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 농담 질펀한 섹시한 폭력, ‘플래닛 테러’
어린 시절 했던 놀이 중에는 이른바 ‘엉망진창 놀이’라는 게 있었다. 진흙탕에서 뒹굴거나, 케이크를 잔뜩 얼굴에 바르거나 사방으로 던지고, 때로는 손바닥 가득 물감을 칠하고는 커다란 도화지 위에 아무렇게나 막 칠하는 그런 놀이. 엉망진창 놀이의 묘미는 처음 손이나 몸을 더럽힐 때만 조금 꺼려지지 아예 포기하고 나면 묘한 자유의 쾌감을 만끽할 수 있다는 점이다. 피가 철철 흐르고 살점이 튀며 머리가 호박처럼 쪼개지는 ‘플래닛 테러’는 바로 그 엉망진창 놀이를 닮았다. 일단 마음의 저항감을 없애고 그 피칠갑의 영상에 몸을 맡기게 되면 그 재미에 푹 빠지게 된다는 점이 그렇다.
엉망진창 놀이에 잘 꾸며진 영상이 대수일까. 일부러 B급 영상을 표현하기 위해 고의로 화면에 스크래치를 하고, 어딘지 엉성한 화면 연출과 대사까지 의도적으로 흘려보내며, 심지어 중요한(?) 베드신 장면에서는 필름이 소실된 듯한 영상을 꾸미면서 ‘필름이 분실되어 죄송합니다’라는 자막까지 끼워 넣는다. 이 엉성하고 느슨한 연출은 그 위에 얹어질 좀비들과의 피 튀기는 일대격전을 한바탕 놀이로 만들어버린다. 그 속에서는 조금 개연성이 떨어지거나 어색한 화면 같은 것은 아무래도 좋은 것이 되어버린다. 중요한 것은 그 엉성함이 깔아주는 편안함 속에서 마치 카타르시스처럼 잘라지고 터지는 몸뚱어리와 피의 제전이며, 그 기저에 깔려진 끝없는 블랙유머다.
하지만 엉망진창으로 꾸며졌다고 해서 이 영화가 실제로 엉망진창이라는 것은 아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영화 곳곳에 치밀한 계산이 되어 있는 면면들을 발견하게 된다. 영화가 클럽에서 고고댄스를 추는 체리 달링(로즈 맥고완)의 도발적인 춤에서 시작한다는 것은 그 유혹적인 춤동작들이 후반부에 여전사의 모습으로 전화될 것을 예고한다. 이 에로티시즘이나 식욕 같은 욕망을 폭력으로 연결시키는 독특한 발상은 타란티노와 로드리게스의 걸쭉한 영상 농담으로 구현된다. 영화 속 짝패를 이루는 체리 달링과 엘 레이(프레디 로드리게스)는 남녀의 성적 욕망을 폭력으로 구현된 캐릭터들이다. 좀비들에게 다리가 거세된 체리 달링은 엘 레이를 만나고 그가 나무 막대기를 다리에 박아주면서 여전사로 우뚝 선다.
체리 달링을 겁탈하려 하는 강간범(타란티노)을 때려눕히면서, 바로 그 나무다리는 부러지지만 엘 레이는 거기에 좀더 강력한 기관총 다리를 무기로 박아 넣는다. 이 성적인 묘사들은 두 사람의 사랑의 징표인 반지에 새겨진 ‘둘이 함께 세상에 맞서며’라는 문구와 잘 어울린다. 거기에는 사랑과 폭력이 함께 공존한다. 이러한 욕망과 폭력의 연결은 식욕과 피를 연결시키는 부분에서도 발견된다. 소시지 소스의 비밀을 찾고 있는 JT(제프 파헤이)가 피에서 단서를 발견하는 것이나, 죽은 듯 쓰러진 척 하는 JT의 배 위에 내장처럼 올려진 소시지를 엘 레이가 씹어 먹으며 “죽이는 맛이다”고 말하는 장면이 그렇다. 사실 사람을 뜯는다는 좀비들에 대한 상상 자체가 바로 이 식욕과 폭력의 혼합물이다.
‘플래닛 테러’는 엉망진창으로 만들어진 영화처럼 보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영화다. 그것은 이미 전설이 되어버린 조지 로메로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 대한 찬양이지만 로드리게스 특유의 농담은 그 B급 취향을 대중적으로 확산시키는 힘이 있다. 그러니 이 영화를 보면서 괜스레 진지해질 필요는 없다. 그저 그 엉망진창 놀이가 주는 조금은 느슨한 즐거움으로 바라보기만 하면 그 안에서 우리는 피를 뒤집어쓴 수많은 농담을 발견해낼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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