간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는 그는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보다 회식으로 갈 음식점이나 그 음식점에서 잘하는 음식 같은 자잘한 일상에 더 관심을 보인다. 이 얼마나 슬픈 모습인가.
이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예능 PD들의 모습이 아니다. 우리가 생각한 모습이 판타지에 가깝다면 이들의 현실은 알고 보면 그냥 직장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시각차 사이에서 느껴지는 페이소스 같은 것이 이들의 삶에는 묻어난다. 웃음을 주는 직업이지만 그들은 결코 늘 웃으며 살지 못한다. 한없이 화려해 보이는 방송 일을 하고 있지만 그들의 삶은 남루하기 이를 데 없다.
<프로듀사>는 그래서 예능 PD들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사실은 직장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예능 PD라는 직업은 직장인의 삶을 더 극화시키는 면이 있다. 그들이 웃음 바로 옆에 서 있기에 더 짠해지고, 화려함 옆에 서 있기에 더 초라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언론고시로 불리며 검사, 판사 같은 위상으로 ‘프로듀사’라 쳐다보지만 실상은 직업인 ‘프로듀서’인 그들을 이 드라마는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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