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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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슬의생'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D.H.Jung 2020. 5. 31.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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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시작하는 '슬의생', 신원호·이우정의 슬기로운 선택은 옳았다

마지막 회 같지 않은 마지막 회였다.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12부로 시즌1을 마쳤다. 하지만 끝이 아니라는 게 명백한 시즌1의 마지막 회였다. 12부와 11부의 차이가 거의 느껴지지 못할 만큼 지금껏 드라마가 그려온 율제병원의 평범해 보이지만 나날이 특별한 일상들이 담담하게 담겨졌다.

 

마지막 회에서도 드라마 전편에 등장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 환자들의 이야기들이 채워졌다. 안정원(유연석)은 킥보드를 타다 다쳐 간 손상을 입은 아이 때문에 며칠 간을 잠도 자지 않고 옆에서 지켜보며 돌봤고, 김준완(정경호)과 도재학(정문성)은 수술은 했지만 출혈이 멎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환자를 살려냈다.

 

아들을 위해 남편에게 간 이식을 해주지 않기로 선택한 후 자책하던 아내는, 마침 간 기증자가 있어 이익준(조정석)이 이식수술을 해주자 고마움과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 특히 감동적이었던 건 양석형(김대명)에게 진료를 보기 위해 오래도록 기다리는 산모들이 불만을 터트리다, 한 산모가 아이를 사산하고 통곡하는 소리를 들으며 숙연해지던 장면이었다. 아이를 잃은 엄마가 느낄 고통을 공감하는 산모들은 묵묵히 기다려 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청자들이 궁금해 할 사랑이야기도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그토록 짝사랑만 해오던 장겨울(신현빈)이 용기를 내 고백하자 안정원(유연석)은 그 역시 오래도록 가슴에만 감춰두고 있던 마음을 꺼내놓았다. 두 사람은 키스했고, 그건 안정원이 신부가 되는 걸 포기하고 의사로서 병원에 남을 것이고 장겨울과 관계를 이어갈 것이라는 걸 의미했다. 그건 사랑이 맺어지는 순간의 이야기지만, 또한 안정원이라는 인물이 의사로서의 소명을 선택하는 순간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흥미로운 건 다른 인물들의 러브라인이 어떤 결실을 보여주기보다는 다음 시즌을 위한 씨앗을 심어 놓으며 시즌1을 마쳤다는 사실이다. 이익준은 지방 병원으로 자청해 내려간 채송화(전미도)의 아파트까지 찾아와 그렇게 눌러 놓았던 사랑을 고백했고, 김준완은 외국으로 유학을 떠난 이익순(곽선영)에게 보낸 반지가 반송되어 돌아와 어떤 일인가가 벌어지고 있다는 걸 감지했다. 또 추민하(안은진)의 짝사랑을 애써 거부하는 양석형이 향후에도 계속 그 관계를 이어갈지 아니면 사랑을 받아줄지도 궁금한 대목으로 남겨뒀다.

 

이처럼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애초에 기획했던 대로 시즌제 드라마로서 어떤 결론을 보여주기보다는 지금까지 해왔던 호흡 그대로 병원에서의 일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즌1의 마지막을 그렸다. 그래서 끝났지만 끝난 것 같지 않았고, 내년에 다시 돌아온다는 자막이 벌써부터 시즌2를 기다려지게 만들었다.

 

이로써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본격적인 시즌제 드라마의 탄생을 알렸다. 우리네 드라마에서도 시즌제가 조금씩 익숙해진 건 사실이지만, 이처럼 아예 기획 단계부터 시즌제를 겨냥해 만들고 또 성공시킨 작품은 이 작품이 거의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이것이 가능해진 건 드라마가 매회 소소해도 따뜻한 이야기들을 채워 넣으면서, 무엇보다 매력적인 인물들을 제대로 세워놓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거의 대부분의 출연자들이 저 마다의 매력을 드러내는 드라마라면 향후 시즌제를 끊임없이 이어간다고 해도 충분히 흥미로울 것으로 보인다. 시즌1의 이야기는 그래서 이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가 그리는 큰 그림의 밑그림 정도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밑그림만으로 시청자들이 매회 따뜻하고 설레는 감정을 느꼈다는 건 향후 이 시즌제가 계속 이어나갈 이야기들을 기대하게 만든다.

 

또 신원호 PD가 모험적으로 시도했던 1주일에 1회 방영이라는 새로운 선택 역시 성공적이었다. 목요일마다 한 편씩 돌아온 드라마는 힘을 잃지 않고 매회 시청률을 반등시켰고 마지막 회는 14.1%(닐슨 코리아)의 최고시청률을 기록하며 기분 좋게 시즌1을 마무리시켰다. 하지만 가장 큰 성취는 아마도 앞으로도 계속 이어갈 수 있는 시즌제 드라마라는 안정적인 작품을 세워놓았다는 점일 게다. 매년 돌아와 시청자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해줄 착한 시즌제 의드의 탄생이다.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의 슬기로운 선택은 옳았다.(사진: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