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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좋으면’, 누군가의 외로움을 알아준다는 것만으로

 

“옛날에 한 소년이 살고 있었어. 그 소년은 항상 사람들한테 상처를 받곤 했지. 소년이 순진하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늘 소년을 속이거나 배신하곤 했거든.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은 산에서 늑대 한 마리를 만나. 그 늑대가 눈썹 하나를 뽑아주며 말하길 이 은빛 눈썹을 눈에 대고 사람들을 바라보면 사람들의 진짜 모습이 보일거야. 간사한 원숭이, 교활한 여우, 못된 돼지, 음흉한 너구리. 소년이 본 세상 속엔 진짜 사람은 없었어. 그래서 소년은 진짜 사람들이 사는 곳을 찾아 떠나기로 해.”

 

JTBC 월화드라마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에서 임은섭(서강준)은 굿나잇 책방에서 열리는 독서모임에서 자신이 좋아한다는 ‘늑대 은빛 눈썹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영하 20도까지 떨어져 동파로 이모네 호두하우스 펜션의 수도가 폭탄 터지듯 빵빵 터져버린 어느 날. 사람들은 굿나잇 책방에 모여 앉아 전설과 설화 이야기를 두런두런 꺼내놓는다.

 

아주 오래 전 그 추운 겨울을 버텨내기 위해 동굴 속에 들어앉았던 우리네 태곳적 조상들도 그랬을 게다. 이야기는 아마도 그 힘겨운 시간들을 버텨내게 해주는 작은 희망이었을 지도. 그래서 굿나잇 책방에 모여 앉은 이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살풍경한 바깥세상과는 너무나 다른 안온하고 따뜻한 생기를 끄집어낸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에서 임은섭은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시골 마을에 이런 책방을 열어놓고 살아가지만 어딘지 숨겨진 어둠이 있을 것만 같은 그런 인물. 살풍경한 세상에서 도망치듯 이 마을까지 내려온 목해원(박민영)은 고등학교 시절 ‘살인자의 딸’이라는 게 절친으로 믿었던 김보영(임세미)에 의해 학교에 퍼지면서 지옥을 겪었다. 은섭의 ‘늑대 은빛 눈썹 이야기’에 등장하는 소년처럼 해원에게 친구들은 더 이상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해원이 서울로 올라가 만난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해원에게 은섭이나 이 북현리 마을 사람들은 다르다. 물론 그들 역시 자신들만의 외로움과 고독 속에 살아가지만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를 좋아하고 지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은섭의 동생 임휘(김환희)가 스스로 전교 왕따라고 말하면서도 그러니까 자신이 짝사랑하는 남자애가 자신을 좋아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하듯.

 

목해원처럼 북현리에 살아가는 사람들도 자신만의 겨울이 있고 밤이 있고 홀로 맞서기에 두려운 숲이 있다. 목해원의 이모 심명여(문정희)가 알 수 없는 두통에 시달리고 선글라스를 끼고 살아가면서도 그 속을 드러내놓지 않는 것처럼 그들은 아무렇지 않은 듯 보이나 실상은 다 외롭고 힘들다. 다만 그렇기 때문에 굿나잇 책방 같은 곳에 모여 앉아 두런두런 옛이야기를 하며 그 추운 나날들을 버텨낸다.

 

은섭은 이미 어려서부터 그 외롭고 두려운 숲을 마주하며 살아왔다. 그가 가끔 밤에 찾아가는 숲 속의 외딴 집은 상처 입은 순진한 영혼이 홀로 숨었던 곳이었다. 그는 외롭고 두려운 밤 숲길을 홀로 걸어 그 집을 찾아가곤 했다. 그의 아무렇지도 않게 보이는 삶이 사실은 얼마나 추운 겨울 홀로 선 삶이었는가를 그 숲 속 외딴 집은 알고 있었다.

 

“그런 곳이 있어?” 은섭의 ‘늑대 은빛 눈썹 이야기’에서 소년이 찾아간 ‘진짜 사람이 사는 곳’이 있었냐고 해원은 묻는다. 하지만 은섭은 그 어디에도 그런 곳은 없었다고 말한다. “그 어디에도 진짜 사람들은 살지 않아서 소년은 결국 혼자 그렇게 외롭게 살다가 죽었다는 이야기.” 아마도 그 이야기의 ‘은빛 눈썹’은 은섭 자신일 게다.

 

숲으로 갔다는 은섭을 찾아 나선 해원이 두려움과 외로움 속에서 도망치듯 숲을 빠져나오다 은섭을 마주한다. 그는 아무런 이야기도 나누지 않았지만 눈물을 흘리며 은섭을 꼭 껴안는다. 그러면서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가 흘러나온다. “너무 불쌍해.” “뭐가?” “늑대의 눈썹을 가진 그 소년 말이야. 외로웠을 거 아냐. 지독하고 지독하게. 그 소년은 얼마나 추웠을까?” “그런 소년에게 뭘 해줄 수 있을까?” “안아줘야지. 힘껏 안아줘야지. 온 힘을 다해 그가 따뜻해질 수 있도록 꼭 안아줘야지.”

 

은빛 눈썹 이야기는 우리들 마음 속 깊숙이 숨겨두었던 저마다의 은섭을 끄집어낸다. 그리고 얼마나 외로웠냐고 얼마나 추웠냐며 꼭 안아준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를 보고 있으면 느껴지는 따뜻함이 실체를 드러내는 순간이다. 외딴 집에서 저마다 외롭게 버텨내고 있을 우리들을 이 드라마가 온 힘을 다해 안아주고 있으니.(사진:JTBC)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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