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위의 중간광고 범위 확대 결정, 누구를 위한 것인가
방송위원회는 지상파방송 프로그램의 중간광고 범위를 확대키로 결정했다. 이게 시행되면 이제 드라마를 보다가 중간에 갑자기 툭 끊기고는 흘러나오는 광고를 참고 봐야 된다. 방송위가 이를 결정한 명분은 이렇다. ‘다매체시대 신규매체 성장으로 인한 방송환경의 변화,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전환 및 공적 서비스 구현을 위한 안정적 재원 확보, 방송시장 개방에 따른 방송산업 경쟁력 강화’가 그것이다. 그럴 듯해 보이지만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이 결정은 그저 돈을 더 벌겠다는 뜻이 아니고 다 시청자들에게 양질의 방송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란 말이다. 결과적으로 그걸 위해 돈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지만.
그런데 이 중간광고 범위 확대가 가져올 파장을 생각해보면 방송위의 결정이 옳은 것인지 의문이 간다. 광고 송출의 방식은 고스란히 컨텐츠의 변화로 이어질 것이 뻔하다. 시청률 경쟁은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미드(미국드라마)의 경우, 중간광고가 가져온 파장은 컨텐츠에도 그대로 영향을 주었다. 중간 중간 끊기는 부분이 생기기 때문에 더 속도감 있는 진행을 가능하게 하여 결과적으로 컨텐츠의 경쟁력을 높였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본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것은 광고에 대한 컨텐츠의 종속이 강화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이것이 우리가 보는 TV 프로그램의 실체라고 얘기할 수도 있다. 우리는 프로그램을 보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프로그램들 사이에 끼워진 광고를 보고 있다는 말이다. 지나치게 부정적인 시각이지만 상업적으로 치닫고 있는 프로그램들의 실체는 분명 이 광고에 의한(겉으로는 시청률로 말해지는) 영향력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방송위가 필요한 것이다. 즉 방송위의 존재이유는 바로 이렇게 상업화되어 가는 방송에 공익적인 방향성을 주는 데 있다는 것이다. 방송위가 존재하는 것은 TV를 공공재로서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런데 방송위의 이 결정은 과연 그런 인식 기반 위에서 생겨난 것으로 볼 수 있을까. 어쩌면 이 결정은 방송위 자체의 존재이유 기반을 흔들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광고도 하나의 컨텐츠라고 하지만 더 많은 광고를 보길 원하는 시청자들은 없다. 그것도 프로그램 중간에 끼어 드는 광고는 그 새로운 형태로 인해 프로그램 자체의 상업적인 입지만 더 공고히 해줄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게다가 외주제작이 일반화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시청률 경쟁의 불꽃은 고스란히 바깥으로도 튈 것이 분명하다. 광고수주를 결정짓는 시청률에 의한 과당경쟁은 컨텐츠의 질을 높여주기는커녕 폐해만을 만들 뿐이다.
공중파 방송의 상황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나 그 원인이 단순히 재원부족에서 비롯되었다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방만한 경영에 더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은 KBS의 시청료 인상을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시각과도 일치할 것이다. 도대체 시청자들을 위해 더 많은 광고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늘 어려운 시기마다 시청자들에게 손을 벌리는(사실상 손을 벌리기보다는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는 표현이 맞다) 이런 결정은 TV가 공공재라는 이제 겨우 남은 작은 옷마저 거추장스럽게 여기는 방송사들의 인식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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