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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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방향 드라마 시대, 사전제작은?

D.H.Jung 2008. 6. 13.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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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트라이트’, ‘일지매’가 본 촛불집회

‘610 민주화 운동’의 21주년이 되었던 6월10일 광화문을 가득 메운 촛불들. 그리고 단 이틀이 지난 12일 드라마 ‘스포트라이트’에서는 그 집회의 장면들이 삽입되었다. 취재를 위해 현장에 투입된 서우진(손예진)과 이순철(진구)은 그 압도적인 장면에 아연실색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같은 날 방영된 ‘일지매’. 용이(이준기)가 억울하게 붙잡힌 동무, 대식(문지윤)을 구명하기 위해 궁 앞에서 벌이는 에피소드 역시 촛불집회를 패러디했다. 막아서고 있는 담을 넘어 들어가 지붕 위에서 억울함을 외치는 장면이나, 왕 앞에 나간 용이가 “바깥에 억울한 백성들이 매일같이 밤을 지새우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여달라”고 당부하는 장면, 그리고 왕이 “백성들의 억울함을 위해 전면 재수사를 해주기로 했다”고 말하는 장면은 현 촛불집회의 풍경을 고스란히 떠올리게 만든다.

물론 ‘스포트라이트’같은 경우 드라마 편집에 있어서 후반부에 잠깐 끼워 넣는 것이 무에 어려울 것인가 생각할 수도 있다. 또 이 장면들은 촛불집회라는 현 시국의 상황이 그만큼 모든 이들의 관심사라는 것을 드라마가 거꾸로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지 드라마가 아주 가까이 있는 현안을 순발력 있게 내용 속에 집어넣었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이제 드라마는 급변하는 현실에 순발력 있게 대처(?)하지 않으면 자칫 공감의 틀을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상황은 곧바로 사전제작 드라마에 대한 논란으로 이어진다. 사전제작 드라마로서  ‘사랑해’, ‘비천무’, ‘도쿄 여우비’ 같은 작품들이 잇따라 시청률에서 고배를 마셨던 것은 그 제작시점과 방영시점 사이의 간극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비천무’는 이미 4년 전에 제작된 것이고, ‘도쿄 여우비’ 역시 1년 전에 제작된 것이기 때문에 지금의 트렌드와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편 ‘사랑해’는 비교적 가까운 시기에 제작되었지만, 역시 시청자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그 점에서 패인을 발견할 수 있다. 즉 100% 사전제작 드라마는 거의 실시간으로 시청자들의 의견이 올라오고 반영되는 현 시점에서는 이상에 가깝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제 멋대로 내용이 들쑥날쑥해지고 고무줄처럼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하는 ‘실시간 드라마’가 대안이 되는 것도 아니다. 특히 50부가 넘는 장편 드라마들의 경우 시의성과 순발력에 의존하다보면 그 완성도보다는 시청률에 경도되기가 쉽다. 또한 쪽 대본에 대한 부정적인 문제는 이미 ‘왕과 나’에서 사건으로 불거져 나오기도 했고, ‘스포트라이트’의 중간 작가 교체라는 결과를 불러오기도 했다.

그러니 이제 사전제작도 실시간 제작도 대안이 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 모범답안 같은 걸 이미 제시했던 드라마가 있다. 그것은 ‘연애시대’다. 애초에 100% 사전 제작 드라마를 표방했으나 현실적인 문제가 걸려 60% 정도를 완성한 상태에서 출발한 ‘연애시대’는 그 공감의 시차를 극복하면서도 끝까지 초기에 잡아놓은 틀을 뚝심있게 밀고 나가는 저력을 보였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지만 일단 현재 반 사전제작 드라마가 유일한 대안이 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반 사전제작 드라마에는 반드시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그것은 드라마가 초기에 취했던 기획의도를 기본 뼈대로 끝까지 고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의견은 수렴되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본래의 기획의도를 버리는 것은 다시 실시간 드라마의 구렁텅이로 빠지는 지름길이다. 중요한 것은 기획의도와 다르게 수렴된 의견에 대해서 드라마가 어떻게 시청자들을 설득해나가느냐는 문제다. 이미 환경은 실시간, 쌍방향으로 가고 있고, 어쨌든 한 시기를 흘러가야 하는 드라마로서는 이 변화된 환경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독단이 아닌 설득이며, 무조건적인 반영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