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부부의 세계' 아슬아슬한 19금 드라마와 젠더 감수성 사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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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세계' 아슬아슬한 19금 드라마와 젠더 감수성 사이

D.H.Jung 2020. 4. 27.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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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세계’가 연 19금 드라마의 세계, 하지만 필요한 젠더 감수성

 

JTBC 금토드라마 <부부의 세계>는 우리네 드라마에 있어 각별한 의미를 가진 작품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19금 드라마라는 새로운 세계를 열었기 때문이다. 사실 국내에서 19금 콘텐츠는 마치 금기처럼 여겨진 면이 있다. 지상파 시절 콘텐츠들은 암묵적으로 ‘보편적 시청자들’을 겨냥해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19금 콘텐츠를 세우면 진입장벽이 생겨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런 사정은 지금도 여전하다. KBS에서 19금으로 시도됐던 <스탠드 업!> 같은 예능 프로그램은 호평에도 불구하고 1%(닐슨 코리아)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물론 이런 저조한 시청률이 19금 때문이라고만 말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지상파 그것도 KBS 같은 공영방송에서의 19금은 진입장벽이 더 높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부부의 세계>가 19금으로 18% 시청률을 6회 만에 훌쩍 넘겨버린 건 드라마업계에서는 사건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7,8회가 15세 등급으로 낮춰지며 시청률이 20%를 돌파했지만 최근 JTBC측은 9회부터 끝까지 <부부의 세계>의 시청등급을 19세로 할 거라고 공식화했다.

 

이렇게 된 건 <부부의 세계>가 최근 인기만큼 불거진 논란이 한몫을 차지했다. 지선우(김희애)의 집에 전 남편인 이태오(박해준)의 사주를 받은 박인규(이학주)가 쇠파이프를 들고 유리창을 깬 후 난입하는 장면을 그 가해자의 시점으로 연출해낸 장면이 문제가 됐고, 손제혁(김영민)에게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한 20대 여성이 접근해 가방을 사주면 애인이 되겠다고 제안하고 실제로 그 여성과 호텔이 있는 장면이 논란이 됐다.

 

두 장면 모두 충분히 논란의 소지가 있을 수밖에 없는 장면들이다. 가해자의 시점을 담은 연출은 스릴러 등에서 가학적인 자극을 담기 위해 사용되는 연출이기도 하지만, 굳이 이 작품에서까지 그렇게 연출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오히려 지선우의 역공을 그려내기 위한 사전 전제로 담은 폭력 장면이었다면 오히려 피해자의 시선에서 담는 게 더 효과적일 수도 있었다.

 

또 손제혁이 또다시 벌이는 외도는 이 쇼윈도 부부의 실체를 드러내고, 비뚤어진 성의식을 가진 남성을 그려내려는 의도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 과정을 굳이 가방 운운하며 돈을 주면 성을 살 수 있다는 식으로 그려낼 필요는 없었을 게다.

 

그런데 왜 <부부의 세계>는 이런 논란이 될 만한 장면들을 사전에 거르지 못했던 걸까. 많은 이들이 비판하듯 그것은 젠더 감수성의 부족에서 나온 것일 수 있지만, 또한 해외의 19금 드라마들과 우리네 드라마 사이에 놓여진 괴리감이 작용한 부분도 있다. 19금 드라마가 이제 이런 보편적인 시청률을 내고 있다는 사실은 최근 넷플릭스 같은 OTT를 통해 우리네 성인 시청자들도 해외의 19금 드라마가 익숙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해외의 19금 드라마들은 훨씬 더 자극적인 설정들이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작에 있어 어떤 표현의 제한을 요구하기보다는 그 작품에 그런 불편한 요소들이 있다는 걸 사전고지하고 그래서 19금 콘텐츠라는 걸 분명히 하는 방식을 취한다. 우리에게도 어쩌면 이제 보다 분명한 19금 드라마라는 고지와 그 드라마에는 구체적으로 작품의 내용상 젠더 감수성에 비춰 불편한 장면들도 들어가 있으니 주의를 요한다는 식의 사전 고지가 필요해진 게 아닐까 싶다.

 

이제 19금 콘텐츠는 더 이상 피할 게 아니라 콘텐츠의 상상력이나 창작적인 영역 확장의 의미로서 보다 적극적으로 다뤄져야 하는 영역이 되고 있다. 중요한 건 안전장치들이다. 19금 드라마가 담는 파격과 부딪칠 수 있는 젠더 감수성을 충분히 사전고지하고, 그 문제들을 그저 수용하는 게 아니라 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있게 해주는 작업들은 이제 우리네 드라마에서도 중요한 선결작업으로 대두되고 있다.(사진:JT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