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놀면', 유재석→이효리→엄정화로 이어진 위로와 연대의 물결 본문

옛글들/명랑TV

'놀면', 유재석→이효리→엄정화로 이어진 위로와 연대의 물결

D.H.Jung 2020. 8. 31. 10:46
728x90

'놀면 뭐하니'의 메시지, 먼저 나를 세우고 연대하라

 

MBC 예능 <놀면 뭐하니?>라는 프로그램의 제목은 "놀면 뭐하니?"하고 툭 던진 말에서 시작한 것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갈수록 이 제목에 담긴 '논다'는 의미는 우리의 가슴을 툭툭 건드리며 묵직한 울림이 더해지고 있다. 똑같은 단어 하나도 어떤 말과 행동이 이어지고 겹쳐지면서 그 의미가 깊어지는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런 변화는 유재석과 김태호 PD가 던진 작은 '놀이'에서 시작됐다.

 

카메라 하나 툭 던져놓고 '놀아보라' 했던 김태호 PD의 제안이 엉뚱하게도 유재석의 '부캐 놀이'로 이어졌고, 유고스타(드럼), 유산슬(트로트), 라섹(라면집), 유르페우스(하프), 유DJ뽕디스파뤼(라디오DJ), 닭터유(치킨집)를 거치며 성장, 확장됐다. 다양한 부캐 놀이가 가능하다는 건 그간 유재석이라는 하나의 아이덴티티 안에 머물던 더 많은 가능성들이 껍질을 깨고 밖으로 나오게 됐다는 뜻이다. 그것은 '나의 확장'이었고, 그 확장은 지금껏 '일 중심 사회'에서 하나의 명함으로만 존재가 증명되길 강요받던 시대에 틈입을 만들었다. '놀이'는 그 틈을 찢고 더 많은 나를 꺼내놓는 새로운 시대의 방식이었다.

 

그리고 '나의 확장'은 이제 비슷한 뜻을 가진 이들과의 연대를 통한 다른 이들의 확장으로도 이어졌다. '싹쓰리 프로젝트'가 그것이었다. 여름 시장을 겨냥한 1990년대 혼성그룹에 대한 꿈은 유두래곤과 더불어 린다G(이효리) 그리고 비룡(비)을 이 세계관 속으로 끌어들였다. 일 바깥의 놀이를 통한 유재석의 확장으로 이제 워라밸을 꿈꾸게 된 수많은 대중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지지해주었던 그 힘은 이제 같은 꿈을 가진 이들과의 연대로 나가게 됐다.

 

싹쓰리 프로젝트에서 제주도 소길댁으로 불리던 이효리가 린다G라는 새로운 캐릭터로 자신을 확장시켜 많은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의 로망을 대리충족시켰고, 그는 또 그 자리에서 '센 언니'들을 모아 걸 그룹 활동을 하겠다는 이른바 '환불원정대'의 욕망을 잉태시켰다. 엄정화, 제시 그리고 화사가 더해진 '환불원정대'는 '센 언니'라는 일관된 캐릭터들의 집합으로 시작됐지만 그 이면에 담긴 건 여성과 나이에 대한 현실의 고정관념과 편견을 깨는 이야기로 그려지고 있다.

 

그 중심에 서 있는 건 엄정화다. 이효리의 부름에 선뜻 참여한 엄정화는 이효리 스스로도 말했듯 모든 여성 아티스트들의 롤 모델 같은 인물이 아닐 수 없었다. 나이 들어서도 여전히 왕성히 활동하고 그것도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호흡하려 늘 도전하는 모습이 그 이유다. 이효리는 엄정화를 보면서 그가 간 길을 따라가려 했다고 했고, 아마도 이런 선배들의 길 뒤로 제시가 그리고 화사가 걸어갈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환불원정대'는 그 자체로 나이에 의해 특히 배척받던 여성 아티스트들이 나이와 상관없이 함께 활동하는 모습으로 이 편견과 차별의 틀을 깨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게다.

 

엄정화에 대한 '리스펙트'를 가지면서도 그렇다고 박제된 신화로서가 아니라 살아있는 현업 아티스트로서 그를 대하는 '환불원정대' 멤버들의 모습은 그래서 시청자들에게도 기분 좋은 위로를 전해준다. 리더가 된 이효리와 티격태격하고, 또 엄정화의 옛 영상 때문에 피식 웃게 된 제시에게 "제시 지금 웃은 거야?"라고 묻자 "네"라고 당당히 말하는 그런 관계, 그리고 그 와중에도 전혀 긴장한 티 없이 습관성 하품을 해서 웃음을 주는 화사의 모습 등등은 그래서 예사롭지 않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런 관계 속에서 환하게 웃음 짓는 엄정화에게서는 나이 들어 대접 받기보다는 나이와 상관없이 같은 웃고 떠들고 호흡하고픈 욕망을 건드리는 면이 있어서다.

 

<놀면 뭐하니?>는 누군가의 작은 변화 하나가 얼마나 큰 변화로도 이어질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점점 흥미로워지고 있다. 유재석 개인의 확장을 통해 그 누구나 갇혀진 하나의 정체성을 깨고 또 다른 가능성의 나를 찾을 수 있다는 용기를 얻게 했다면, 이제 그는 비슷한 꿈과 뜻을 가진 이들과 연대하고, 거기서 탄생한 또 다른 인물이 꿈꾸는 또 다른 연대로 끊임없이 펼쳐져 가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들은 시청자들 역시 그 변화의 물결에 동참하게 만드는 힘을 발휘한다. 보고 위로받은 만큼 지지해주는 것만으로도.(사진: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