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알쓸신잡3’의 잡다한 수다가 신비롭고 가치 있게 느껴지는 건 본문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유시민 모습 통해 본 '알쓸3'의 진가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심훈이 쓴 시 ‘그 날이 오면’을 읽던 유시민은 일제강점기 나라 잃은 고통을 절절히 담아낸 그 시의 표현을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해방이 되는 날을 상상하면서 쓴 그 시는 우리가 심훈 하면 먼저 떠올리는 소설 <상록수>의 분위기와는 너무나 다른 것이었다.
tvN <알쓸신잡3>가 찾아간 서산, 당진에서 유시민은 심훈문학관을 찾았다. 유시민이 안타까워한 건 심훈의 <상록수>에 대해서 ‘순진한, 지식인류의 계몽주의를 벗어나지 못한’ 소설로 많이 읽혀졌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심훈의 살아온 삶을 들여다보면 어째서 <상록수>를 그렇게 ‘야들야들한’ 연애소설의 틀로 썼는가를 공감할 수 있다고 했다.
1901년에 태어나 지주집안의 도련님이었던 심훈은 “그냥 낭만적인 글이나 끄적이면서 잘 살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1919년에 3.1운동에 참여했다가 잡혀가 8개월 징역을 살고 나온다. 8개월만에 집행유예로 나왔지만 고등학교에서 퇴학당한 심훈은 중국으로 건너가 이시형, 이회영, 신채호 같은 독립운동가들과 교류하고 공부하고 돌아와 시인, 소설가, 영화배우, 영화감독, 시나리오 작가, 신문기자, 아나운서, 독립운동가, 비평가로 맹렬히 활동한다.
하지만 그토록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도 일제의 사상 검열에 원고 삭제 연재 중단은 계속 이어진다. 실제로 문학관에 남아있는 심훈의 원고에는 빨간 줄이 빼곡하게 그어져 있고 삭제라는 문구들이 찍혀 있었다. 즉 유시민은 심훈이 <상록수> 같은 연애소설의 달달한 방식의 포장이 아니면 민족의식을 담아내기가 어려웠을 거라는 것이다. 즉 그 방식이 어쩔 수 없는 작가의 의도였을 거라는 것이다.
유시민이 심훈이라는 인물을 읽어내고 이를 통해 그가 쓴 <상록수>라는 작품을 새롭게 보이게 만드는 과정은 <알쓸신잡>이라는 프로그램이 가진 가치를 잘 드러낸다. 만일 엄격한 교양의 형식을 갖고 있는 프로그램이라면 이런 식의 ‘해석들’이 자유롭게 펼쳐지는 데 어떤 한계가 드리워졌을 게다. 하지만 예능이고, 여행하며 수다를 풀어놓는 틀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알쓸신잡>에는 더 많은 자유로운 상상들이 더해진다.
해미읍성을 다녀와서는 천주교 신자들에게 잔혹하게 이어졌던 박해 사실을 이야기하고 그 이야기는 다시 종교란 무엇인가에 대한 수다로 이어진다. 그 많은 종교에 대한 박해와 차별을 보고 있으면 ‘종교가 인간성을 북돋운다’는 말 자체를 믿을 수 없다고 유시민은 말한다. 여기에 대해 과학자이자 무신론자라는 김상욱 교수는 종교의 의미를 다른 차원에서 생각한다고 말한다. “종교는 인간이 해야 하는 가장 근본적인 합의를 갖고 있는 측면이 있다”는 것. 그는 인간이 돼지를 마음껏 죽일 수 있는 권리는 종교가 준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문명의 기반에 질문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들에 종교가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종교 이야기에서 이어진 ‘마음을 여는 절’ 개심사의 나무의 구부러진 형태 그대로 기둥을 세워 만든 범종각을 보며 유시민은 그 자연의 선이 주는 ‘안온함’을 이야기하고, 김영하는 소설가답게 개심사는 이름답게 모든 게 자유롭다며 비뚤어진 기둥도 “괜찮아”라고 말했을 것 같다는 문학적 상상력을 더해준다. 종교 이야기에 개심사의 불교 이야기로 넘어간 수다는 <매트릭스>가 담은 다종교적 세계관으로 이어지고, 그 이야기는 다시 SF가 가진 ‘지구제국’이 형성될 거라는 예감으로까지 나아간다.
김종필이 만들었다는 한우목장에서 관리되는 수소의 이야기에서 다시 SF적 상상력이 더해져 ‘관리되는 인간세계의 미래’를 그려보기도 하고, 유전자 관리를 통해 지금 좋다고 선택된 어떤 유전자가 다양성을 잃어버리면 간단한 박테리아 하나로 멸종까지도 될 수 있다는 김상욱의 과학적 상상으로 이어진다. 인간의 인위적 선택이 가진 근시안적 성격은 기묘하게도 대부분의 만이 간척되어 농경지로 바뀌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갯벌이 더 산업적 가치를 갖게 되고 나아가 환경문제가 심각해져 역간척이 논의되고 있다는 이야기와 어우러진다.
주어진 자연적인 조건들이 있고 그 조건 위에서 이뤄지는 인간의 선택에 의해 많은 것들이 변화한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좋게도 나쁘게도 만들어진다. 중요한 건 그런 선택의 결과들을 읽어내며 해석함으로써 다음의 선택을 좀 더 좋게 하려는 노력이다. <알쓸신잡>이 어느 특정 지역의 현장으로 가서 그 곳에 만들어진 누군가의 선택들을 들여다보며 수다로 주석을 다는 행위는 그래서 ‘신비로우면서도’ 가치 있는 일이 된다.
심훈의 결코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던 치열하게 선택했던 삶을 통해 <상록수>를 다시 보게 되고, 해미읍성의 종교 박해를 통해 종교의 잔인함과 동시에 우리 문명에 깃든 선택을 읽어내며, 개심사의 구부러진 나무기둥을 선택한 ‘열린 마음’이 지금껏 찾는 이들에게 안온함을 주고 있다는 걸 새삼 발견한다. 한우목장의 관리되는 소와 한 때 간척을 선택했던 곳에서 논의되고 있는 역간척 사업을 들여다보며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선택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알쓸신잡>이 가진 예능적인 열린 틀과 그래서 좀 더 자유로운 상상의 틈입들은 그래서 잡다한 수다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선택했던 것들을 다시금 들여다보게 한다는 점에서 ‘신비로운 가치’로 다가온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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