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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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듀스101'이 불편해? 현실은 더 살벌하다

D.H.Jung 2016. 3. 2.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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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듀스101>, 불편하지만 지지할 수밖에 없는 까닭

 

Mnet <프로듀스101>은 첫 방송이 나간 이후부터 줄곧 이 프로그램을 보는 불편한 시선들이 존재해왔다. 그것을 촉발시킨 건 첫 무대에 대놓고 A등급부터 F등급까지 소녀들 면전에서 쇠고기 등급 찍듯이 낙인찍은 대목이다. 사실 순위나 등급만큼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것도 없다. 그것은 학생이었을 때나 사회에 나와서도 늘 꼬리표처럼 우리에게 달려 모든 가치를 얘기해주는 잣대로 사용되던 것들이 아닌가. 1위부터 101위까지를 죽 나열해 피라미드식으로 세워놓는 <프로듀스101>이 불편해지는 건 그것이 우리네 경쟁적인 현실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프로듀스101(사진출처:Mnet)'

<슈퍼스타K>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 역시 마지막에 가서는 톱10을 뽑지만 그 전까지는 합격, 불합격으로 당락을 결정해 구체적인 순위를 내걸지는 않는다. 하지만 <프로듀스101>은 다르다. 제목 속에 ‘101’이라는 숫자가 들어가 있다는 것은 이미 이 걸 그룹 오디션 프로그램이 대놓고 숫자를 내세우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처럼 여기 출연한 연습생들이 딛고 있는 불편한 삼각 구조의 피라미드를 확인하고 그것이 우리네 현실과 다르지 않다는 걸 느끼면 느낄수록 다른 한 편에 생겨나는 감정들이 있다. 그것이 이 어린 소녀들이 이 불편한 수직구조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모습을 마치 자기 동일시하며 보게 되는 양가감정이다. 한편으로는 몹시 불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 소녀들에 대한 애착과 지지, 동정심과 공감 같은 것들이 생겨난다.

 

처음 ‘Pick me’라는 노래로 센터에 서게 됐던 판타지오의 최유정은 <프로듀스101>의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마치 외톨이처럼 우울한 처지를 보여준 바 있다. 그런 그녀가 각고의 노력을 통해 D클라스에서 A클라스로 단번에 승급하고 결국 101명의 센터에 서서 이 연습생들의 얼굴 역할을 하게 되자 대중들은 그것이 마치 내 일이나 되는 양 반색한다. 언제 방출될지 알 수 없는 살벌하고 낯선 판 위에 서 있지만 그래도 웃으며 무대에서 노래하는 최유정. 그것은 아마도 현실의 수직적 시스템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사실 <프로듀스101>에서 주목되는 건 굉장한 실력을 가진 연습생의 멋진 무대 그 자체가 아니다. 사실 실력으로 보면 JYP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첫 출연부터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냈던 전소미가 단연 주목되지만, ‘국민 프로듀서들은 그녀보다는 젤리피쉬의 김세정을 1위에 올려놓았다. 그것은 김세정이 팀 미션을 할 때 안무에서 영 자질을 보이지 못했건 김소혜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도와줬던 모습이 방송을 통해 비춰졌기 때문이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김소혜가 밤새워 노력해 일취월장한 안무를 보여주자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배윤정 선생님이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프로듀스101>이 추구하는 것이 최고의 실력을 갖춘 국민 걸 그룹이 아니라 이 과정에서 피나는 노력을 통해 그 진정성을 드러내고 그래서 대중들의 지지를 받는 그런 걸 그룹의 탄생이다. 물론 실력은 중요하겠지만 그것만큼 중요해진 게 인성이나 진심 같은 것들이다.

 

사실 이 인성과 진심은 현실에서는 그리 중요한 잣대로서 기능하지 않는 것들이다. 현실은 결과만을 바라본다.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실력은 어느 정도이고, 외모는 어느 정도이며, 그래서 갖고 있는 스펙이 무엇인가를 볼뿐이다. 하지만 <프로듀스101>은 방송이라는 특징이 그러하듯이 외모나 실력 하다못해 내놓을 만한 기획사라는 스펙도 없는 연습생이라도 그 노력의 과정을 포착해줌으로써 피라미드의 윗부분에 그들을 앉게 해준다. 김소혜는 실력에서 한참 떨어졌지만 22만여 표를 얻어 전체 11위에 오른다.

 

이 부분은 <프로듀스101>이 갖고 있는 살벌한 현실 재연의 뒤편에 숨겨져 있는 판타지다. 즉 이 프로그램의 불편함의 정체는 다름 아닌 그 살벌한 현실 재연에서 비롯되는 것이지만, 그 바탕 위에서 현실과는 다른 판타지가 제공되고 있다는 점이다. 걸 그룹 오디션을 하면서 그 경쟁적인 현실을 숨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여기 출연한 연습생들의 실체이기 때문이다. 여기 출연한 연습생들은 아마도 기획사에서는 더 혹독한 환경 속에서 버텨내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나마 이 프로그램은 이들의 존재를 드러내주고 있지 않은가.

 

어쩌면 현실은 연습생들이나 우리네 서민들이나 더 혹독하고 살벌할 것이다. 그래서 그걸 그대로 보여주는 <프로듀스101>은 불편하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 현실을 밟고 있는 소녀들에 대한 몰입과 지지는 더 강해진다. 이것이 이 오디션 프로그램이 갖고 있는 힘이다. 불편해도 지지할 수밖에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