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입니다', 가족에 대한 비밀과 왜곡된 기억이 실체를 드러낼 때
과연 우리는 가족이라고 부르는 존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 걸까. tvN 월화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이하 가족입니다)>는 김상식(정진영)과 이진숙(원미경)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그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사고로 22살의 사랑꾼의 기억으로 돌아간 김상식은 평소와 달리 아내에게 "진숙씨"라 부르며 살갑고 애틋한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진숙은 그런 상식이 낯설고 불편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상식과 결혼해 살아왔던 나날들이 사실상 포기한 삶처럼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꾹꾹 눌러둔 그 감정은 결국 폭발했다. "딴 집 살림하고, 딴 애 키우느라 우리 애들은 내팽개친 거는 기억해?" 상식은 그 말이 충격적이다. 자신이 그런 짓을 저지른 파렴치한이라는 걸 믿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22살의 상식으로 돌아가 그 때 진숙이 도시락에 넣어주려 써놓았던 메모를 한 자도 틀리지 않고 외우던 그가 아닌가. 그렇게 진숙에게 애틋했던 상식이 딴집 살림이라니.
기억은 많은 것들을 왜곡한다. 상식은 정말 자신이 기억하고픈 것들만 기억하는 것일까. 진숙의 말은 사실일까. 진숙 또한 기억의 왜곡을 겪고 있는 건 아닐까. 자신은 도시락에 그런 메모를 쓴 적이 없다고 했지만, 오래도록 써왔던 일기장에서 상식은 그 메모를 찾아낸다. 그리고 진숙 또한 그런 일들이 있었다는 걸 기억해낸다.
그저 가부장적인 아빠로만 알았던 상식이 자신의 꿈이 대학가요제에 나가는 거였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자식들은 순간 숙연해진다. 자신을 몸서리칠 정도로 싫어하는 진숙을 위해 졸혼을 서두르는 상식이 자식들을 따로 모아 졸혼 이야기를 꺼냈을 때 문득 꿈이 뭐였냐고 물어본 은희(한예리)에게 상식은 그렇게 말한다. 대학을 갈 처지가 못돼 꿈을 접었다는 상식은 오래도록 트럭을 몰며 은희가 녹음해 준 대학가요제 노래들을 들어왔을 터였다. 잘 알고 있다 여겼던 아빠 상식은 그래서 또 낯설게 다가온다.
은주(추자현)는 진숙에게 엄마가 유독 아빠와 자신을 차갑게 대했다며 문득 젊은 날 가족을 위해 묵묵히 일만 하며 보냈던 자신에 대해 "내 딸 수고한다. 내 딸 고맙다." 그 한 마디를 안 해준 이유에 대해 묻는다. 그러자 진숙이 말한다. "말이 너무 쉬워서 못했어. 네 또래 애들이 화장하고 예쁘게 입고 살랑거리고 다니는 걸 보면 마음이 무너졌어. 넌 그때 말도 없고 웃지 않고 새벽에 출근할 때도 늦게까지 야근할 때도 택시 한 번을 안타고, 싸구려 옷만 입고 신발도 밑창 다 닳고.. 고맙다는 말을 어떻게 하니? 뻔뻔스럽게. 미안하다는 말을 어떻게 해? 아무 것도 못해줬는데. 말이 무슨 소용이 있어? 말 뿐인데."
때론 가족은 그 마음을 말로 전하지 못한다. 아니 어떨 때는 타인보다도 더 속에 있는 말을 꺼내놓지 못한다. 그래서 그건 때론 오해를 낳고 누군가에게는 깊은 상처로 남는다. 그렇게 세월이 눈처럼 그 위로 소복하게 쌓이다보면 기억은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대로 튀어나온 것들만 기억하려 한다. 애써 사랑꾼으로 포장하기도 하지만, 냉정했던 마음에 대한 상처만을 떠올리기도 한다.
<가족입니다>는 가족이라는 테두리로 묶여져 있어 아주 가깝고 그래서 속속들이 알 것 같은 이들이 사실은 저마다 드러나지 않은 민낯들이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그건 숨겨진 비밀일 수도 있고, 오해일 수도 있으며 때론 기억의 장난일 수도 있다. 가까이 있어 오히려 더 잘 모르는 가족이라는 존재를 이 드라마는 우리 앞에 펼쳐놓고 있다. 가족이지만 실상 아는 건 별로 없다고. 그렇게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그래도 가족이라고 말하며.(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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