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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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의 신 함춘호와 음악 천재 헨리 통해 본 '악인전'의 진가

D.H.Jung 2020. 5. 31.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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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전', 연예인 관찰카메라를 특별하게 해주는 음악

 

이것이 바로 KBS 예능 <악인전>의 진가가 아닐까 싶다. 뮤지션들이 꼽는 국내 최고의 기타리스트 함춘호와 음악 천재 헨리의 만남이 그것이다. 사실 이 조합은 그 특이한 만남만으로도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나이 차도 많이 나고, 외국인인 헨리와 문화적 차이도 느낄 수 있는 함춘호다. 게다가 기타 치는 함춘호와 바이올린을 켜는 헨리의 조합이라니.

 

그 많은 음악 프로그램들이 주로 보여준 것들은 '노래들'이다. 하지만 이번 <악인전>에서 함춘호와 헨리가 슬쩍 보여준 건 '연주'라는 점에서 더 주목하게 만든다. 과연 함춘호의 기타 선율은 어떻게 헨리의 바이올린과 어우러질까. 클래식한 함춘호의 스타일은 어떻게 일렉트릭하고 모던한 헨리의 스타일과 만나 음악적 교감을 이뤄낼까.

 

그들이 처음 만나는 공간이 낙원상가라는 점도 특별했다. 음악인들의 성지와 같은 곳이 아닌가. 함춘호가 누군지를 몰라 악기점 사장님들에게 탐문(?)을 하고 다니는 헨리의 엉뚱한 모습은 음악도 음악이지만 관찰카메라에도 그가 얼마나 잘 어울리는가를 보여준다. MBC <나 혼자 산다>를 통해 익숙해진 관찰카메라가 아닌가.

 

헨리 특유의 찧고 까부는 스타일은 함춘호를 만나면서 묘한 긴장감을 만든다. 함춘호의 표현대로 언제 어디로 도망갈지 알 수 없는 자유로운 강아지 같은 헨리는 대뜸 함춘호 앞에서 자기도 기타를 잘 친다며 도발하고, 연주를 듣고는 무언가 다르다는 것에 빠져든다. 그러더니 갑자기 바이올린을 빌려와 함춘호와 잼을 제안한다.

 

마치 대결하듯이 이뤄진 잼이지만 오래도록 함께 연주를 해왔던 사람들처럼 주고받으며 음악으로 밀당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악인전>이라는 이 프로그램이 드디어 제대로 된 방향을 잡아낸 것 같은 풍경을 그려냈다. 스팅의 'Shape of my heart' 기타 연주에 즉흥적으로 선율을 얹는 헨리의 바이올린은 시청자들에게 이 악기 연주가 가진 음악의 묘미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함춘호와 헨리의 이야기는 다시 헨리의 작업실로 이어졌다. 피아노는 물론이고 바이올린 등등 다양한 악기들로 채워져 있는 작업실에서 함춘호의 인정을 받기 위해 이런 저런 악기 연주를 들려주는 헨리의 모습이 담겨졌고, 처음에는 냉랭하다가 차츰 그 연주에 빠져드는 함춘호의 모습은 이 두 사람의 교감이 조금씩 이뤄져 가고 있다는 걸 보여줬다.

 

사실 <악인전>은 지금껏 관찰카메라가 포착해온 연예인들 중 그다지 그 카메라 앞에는 잘 등장하지 않던 레전드 음악인들을 세운 것만으로도 기대를 만들어낸 바 있다. 송창식 같은 기인의 등장이 그렇다. 즉 <악인전>이 제대로 잡아낸 포인트는 관찰카메라에 음악을 덧붙였다는 사실이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번 함춘호와 헨리의 등장은 <악인전>이 나아갈 방향이 무엇인가를 드러낸 면이 있다. 그저 연예인들의 일상을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만들고 즐기는 이들의 특별한 일상이어야 한다는 것. 꼭 노래가 아니더라도 연주 같은 상대적으로 많이 보여지지 않은 음악의 다양한 영역들을 관찰한다면 더 흥미로워질 수 있다는 것. 거기에 <악인전>의 진가가 있지 않을까.(사진: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