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경성스캔들’, 모든 게 위장이다 본문

옛글들/명랑TV

‘경성스캔들’, 모든 게 위장이다

D.H.Jung 2007. 8. 3. 13:17
728x90

퓨전의 맛을 만드는 ‘위장’이라는 요리법

색다른 맛을 가진 퓨전시대극, ‘경성스캔들’의 요리법은 ‘위장’이란 코드다. ‘경성스캔들’은 제목부터 그 속에 무엇이 담겨있을까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든다. ‘경성’이란 일제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용어에 ‘스캔들’이라니. 드라마는 시작부터 비밀댄스홀이 등장하고 바람둥이 선우완(강지환)이 기생 차송주(한고은)와 함께 경쾌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등, 이 드라마의 방향성을 교란했다.

이에 대한 반응은 엇갈렸다. 일제시대라는 무거운 역사의 틀을 과감하게 벗겨냈다는 호평과 함께, 아무리 그래도 그 비장한 시대에 로맨틱 코미디류의 멜로를 다룬다는 혹평이 동시에 나왔다. 하지만 이런 반응은 ‘경성스캔들’이란 퓨전의 첫 번째 위장술이 성공적이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탄일 뿐이었다.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그 베일이 한 꺼풀씩 벗겨져 나가면서 그들이 그저 일제시대라는 상황을 잊고 연애나 하는 한량들이 아니었음 밝히기 위한 위장술 말이다.

드라마 말미에 가서 결국 알게된 것은 차송주나 이수현(류진), 나여경(한지민), 강인호(안용준), 심지어는 지라시 출판사의 삼인조에서 바람둥이 선우완까지 어느 누구 하나 시대의 고통을 회피하는 인물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독립운동의 틀 안에서 움직이고 그렇게 되자 교과서 속에서 보았던 박제된 독립운동가들의 이미지는 보통 사람들의 항일운동으로 되살아난다.

독립운동을 하는 이들도 사람이고 사랑을 하고 아파한다. 그리고 그 개인적인 사랑의 아픔은 시대의 아픔과 동떨어져 존재하지 않는다. ‘항일투쟁의 가장 강력한 혁명전술이 위장연애’라는 설정은 이 드라마 속의 멜로와 시대극이 퓨전될 수 있는 힘을 제공한다. 그러자 놀랍게도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들이 보여주었던 트렌디한 신파류의 멜로는 참신해진다.

‘사랑한다’는 마음은 위장술의 뒤편으로 숨는다. 차송주를 사랑하는 이수현의 마음은 위장술 속에서 적인 것처럼 서로를 대하게 만들고, 나여경의 선우완을 사랑하는 마음은 종종 수줍게도 위장술로 위장된다. 사랑하는 사람(선우완)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다른 여자(총독부 보안과장의 딸)와 함께 몇 일간 여행을 떠나야 한다는 설정은 멜로가 시대적 아픔과 맞닥뜨려 시너지를 내는 지점이다.

무엇보다 이런 위장술을 멋진 양념이 되게 한 공은 출연한 연기자들의 몫이다. 위장술을 하는 연기자들의 연기란 결국 두 가지의 모습(드러난 모습과 드러낼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어려움을 안고 있다. 강지환은 바람둥이에서 사랑을 통해 투사가 되어 가는 모습을 통해 시청자들을 때론 웃기고 때론 울려주었고, 한지민은 당차면서도 귀여운 소녀 같은 이미지를 보여줬다. 류진은 일본 앞잡이와 애국지사라는 양면의 모습을 보여주는 어려운 역할을 소화해냈다. 무엇보다 한고은은 제 몸에 맞는 옷을 챙겨 입은 듯 차송주의 역할을 카리스마 넘치게 연기했다.

그리하여 이들 연기자들에 의해 활용된 위장술이란 요리법을 통해 ‘경성스캔들’이란 제목의 스캔들이 무엇인가가 밝혀진다. 그것은 스캔들을 위장한 독립운동이며 그 독립운동 속에서 아파하며 사랑했던 당대 젊은이들의 초상이다. 물론 이 퓨전 시대극이 시대의 아픔을 지나치게 가볍게 풀어냈다는 비판을 벗어나긴 힘들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부분이 또한 이 퓨전 시대극이 이룬 성과이기도 한 것은 일제시대라는 중압감을 벗어난 연후에야 새로운 시도가 가능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이념이 사라지고 생활이 남은 시대, 혁명을 일으키는 것은 이념보다는 사람 때문이라고 말하는 듯한 이 드라마는 의미를 갖게된다. 비장하진 않지만, 웃고 울고 실수하고 후회하는 당대 민초들이 어떤 식으로든 살아남아서 자기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했던 것은 어찌 보면 위장술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