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과 <베테랑>, 쌍 천만의 진의를 살리려면
영화 <암살>과 <베테랑>의 천만 관객 돌파에 의해 ‘쌍 천만’이라는 새로운 수식어가 만들어졌다. 그 힘들다는 ‘천만 관객’을 같은 시기에 두 편의 한국영화가 달성한 것. 그래서 그 의미를 되새기는 기사들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 천만이라는 상업적 수치에만 너무 집중하다보면 거기 담겨져 있는 진짜 의미를 놓칠 수 있다.
사진출처: 영화 <암살>,<베테랑>
사실 요즘처럼 멀티플렉스 영화관과 유통, 제작, 홍보마케팅이 하나의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상황에 천 만 관객은 이제 그리 호들갑을 떨 일은 아닐 수 있다. 상업적으로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일원화된 유통 배급의 힘으로 천 만 관객에 도달하는 일이 과거보다는 훨씬 수월해졌기 때문이다. 여름 블록버스터 시장이라는 특수성은 이를 가능케 하는 시즌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그래서 ‘쌍 천만’이란 어떤 의미에서는 이처럼 공고히 구축된 제작 배급 시스템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 수치에 대해서만 지나치게 의미부여를 한다는 것은 자칫 이 독점적인 상업적 시스템에 대한 암묵적 지지에 그칠 수 있다. 그것은 <암살>과 <베테랑>이 영화를 통해 얘기하려고 한 사회적 메시지들을 그저 상업적 성공으로만 결말짓는 일일 수 있다.
물론 <암살>과 <베테랑>이 모두 천만 관객을 넘어서는 대박 흥행을 가능하게 했던 건 그것이 상업적으로 잘 만들어진 장르물이라는 외형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의 독립투사들을 다루면서도 마치 액션물의 영웅담을 보는 듯한 경쾌함을 유지한 <암살>이나, 재벌과 서민 사이의 부조리하고 폭력적인 갑을 시스템을 갖고 왔지만 통쾌한 액션으로 영화를 풀어낸 <베테랑> 모두 상업영화로서 잘 만들어진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처럼 잘 만들어진 상업영화에 뇌관처럼 박혀 있던 ‘현실적인 문제제기’가 없었다면 이처럼 대중들이 호응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암살>이 결국 얘기하려는 건 여전히 청산되지 않은 일제의 잔재다. 민족을 배반하고 독립투사들을 향해 총구를 겨눴던 인물이 ‘반민특위’의 재판에서 오히려 큰 소리를 치고 법정을 빠져나오는 장면은 그래서 이 영화에 깊은 여운을 만들었다. 어찌 보면 <암살>은 상업적인 영화의 끝에 현실적인 무게감의 숙제를 남겨놓았던 것이나 마찬가지다. 친일파의 문제는 현재의 거대 자본의 문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베테랑>이 제기하는 재벌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베테랑>은 자본의 힘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구가하는 재벌의 문제를 액션 장르로 잘 그려낸 영화다. 돈이면 뭐든 다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자본이 어떻게 서민들의 살 터전을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밀어내버리는가를 잘 보여준다. 법 정의조차 재벌의 손에 좌지우지되는 이 현실 속에서 <베테랑>은 일종의 서민 판타지를 그려냈다. 그것은 물론 영화적 판타지지만 그 판타지 속에는 서민들이 가진 울분과 새로운 사회에 대한 희구가 담겨 있다는 점에서 그저 허구로만 치부될 수 없는 것들이다.
즉 <암살>과 <베테랑>이 모두 천만 관객을 넘기게 된 데는 거기에 현실에 부재한 것을 희구하는 ‘대중 정서’가 깔려 있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 ‘천만 관객’을 상찬하면서 상업적 성공에 대해서만 얘기하다보면 정작 이 영화들이 깔고 있는 상업적이고 자본적인 세계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놓치는 부조리를 갖게 된다. 영화를 보며 그토록 대중들이 열광했던 건 그 안에 자본 현실에서는 도무지 이뤄지지 않을 해결책들이 영화적 판타지로 담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이 영화들이 던지고 있는 메시지들이 현실적인 울림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이러니한 일이 되고 말 것이다. 자본의 놀라운 힘은 자본을 비판하는 것조차 상업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두 시간여의 판타지를 보고 그저 통쾌함을 느낀다고 해도 영화관 밖을 나오면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는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아니 오히려 이런 정서들조차 상업적으로 만들어져 또 다른 자본이 되는 아이러니를 겪게 되는 지도 모른다.
물론 <암살>과 <베테랑>은 지극히 상업적인 영화다. 하지만 그 안에 담겨진 메시지에는 분명 진정성이 있다. ‘천만’이라는 수치가 얘기해주는 건 그 상업적 성공만이 아니라 지금의 대중들의 마음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분노와 갈증이다. 이제 현실이 그 마음들에 응답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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