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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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무도'처럼 박수칠 때 떠나지 못할까

D.H.Jung 2020. 5. 31.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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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투'부터 '개콘'까지, 장수 예능들이 겪는 딜레마

 

SBS 예능 <정글의 법칙>이 휴지기를 갖는다는 발표가 나오자, 항간에는 '종영'이라는 말까지 흘러나왔다. 물론 <정글의 법칙>의 휴지기는 말 그대로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인해 해외 촬영이 사실상 어렵게 됐기 때문에 잠시 휴지기를 갖게 된 것.

 

하지만 종영이라는 말까지 나오게 된 건, 최근 일련의 장수 프로그램들이 '휴지기'를 선언했지만 사실상 폐지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비롯된 것이다. KBS 예능 프로그램들이 그 대상에 올랐다. <해피투게더>가 먼저 지난 4월 시즌 종영했고, <개그콘서트> 역시 휴지기를 선언했다. <해피투게더>도 <개그콘서트> 폐지가 아닌 재정비를 위한 휴지기를 선언함으로써 여지를 남긴 건 꽤 오래도록 장수해온 이 프로그램들을 폐지한다는 건 그만큼 부담이 크기 때문이었다.

 

장수프로그램들은 물론 장수의 비결이 있다. 그만큼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프로그램들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해피투게더>는 2001년에 시작해 최근 시즌4까지 이어지며 장수했고, 최고로 잘 나갈 때는 2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또 <개그콘서트>도 1999년 시작해 20년을 훌쩍 넘긴 장수프로그램으로 35%를 넘기는 최고시청률을 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장수했다는 건 지나간 트렌드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물론 <해피투게더>나 <개그콘서트> 모두 달라진 트렌드에 맞추기 위해 끝없는 변화를 시도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결국 이 두 프로그램이 모두 휴지기를 선언한 건, 프로그램의 정체성에 해당하는 형식 틀 자체가 지금의 트렌드와는 맞지 않는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최근까지도 여전히 괜찮은 시청률과 적당한 화제성을 가져가는 장수 프로그램들이 존재하는 건 사실이다. <1박2일>이나 <정글의 법칙>, <런닝맨>, <불후의 명곡>, <복면가왕> 같은 프로그램들이 그렇다. 이들 장수 프로그램들은 색다른 스토리텔링이나 재미요소를 가져오기보다는 본래 프로그램이 갖고 있던 자산들을 반복 재생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1박2일>은 여행과 복불복 게임의 반복이고, <정글의 법칙>은 정글 서바이벌의 연속이며, <런닝맨>은 게임과 캐릭터 예능을 게스트만 바꿔가며 해오고 있다. 물론 음악 예능은 조금 성격이 다르지만 <불후의 명곡>이나 <복면가왕> 역시 색다른 걸 기대하기보다는 그저 있어서 틀어놓는 프로그램이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채널이 다양화되고 예능의 트렌드도 급속히 변화해가고 있어 장수 프로그램들에 어떤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물론 여전히 괜찮은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는 <1박2일>이나 <불후의 명곡>, <복면가왕> 같은 프로그램은 그 형태 그대로 좀 더 나가기를 원하지만, <해피투게더>나 <개그콘서트>를 통해 우리가 알게 된 건 쌓아올린 탑이 한 순간에 무너져 초라해지는 건 시간문제라는 사실이다.

 

방송사의 입장이 이해 안 되는 건 아니다. 장수 프로그램이 식상하다고 폐지하고 새 프로그램을 얹는 건 이중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그만한 기회비용을 치러야 하는데다, 새로 만든 프로그램이 잘 될 거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점점 기울어가는 장수 프로그램을 마지막까지 소진시키는 건 방송사를 위해서도 해당 프로그램과 그 프로그램에 한 때 열광했던 시청자들을 위해서도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닌 것 같다. MBC <무한도전>이 박수칠 때 과감히 시즌 종영을 선언하고 휴지기를 거쳐 <놀면 뭐하니?>로 색다른 시도를 한 건 모험적이었지만 좋은 예가 아닐까 싶다.

 

휴지기라는 선택은 그래서 꽤 합리적인 것처럼 보인다. 힘이 빠져 있는 상태에서 무작정 애써 달리기보다는 잠시 멈춰서 지금의 트렌드도 들여다보고 거기에 맞는 버전업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건 더 오래 갈 수 있는 길이 되기도 할 테니 말이다. 물론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는 판단이 나온다면 이를 대체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휴지기를 통해 고민해볼 수도 있을 게다. 오래된 프로그램은 그만한 힘이 있다는 뜻이지만, 그만큼 트렌드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뜻도 된다. 장수 프로그램들이 겪는 이러한 딜레마를 슬기롭게 넘는 방법을 고민할 시점이다.(사진: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