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의생’, 이우정 작가 인간애에 신원호 PD 쿨함이 더해지니
처음부터 마마보이 산부인과 의사라는 지점이 심상찮았다.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꺼내놓은 양석형(김대명)의 이야기는 역시 캐릭터 맛집의 매력을 전하기에 충분했다. 뭐 하나를 사는 것조차 엄마에게 물어보고, 심지어 월급날에도 그 돈으로 뭘 할까를 엄마에게 물어보는 산부인과 의사 양석형. 그런데 그가 다름 아닌 엄마들의 출산을 책임지는 산부인과 의사라는 점은 그 ‘마마보이’라는 선입견을 달리 해석하게 만들었다.
무뇌아 출산을 하게 된 산모를 위해 아기가 태어나면 입을 막아달라는 부탁을 받은 추민하(안은진)는 양석형을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했지만, 사실 그건 한번 안아보지도 못하고 보내야 할 산모를 위한 그의 배려였다. 혹여나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게 되면 산모는 그게 평생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다는 것. 베테랑 산부인과 간호사인 한승주는 오해하고 있는 추민하에게 양석형이 자신에게도 아기가 태어날 때 음악소리를 더 크게 틀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말해주었다.
자발적 은둔형 외톨이처럼 사회성이 제로인 양석형이 마마보이가 된 사연은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리며 그의 이런 캐릭터를 더욱 개연성 있게 만들었다.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아버지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이혼은 불가라며 그건 자신이 감당할 거라 했던 엄마. 의지했던 여동생이 실족사로 사망했을 때도 아버지는 다른 여자와 있었다. 하지만 양석형은 강하다 믿었던 엄마가 비 오는 날 오열하는 걸 보게 된다. 엄마의 불행한 삶을 옆에서 지지해줄 사람은 자신뿐이라는 걸 알게 된 것. 그것이 양석형이 마마보이가 된 사연이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한 주에 한 번 방영되는 것이 너무하다는 반응이 나올 만큼 시청자들이 기다리는 드라마가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다름 아닌 매 회 드러나는 인물들의 매력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매회 5인방의 감동적인 이야기로 캐릭터들을 꺼내놓으며 동시에 다양한 매력적인 주변인물들도 소개한다. 첫 회가 안정원(유연석)의 이야기였다면 2회는 채송화(전미도)가 그 주인공이었고 3회는 이익준(조정석)과 김준완(정경호)의 에피소드가 소개되었으며 4회는 양석형의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이 5인방의 캐릭터는 율제병원의 정보통이자 5인방의 대학동기인 봉광현(최영준)의 깔끔한 설명으로 정리된다. 이른바 ‘5무(無)’로 정리된 5인방은 단점이 없는 채송화, 싸가지가 없는 김준완, 사회성이 없는 양석형, 꼬인 것도 선입견도 없는 이익준 그리고 물욕이 없는 안정원이다. 이렇게 이미 그 매력을 전해준 인물들은 이제 잠깐씩만 등장해도 시청자들을 반색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4회에서 채송화는 전반적으로 등장하는 분량이 적었지만 교회에서 찬송가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 하나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게다가 5인방 이외의 매력적인 인물들이 계속 쏟아져 나온다. 이름처럼 차가워 보이지만 어딘지 허술한 매력으로 안정원에 대한 좋은 감정을 드러내는 장겨울(신현빈), 매번 김준완에게 깨지지만 시종일관 수다를 떠는 인간적인 매력의 도재학(정문성), 산부인과의 똑순이로 조금씩 존재감을 드러내는 추민하(안은진), 본과 실습생으로 풋풋한 매력을 드러내는 쌍둥이 윤복(조이현)과 홍도(배현성), 천상 간호사로서 타인의 부탁을 외면하지 못하는 송수빈(윤혜리), “아빠만 있으면 돼”라는 의리 있는 멘트로 익준을 먹먹하게 만든 꼬마 이우주(김준), 갑자기 등장해 김준완과 묘한 멜로의 기류를 보이는 여군 소령 이익순(곽선영)... 일일이 다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력덩어리 인물들이 스펀지에 물이 젖든 시청자들의 마음속에 스며든다.
그래서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캐릭터 맛집’이라고 하는 건 그저 표현의 차원이 아니다. 그것은 <응답하라> 시리즈와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거쳐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가 구축해낸 그들만의 드라마 색깔이다. 보면 볼수록 드라마가 만들어내는 인위적인 사건들이 아니라, 그 주체가 되는 인물들에 빠져들게 만드는 드라마. 그러면서도 그것이 지나친 감정 과잉이 아닌 쿨하게 보여주는 세련됨을 가진 드라마가 바로 <슬기로운 의사생활>이다.
이것은 아마도 예능에서 잔뼈가 굵어오며 무엇보다 인물을 바라보는 남다른 따뜻한 시선을 추구해온 이우정 작가의 인간애와, 이를 세련된 시선을 감정이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담아내려 애쓰는 신원호 PD의 쿨함이 더해져서 만들어지는 결과물이 아닐까 싶다. 매회 인물들은 갈수록 늘어나지만 그것이 복잡하기보다는 그 매력에 빠져들게 되는 건 인물 하나하나에 부여된 제작진의 따뜻한 시선과 정성이 있어서다.(사진:tvN)
'옛글들 > 드라마 곱씹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무도 모른다' 착한 안지호가 우리 마음을 심하게 뒤흔든다 (0) | 2020.04.08 |
---|---|
‘하이에나’ 김혜수의 편법과 이경영의 탈법, 누가 3류인가 (0) | 2020.04.06 |
'아무도 모른다', 새삼 확인한 명품배우 김서형의 진가 (0) | 2020.04.02 |
'반의 반' 정해인·채수빈이 그리는 반쪽짜리 사랑의 아련함 (0) | 2020.04.02 |
'날씨가' 은빛눈썹 서강준에게도 따뜻한 봄이 찾아온다는 건 (0) | 2020.04.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