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푸 팬더’, 그 젓가락 쿵푸의 재미
술에 비틀비틀 취해 움직이면서 상대를 공격하는 ‘취권’은, 부모나 사부의 원수를 갚는 전통적인 쿵푸영화의 비장함을 거꾸로 꼬집으면서 성룡의 코미디 쿵푸 시대를 열었다. 이어서 나온 ‘사형도수’와 ‘소권괴초’는 1979년을 성룡의 해로 만들었다. 성룡의 쿵푸는 액션의 하드코어에 가까운 이소룡 쿵푸, 사무라이식 퓨전의 냄새가 났던 외팔이 시리즈 왕우의 쿵푸와는 달랐다. 이소룡처럼 타고난 강자도 아니고, 왕우처럼 비장하지도 않은 대신 성룡은 웃겼다. 배꼽 잡게 웃다보면 어느새 성룡은 모든 적들을 다 물리치고 있었다. 그 유쾌함 속에서는 전통적인 쿵푸 영화가 가진 개연성 같은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쿵푸 팬더’에 바로 그 성룡이 원숭이 역할로 목소리 출연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쿵푸 애니메이션은 바로 성룡의 코미디 쿵푸 영화와 맥을 같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복수의 코드를 가진 액션임에도 불구하고 폭력적이지 않다는 점이 그렇고, 처절한 분노보다는 유쾌함이 적을 이기는 무기가 된다는 점이 그렇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으면서도, 어른들에게도 충분한 즐거움을 선사하는 가족 영화의 틀 속으로 쿵푸 액션을 가져온 점도 그렇다. 이것은 유혈이 낭자하던 외팔이 시리즈의 무협B급 액션들이나, 비장한 쿵푸 영웅으로서 액션의 하드코어를 보여주던 이소룡 영화와는 다른 것이다.
성룡의 코미디 쿵푸처럼 ‘쿵푸 팬더’가 이런 가족영화의 틀 속에 쿵푸 영화의 액션을 잡아넣을 수 있는 가장 큰 요인은 그 폭력을 비웃는 생활인의 시선이 코미디로 녹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젓가락 쿵푸’로 대변되는 ‘생활의 무술’이다. 음식을 먹기 위해 젓가락으로 서로 쟁탈전을 벌이는 이 ‘젓가락 쿵푸’는 이미 성룡의 전담 사부였던 소화자 시절부터 하나의 전형화된 쿵푸영화의 시퀀스로 자리잡아왔다. 이 ‘먹고살기 위한’ 무술이라는 개념은 그간 쿵푸영화가 가진 폭력성을 거꾸로 비웃는다.
‘취권’이나 ‘쿵푸 팬더’에는 엄청난 괴물 같은 적이 등장하는데, 그들과 맞서기 위해 피나는 무술 수련을 하는 아군도 있다. 하지만 결국 그 괴물을 물리치는 건, 생활에서 유리된 도장이나 산 속에 파묻혀 무술 수련을 해온 자가 아니라,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무술 수련이 된 자가 된다. 따라서 이들에게 특정한 비급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당연하다. 생활이나 본능 그 자체가 비급이기 때문이다. 술에 취하거나(취권), 희노애락(소권괴초)을 느끼는 것이 무술로서 승화되는 성룡의 액션처럼, ‘쿵푸 팬더’는 뚱뚱이 팬더곰 포의 식욕과 똥배가 쿵푸 액션의 전면으로 등장한다.
따라서 성룡의 코미디 쿵푸나 ‘쿵푸 팬더’는 바로 그 비장한 무술 수련을 비웃는 쿵푸로 승부함으로써, 생활을 최고의 지위로 끌어올리면서 현대인들의 공감을 얻게 된다. ‘쿵푸 팬더’를 보면서 단지 어린이 영화라 생각하지 않게 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동물 애니메이션과 동물 동작을 흉내낸 쿵푸의 찰떡궁합 만남에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어린 시절 성룡의 ‘사형도수(뱀의 동작을 무술로 만듬)’를 열광하던 자신을 떠올리고,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 가족이 함께 본 영화 속에서 ‘생활’이라는 공통의 공감을 가지는 체험은 유쾌하기 그지없는 일이니 말이다. 어쩌면 아이들은 가장의 똥배에서 어떤 생활의 공력을 느끼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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