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 예능, 뉴스의 문제점과 해법
SBS의 최근 시청률 성적표(11월5일-11일 AGB 닐슨 집계)를 보면 특이한 점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전체 시청률 상위 20위권에 들어있는 SBS 프로그램은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18.7%)’가 11위에 랭크된 것을 빼고는 전부 드라마 일색이라는 점이다. ‘황금신부(23.5%, 5위)’, ‘왕과 나(20.2%, 8위)’, ‘조강지처클럽(14.1%, 14위)’, ‘아침연속극 미워도 좋아(13.6%, 18위)’가 그 드라마들이다. 물론 전체적으로 드라마가 대부분 상위 랭킹에 들어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각 방송사별로 몇몇 예능프로그램이 자리하고 있는 점을 보면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MBC는 ‘무한도전(21.9%, 7위)’, ‘황금어장(15.3%, 12위)’의 예능과 ‘태왕사신기(29.5%, 3위)’, ‘이산(22.5%, 6위)’같은 드라마가 고루 포진해있고, KBS는 미니시리즈가 어렵다고는 하나 일일연속극의 절대 강자 ‘미우나 고우나(32.5%, 1위), 대하드라마 ‘대조영(32.2%, 2위), 그리고 주말드라마 ‘며느리 전성시대(26.9% 4위)’가 굳건하고, 전통적으로 강한 ‘KBS 9시 뉴스( 19.1% 10위)’가 있으며 여기에 다채로운 예능프로그램들(비타민, 해피투게더, 우리말 겨루기, 퀴즈대한민국, 개그콘서트)이 20위 권에 들어있다.
하지만 기대주였던 ‘로비스트’와 ‘왕과 나’의 시청률이 떨어지면서 현재 드라마마저 하향세를 보이기 시작하고 있는 상황, SBS는 인정하기 어려운 뼈아픈 일이지만 총체적인 난국을 겪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개국부터 새로운 도전정신과 시도로 독특한 컨셉의 프로그램들을 만들어내는 저력을 보였던 SBS. 능력은 있으되 그 능력을 펼치지 못하는 SBS의 상황은 저 ‘왕과 나’의 김처선이 갖고 태어났다는 삼능삼무(三能三無)의 운명을 떠올리게 만든다. 도대체 무엇이 SBS를 삼능삼무의 상황으로 몰고 왔을까.
일능일무(一能一無) - 기획은 창대하되 완성도가 떨어지는 드라마
SBS의 드라마 기획은 방송3사를 통틀어 가장 도전적이고 도발적이다. 그것은 현재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들의 면면을 보기만 해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다. 라이따이한을 등장시켜 다문화 사회가 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변화상을 제대로 포착한 ‘황금신부’, 왕조중심의 사극에서 탈피해 내시의 시각으로 역사를 재조명한다는 취지의 ‘왕과 나’, 대작드라마로서 로비스트라는 독특한 직업세계를 시각적으로 그려낸 ‘로비스트’ 등은 그 기획만 가지고 본다면 대단히 야심찬 시도라 할만하다.
이러한 독특한 기획의 성공은 사실상 SBS 드라마들의 최대 장점이다. 전문직 장르 드라마와 우리네 멜로드라마를 성공적으로 봉합시킨 ‘외과의사 봉달희’는 물론이고, 대부업(쩐의 전쟁)이나 교육문제(강남엄마 따라잡기) 같은 주로 사회적인 문제나 이슈들을 소재로 끌어들이면서 사회적 관심까지 유도하려 했던 사회극들은 그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기획의 장점은 실제 기획대로 드라마가 구현되지 않으면서 오히려 단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왕과 나’가 가진 기획 포인트인 내시의 시각은 사극 속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으며, ‘로비스트’는 과도한 볼거리에 스토리가 매몰 당한 형국이 됐다. 그나마 ‘황금신부’가 선전하고 있지만 이것은 애초 기획의도와는 상관없이 전통적인 드라마들의 코드들(출생의 비밀 같은)을 잘 엮어낸 결과이다. 역대 가장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주었던 ‘연애시대’가 SBS의 드라마였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 SBS 드라마는 최근의 시청률 하락을 통해 이제 시청자들이 원하는 건 기획의 창대함보다는 내실 있는 완성도라는 걸 알아야 할 것이다.
이능이무(二能二無) - 시작은 했으나 조기에 문닫는 예능 프로그램
한 때 SBS는 예능 프로그램의 강자로 군림했었다. 대표적인 프로그램들이 ‘야심만만’, ‘진실게임’, ‘X맨’등이다. 하지만 현재를 보면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최강자로 군림했던 ‘X맨’이 종영하고 나서 그 멤버들은 타 방송사의 프로그램 속으로 편입되었다. 현재 예능프로그램의 최강자로 자리잡은 MBC ‘무한도전’의 유재석과 ‘무릎팍도사’와 KBS‘1박2일’에서 활약하고 있는 강호동은 모두 ‘X맨’이 배출한 스타들이었다. 리얼리티쇼가 대세가 되고 있는 현재의 예능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는 캐릭터의 형성에 ‘X맨’이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현재의 SBS 예능프로그램의 난항은 그 후속 프로그램을 개발하지 못한 자책의 결과라는 걸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런 자책감의 결과일까. 최근 SBS의 예능 프로그램들은 두 방향에서 압박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하나는 ‘기다리지 못하는 조급증’이다. 최근 들어 ‘SBS의 예능 프로그램은 모두 파일럿’이라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로 프로그램들이 몇 달(심지어는 몇 회)을 넘기지 못하고 폐지되고 있다. ‘X맨’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한 안간힘은 저 ‘슈퍼바이킹’ 같은 컨셉트 부재의 프로그램까지 등장하게 만들었다. 최근 ‘하자고’, ‘작렬 정신통일’, ‘옛날 TV’, ‘대결 8대1’, ‘스타킹’등등의 예능 프로그램의 조기종영(?)은 이 조급증이 극에 달했다는 걸 보여준다.
반면 또 하나의 압박은 ‘야심만만’, ‘진실게임’같은 장기 방영된 예능 프로그램이 좀체 현재에 맞는 옷을 입지 못하고 과거의 틀에 매여 있다는 점이다. 연예인들의 홍보 프로그램논란이 나왔을 때부터 ‘야심만만’의 문제는 지적되었다 보아야 한다. 하지만 ‘야심만만’은 과거나 지금이나 연예인들이 등장해 신변잡기를 논하고, 홍보의 장으로서 활용되고 있다. ‘진실게임’의 경우는 그 구태의연한 포맷에 더해서 심각한 소재부족의 한계에 다다른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같은 제목이라도 계속해서 발빠르게 새로운 포맷을 시도하는 타 방송사(‘지피지기’같은)와는 너무 다른 행보라 할 수 있다.
SBS의 예능프로그램들은 지금 예능의 지존이 된 ‘무한도전’이 걸어온 길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무한도전’은 초반 시청률 4%에서 시작해 현재 25%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물론 그렇게 자리잡기까지 꽤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만큼 오랜 시간을 기다려준 결과가 ‘무한도전’이라는 점이다. 또한 중요한 건 그 시간 내내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무한도전’은 ‘무리한 도전’, ‘무모한 도전’ 같은 다양한 포맷실험을 통해 현재 위치에 서게 되었다. 쏟아져 나오는 예능프로그램 속에서 필수적인 건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정신이지만, 또한 그것이 정착될 때까지 기다려주고 변화가 필요할 때 변화를 만들어주는 끝없는 노력이 없는 한 예능 프로그램의 성공은 점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삼능삼무(三能三無) - 도전적 뉴스 시간대, 참신함이 없는 뉴스
200여명에서 많게는 300명에 이르는 보도국이 만들어내는 뉴스의 시청률이 10% 이하에 머물고 있다는 점은 지금 방송사들의 최대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뉴스를 이대로 존속시켜야 하는가 하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물론 뉴스는 반드시 있어야 하지만 그것을 자체적으로 소화하느냐 아니면 외주로 만드느냐는 점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에서 자유로운 방송사는 KBS 뿐이다. 공영방송이라는 이미지 탓이기도 하지만 그 시간대에 뉴스를 관성적으로 틀어놓는 시청자들의 패턴 속에서 KBS는 확실히 타 방송의 뉴스보다 우위를 갖는 장점이 있다.
뉴스의 존폐를 운운하는 것은 너무 성급한 판단이라 생각되지만, 관심을 끌지 못하는 뉴스가 더 이상 뉴스의 기능을 하고 있는가 하는 고민은 해야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저녁 8시라는 도전적인 뉴스 시간대로 시작한 SBS가 왜 현재는 최하위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여러모로 9시라는 뉴스 시간대보다 1시간 빠르다는 점은 엄청난 이점을 갖는다. 선 보도라는 장점 이외에도 8시라는 다른 시간대는 뉴스의 좀더 자유로운 포맷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8시 뉴스는 기존 9시 뉴스의 틀을 반복하는 수준에서 그치고 있다. 오히려 ‘MBC뉴스데스크’는, 좀더 시각적인 뉴스 포맷이나 주말 뉴스판의 여성 앵커 기용 등의 도전을 하고 있는 형국. 현재 고작 20여명이 만드는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가 2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반면, ‘SBS 8시 뉴스’ 시청률이 7, 8%에 머물고 있는 점을 잘 새겨볼 필요가 있다. SBS에 의해 초기 도전적으로 시도되었던 VJ(비디오 저널리스트)시스템은 ‘순간포착’에서 볼 수 있듯이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뉴스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가능성이 높다. 8시 뉴스는 그 시간대가 말해주는 초심으로 돌아가 거기에 맞는 도전적인 참신함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가장 늦게 공중파에 합류한 SBS는 도전적인 자세로 가장 안정적인 삼각경쟁구도를 만들어낸 방송사다. 따라서 충분히 그러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저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능력이 있어도 제대로 쓰여지지 않으면 자칫 삼능삼무의 무위에 그칠 수도 있다. 위기는 기회라는 점에서 지금의 위기를 제대로 직시하는 것은 문제 해결의 발판이 될 것이다. 부디 삼능삼무(三能三無)가 삼능삼능(三能三能)으로 바뀌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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