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스트’가 가진 묘미와 딜레마
일주일 내내 사극이 방영되는 요즘, 현대물로서 ‘로비스트’의 가치는 오히려 더욱 빛난다. 실제로 매번 과거의 역사 속 드라마들의 시간대를 보다보면 늘 같은 밥상에 물리듯 싫증도 나게 마련이다. 그럴 때 ‘로비스트’는 입맛을 돋워주는 별미 같은 드라마가 된다. 무엇보다도 보는 맛이 일품인 드라마다. 그 색다른 코스요리는 먼저 스케일에서부터 시작한다.
보는 맛이 일품인 드라마
드라마들이 국내의 가정집들을 오가고, 기껏해야 지방 정도의 공간을 이동하던 것에 비하면 ‘로비스트’는 스케일이 큰 드라마다. 해외로케를 한 드라마들은 종종 있었지만 이처럼 해외에 상주하면서 찍은 드라마는 일찍이 없었다. ‘로비스트’라는 직업상 국제적인 면모를 띨 수밖에 없는 것. 드라마가 이동하는 공간은, 동해안의 작은 어촌 마을에서부터 시작해 미국의 뉴욕, 워싱턴은 물론이고 키르키즈스탄까지 광대하다.
단순히 장소만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움직이는 인물들의 면면도 새롭다. 로비스트라는 직업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말. 미국 영화에서나 보던 미국 정보국 인물들과 마피아들, 거기에 연루되는 무기 거래상들 그리고 국정원 요원들까지 드라마가 보여주는 인물들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기 어려웠던 캐릭터들이다. 그 속에 서로 다른 이유로 로비스트가 되어가는 해리(송일국)와 마리아(장진영)의 뒤얽히는 이야기는 지금껏 우리 드라마가 보여주지 못했던 부분이라는 점에서 참신하게 다가온다.
게다가 드라마는 동해안 북한잠수함침투사건이나 린다 김 사건 같은 실제 벌어졌었던 사건들을 드라마 속에 풀어놓는다. 물론 허구적인 상상력이 곁들여진 것이지만 뉴스의 한 장면으로 보았던 그 사건들은 눈앞에서 생생하게 재연된다. 이미 알고 있던 사건의 심층적인 재연은 그 자체로도 충분한 볼거리가 된다. 이것은 최근 들어 사실에 허구의 상상력을 부여하는 팩션이 열풍처럼 유행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스토리를 앞서는 볼거리
이런 정도로만 봐도 ‘로비스트’는 블록버스터 드라마로서 사전에 치밀한 계획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블록버스터는 흔히 사이즈가 크다는 것으로만 인식되어 있는데, 좀더 정확히 얘기한다면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더 클 것이다. 이것 또한 ‘로비스트’가 현재 달라지고 있는 매체 환경에 제대로 적응한 드라마라는 걸 말해준다. HDTV의 보급과 점점 커져서 홈 시어터로 가고 있는 TV, 그리고 이제는 국외까지 넓어진 시장에 맞게 좀더 큰 스케일에 대한 요구 등을 이 드라마는 정확히 수용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드라마의 블록버스터화는 반드시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할 수밖에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렇게 블록버스터화 되다보니 생기는 문제점들도 있다. 먼저 블록버스터는 기본적으로 시청자들의 볼거리 욕구를 자극시키는 영상들을 잡아내야 한다는 점이다. ‘로비스트’가 소재로서 보여준 동해안 북한잠수함침투사건이나 첫 회에 미리 보여준 키르키즈스탄에서의 총격전은 스토리보다 그 볼거리가 더 중요한 장면들이다.
보통의 드라마가 스토리를 먼저 구성하고 거기에 맞는 장소를 헌팅 하는 순서로 작업된다면 블록버스터 드라마는 때론 그 순서가 역전된다. 먼저 볼거리가 되는 장소나 설정을 먼저 구상하고 그 위에 스토리를 얹는 것이다. 해리가 마리아에게 총을 겨누는 미국에서의 대면장면 같은 것은 그 장면이 보여주는 자극적인 볼거리가 먼저 구성됐을 가능성이 높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총을 겨눠야 한다는 설정 자체가 시청자들에게는 어떤 스토리의 인과성 이상으로 더 어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장면은 여러 번, 예고장면을 통해서 방영되며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게 사실이다.
블록버스터의 딜레마
이것은 볼거리를 강조해야 하는 블록버스터들이 어쩔 수 없이 갖는 딜레마일 것이다. 그리고 실상 그 볼거리만으로도 드라마는 충분히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 너무 반복되면 문제가 된다. 스토리 속에서 인물들이 보여주는 감정 선이 시청자들에게 이입되기도 전에 계속되는 볼거리에 짓눌리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극중인물들은 자칫 볼거리에 압도당한 수동적인 존재가 되기도 한다. 볼거리 속에 끼워 맞춰질 수 있다는 얘기다.
‘로비스트’는 기획이나 제작, 그리고 소재까지 잘 만들어진 드라마다. 특히 몸을 아끼지 않는 송일국과 장진영, 그리고 선과 악의 이중적인 면을 특유의 카리스마 연기로 소화하고 있는 허준호, 비운의 주인공, 한재석 게다가 놀라운 연기변신을 보여주고 있는 김미숙까지 연기자들의 호연이 두드러지는 드라마다. 하지만 가끔 이 연기자들의 연기가 너무나 어렵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스토리 자체가 자연스러운 극적 긴장감으로 가지 못하고, 볼거리 설정 속에서 연기력으로 장면을 소화해내야 하는 연기자들의 고충이 언뜻 보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볼거리 많은 색다른 맛의 드라마, ‘로비스트’가 가진 딜레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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