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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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미경부터 한예리까지, '가족입니다' 우리 시대의 찐 가족들

D.H.Jung 2020. 6. 10.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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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입니다', 가족 해체 시대에 공감 가는 현실 가족

 

너무 가까워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tvN 새 월화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이하 가족입니다)>는 가족이 바로 그렇다고 말한다. 평생 살림만 하며 살았던 엄마가 어느 날 갑자기 "나 그만 하고 싶다"며 남편에게 졸혼을 요구한다. 한 평생 성실하게 가족을 위해 일해 왔던 남편을 잘 알고 있는 엄마지만 너무 싫단다.

 

"집안에 앉아있으면 너무 싫어. 숨을 못 쉬겠어. 걸어 다니는 것도 싫고 몸에 좋은 약 꾸역꾸역 혼자 챙겨먹는 것도 싫고 저질스러운 말 하면서 통화하는 것도 싫고 훌렁훌렁 벗고 부항 뜨는 것도 싫고 부항 자국 보는 것도 싫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엄마의 이런 모습은 낯설다. 이토록 싫은데 어떻게 버티고 그 세월을 살았을까.

 

<가족입니다>는 너무 잘 알 것 같지만 사실은 잘 몰랐던 가족의 진짜 모습을 발견하고는 그 오해로 빚어졌던 관계의 문제들을 풀어가는 드라마다. 엄마 이진숙(원미경)과 아빠 김상식(정진영)이 황혼기에 맞이해 그간 누르고 눌러왔던 '싫은 감정'을 드디어 꺼내놓는 것으로 시작하는 건, 우리가 알고 있다 치부했던 가족이 실상은 잘 모르는 것 투성이라는 걸 드러내는 대목이다.

 

이 가족이야기에서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은 작은 딸 김은희(한예리)다. 출판사 팀장인 그는 저자인 명상원에서 명상 체험을 하면서 자신이 몰라서 저질렀던 후회스런 순간들과 마주한다. 일찍이 엄마는 아빠와의 이혼을 준비 중이었고, 9년 간이나 사귀었던 남자친구 종민(최웅)이 바람피운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와 함께 지냈던 오랜 친구 찬혁(김지석)에게 하지 말아야 할 절교 선언을 했다. 위로받기 위해 찾아간 언니조차 냉정하게 대하자 김은희는 다신 안 본다고 했지만 알고 보니 그 때 언니는 유산을 겪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명상을 하며 다시금 떠올린 그 날의 일들을 되새기며 후회의 눈물을 흘리는 김은희의 모습은 이 드라마가 앞으로 하려는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의사 남편과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유산 이후 사실은 남처럼 데면데면 살아가고 있는 큰 딸 김은주(추자현) 역시 그렇다. 그는 가족에게조차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지만 의외로 카페에서 알바하는 청년과는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여준다. 가족이지만 타인 같고, 타인이지만 가족 같은 이 관계의 아이러니라니.

 

아내의 졸혼 요구로 크게 흔들리던 김상식이 야간산행을 갔다가 사고를 당하는 장면은 그것이 이 타인 같은 가족에게 어떤 계기를 만들어줄 것이라는 걸 암시한다. 졸혼을 선언한 부모, 유산을 겪은 이후로 타인처럼 살아가는 맏딸 부부, 바람피워 헤어진 옛 남친을 다시 만나 헷갈리기 시작하는 작은 딸... 마치 김은희가 명상을 통해 들여다봤던 것처럼, 그저 평범하게 보였던 이들 가족과 친구, 동료들에게서 어느 순간 그 진면목을 보게 되고 자신이 오해했던 걸 후회하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가족입니다>는 우리 앞에 펼쳐 보여주려 한다.

 

사실 1인 가구가 점점 늘고 있는 시대에 가족드라마는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 장르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것은 어떤 면에서 편견이자 선입견일 수 있다. 혼자 살아가는 가구가 많아도 결국 가족은 어떤 형태로든 존재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중요한 건 지금의 달라진 현실을 그대로 담아내 공감할 수 있는 가족드라마의 새로운 양식을 제시하고 있는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가족입니다>는 진짜 우리 시대의 가족드라마를 기대하게 하는 면이 있다. 같이 살아도 잘 알지 못하는 가족과 타인이지만 더 가족처럼 소통하는 이들이 우리가 겪는 현실 가족 그대로의 모습을 담고 있어서다. 물론 그 겉면을 넘어서 실체에 다가갈 때 우리는 깨닫게 될 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아는 건 별로 없어도 그래도 가족은 가족이었다는 것을.(사진: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