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신잡3’, 개화기 폐쇄정책이 오늘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건
“열어서 실패할 수도 있고 성공할 수도 있지만 닫아걸고 성공한 나라는 없어요. 왜냐하면 인간의 기술발전과 교통수단의 발전과 정보통신의 발전과 이런 것들 때문에 사람들이 서로 의존해서 상부상조 분업해서 살아가는 범위는 계속 커지는 게 빅뱅처럼 진행되어 온 거죠. 가속팽창 하는 우주에서 혼자서 고립하겠다고 하면... 결국 조선은 열어서 실패했을 수도 있다고 봐요. 그러나 성공할 기회조차 잡아보지도 못하고 그냥 일제 식민지로 떨어져 버린 거죠. 안타깝죠.”
첫 눈 내리는 날 강화도로 간 tvN <알쓸신잡3>에서 유시민은 개화기에 그 곳에서 벌어졌던 병인양요, 신미양요 같은 사건들을 이야기하며 이렇게 말했다. 프랑스와 미국의 함대가 연달아 강화도를 침범했던 사건들. 김상욱 교수는 신미양요 때 광성보에서 있었던 미군과의 전투에서 안타깝게도 군대 규모나 총기에 있어 절대적인 열세에 있던 조선 수비군 300여명이 전멸했고, 그 때 미군들이 질렸다고 말했다. ‘이 사람들은 왜 저렇게까지 저항하는 걸까’ 했다는 것. 이 광경은 우리가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그 참혹함을 목도한 바 있다.
“우리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은 거예요. 그냥 지키고 산다 우리 것을. 그리고 당시 조선의 집권세력들이 새로운 것이 들어오는 것을 다 억누르는 식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백성들도 그걸 따라간 거죠. 그 외에는 다른 가치관이 없으니까. 나라를 위해서 또는 우리의 삶의 터전을 위해서 우리는 끝까지 싸운다 이렇게 한 건데 거기서 병사들이나 군인들이나 백성들이 죽어나간 건 너무 안타깝고 화나는 일이지만 조선은 눈 가리고 있었던 거예요.” 유시민은 이렇게 이야기하며 우리가 사는 삶에도 ‘관성의 법칙’이라는 게 있는데 새로움을 받아들이지 않고 하던 대로의 삶과 가치관만을 지키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일 수 있는가를 설파했다.
유시민의 이 이야기는 우리가 과거와 현재를 또 지켜지고 있는 안의 것들과 새롭게 들어오는 외부의 것들을 어떤 방식으로 들여다봐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강화도는 어쩌면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데 최적지가 아닐 수 없었다. 역사적으로 봐도 꽤 많은 외부의 힘들이 들어와 내부에 영향을 미친 공간이 강화도이기 때문이다. 몽골 항쟁 때 39년 왕조가 들어와 지냈던 그 시기에 강화도는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그 때부터 벌인 간척사업은 섬의 3분의 1을 육지로 만들었고, 10만이나 되는 인구가 유입되었다고 했다. 현재 인구가 6만8천 정도인 걸 생각해보면 그 변화의 진폭을 실감할 수 있다. 왕조가 들어오면서 거기 살던 백성들의 피곤함을 유시민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농사는 농사대로 지어야 돼, 간척해야 돼, 산성 쌓아야 돼, 돈대 만들어야 돼. 죽어났을 것 같아요. 여기 양민들이.”
강화도는 왕가의 유배지로 주로 활용되기도 했고, 교동도 같은 경우에는 6.25 전쟁 이후 38선이 나뉘며 북측에서 들어왔다 가지 못한 이산가족들이 사는 곳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개화기에는 프랑스, 미국이 ‘이상하게 생긴 배’를 끌고 들어와 처참한 전쟁이 벌어졌던 곳이기도 했고 이어 일본도 들어와 그 유명한 ‘강화 불평등 조약’이 맺어졌던 곳이기도 했다.
외부의 힘들에 의해 독특한 삶의 방식들이 만들어진 곳. 결국 유시민이 말하듯 이 강화도가 현재의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건 그 이질적인 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러면서도 우리 것을 지켜나가는가 하는 점일 게다. 폐쇄정책으로 일관하며 무조건 배척하는 건 고립의 길로 갈 수 있는 것이고, 그 결과가 얼마나 참혹할 수 있는가 하는 걸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흥미로운 건 성공회 성당이나 온수리 성당이 보여주듯 외국의 문물이 우리의 전통과 접목되어 독특한 문화로 피어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바실리카 구조의 예배당을 만들기 위해 겉모습은 그대로 한옥으로 만들었지만 들어가는 입구를 측면으로 바꿔놓은 발상의 전환이 이뤄지면서 독특한 두 문화의 접목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김구 고택으로 알려진 대명헌에서 김영하가 발견한 마루가 헤링본의 형태로 되어 있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또 이런 새로움과 전통의 조화는 신구의 조화로도 피어날 수 있었다. 강화에서 발견한 폐 공장을 카페로 만든 이른바 ‘뉴트로 카페(뉴+레트로)’가 그 사례였다. 한 때는 방적공장이었지만 지금은 폐허가 된 그 곳을 다시 카페로 만들어 독특한 기억과 시간이 공존하는 곳으로 재탄생시켰다는 것.
결국 문화란 소통하고 영향을 주면서 또 다른 새로움으로 발전해나갈 수 있다는 걸 이번 <알쓸신잡3>가 간 강화도에서 우리는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현재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해 마주하고 있는 또 다른 개화기에 시사하는 바가 클 수밖에 없다. 국가와 민족과 언어와 인종의 모든 차원을 뛰어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는 지금, 우리는 어떻게 그 외부의 것들을 끌어안아 우리 것과 조화를 시킬 것이며, 또 과거의 것을 현재와 접목시키고,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엮어낼 것인가. 그저 닫아놓고 관성대로 지킬 것이 아니라, 열어두고 소통함으로써 생겨날 새로운 기회를 찾아내는 일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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