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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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란 세상

진심으로 미친 자들이 뜬다

D.H.Jung 2021. 7. 24.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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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의 성패를 가르는 진정성의 힘

 

한때는 마니아들의 전유물처럼 치부되던 소재들이 예능의 트렌드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낚시, 골프, 게임, 밀리터리 등이 그것이다. 물론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하지는 않지만 ‘찐팬’들의 막강한 힘이 느껴지는 이들 소재 예능이 주목받는 이유는 뭘까.

도시어부3

<도시어부>, 낚시에 미친 자들의 세계

한 때 예능에서 낚시는 금기시되는 소재였다. 이유는 잠깐 잡히는 그 순간에 비해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어 들이는 노동에 비해 나오는 방송분량이 적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과거 KBS <1박2일>이나 <남자의 자격>에서 낚시를 소재로 잡았을 때, 낚시 자체보다는 복불복이나 토크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최근 시즌3를 방영하고 있는 채널A <나만 믿고 따라와, 도시어부(이하 도시어부)>는 이런 금기를 보기 좋게 깨버렸다. 종편 채널로서 시즌1에 5.3%(닐슨 코리아)의 최고시청률을 냈고 지금껏 3%에서 4%대의 시청률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시청률은 그리 높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 프로그램의 진짜 강점은 화제성이다. 낚시에 진심인 이른바 ‘찐팬’들의 열렬한 지지 덕분이다. 

 

이렇게 된 건 <도시어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이덕화, 이경규 같은 진짜 ‘낚시에 미친 자들’이 출연하고 있어서다. 다른 방송이었다면 한 자리에 앉아 40시간 동안 촬영을 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게다. 하지만 이 ‘낚시에 미친 자들’은 40시간을 꼬박 잠도 안자고 낚시를 하고도 더 하면 안 되냐는 말로 제작진들의 귀갓길을 가로막는다. 그만큼 낚시에 진심이라는 것이다. 출연자들이 이러니 ‘찐팬’들은 오죽할까. 가끔 게스트가 출연해 여느 예능에서 하듯 주저리주저리 토크를 늘어놓으면 찐팬들의 “낚시나 하라”는 얘기가 쏟아져 나온다. 이수근은 처음 늘상 하던 대로 토크를 하다 욕 많이 얻어먹었다고 털어놓는다. 이런 낚시에 미친 자들과 거기에 빠져든 시청자들의 끈끈한 관계가 <도시어부>라는 ‘노동 강도 최강’의 예능 프로그램을 성공시킨 이유다. 

 

마니아들의 세계가 예능의 트렌드로 떠오르는 이유

한때 예능의 금기였던 낚시 같은 마니아들의 세계는 최근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골프 예능은 단적인 사례다. TV조선 <골프왕>을 시작으로 JTBC <회원모집 세리머니 클럽>, SBS <골프 혈전 편 먹고 072>, tvN D <스타골프빅리그>, 티빙 <골신강림>, MBN <그랜파> 등 골프 예능은 갑자기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왔다. 한때는 부자들의 스포츠처럼 여겨져 서민들의 예능에는 어울리지 않는 소재였었지만, 최근 들어 골프는 ‘대중적인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골프 클럽이 그만큼 늘어났고, 가격도 적당해졌다. 특히 골프는 이 종목에 미쳐 준프로급 수준의 기량을 가진 연예인들이 적지 않다. 그들 역시 골프에 진심이다. 그래서 이들이 필드에 나가 벌이는 대결과 성장의 이야기는 특별한 예능적 조미료를 치지 않고도 충분히 몰입감을 준다. 

 

채널A <강철부대>는 물론 ‘밀리터리 예능’이 스테디셀러의 소재였지만, 보다 마니아적인 접근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밀리터리 마니아들은 물론이고 슈팅게임 마니아들까지 팬층으로 끌어들이면서 프로그램은 큰 화제성을 불러일으키며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파일럿으로 방영되어 괜찮은 반응을 얻은 후 정규로 돌아와 더 주목받고 있는 <골 때리는 그녀들>도 지금껏 잘 다뤄지지 않았던 여자 축구를 소재로 했다. 중요한 건 여기 출연하는 연예인들이 예능이 아닌 축구 자체에 진심으로 빠져드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이다. 파일럿에서의 전패 굴욕에 절치부심해 자발적으로 연습에 매진하고 다시 경기를 치른 모델팀이 보여준 투혼 같은 걸 보다보면 그것이 단지 예능이 아니라는 걸 실감하게 된다. 발톱이 빠져도 승부욕을 드러내고, 모델 다리에 여기저기 멍든 자국들이라니. 이러니 찐팬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특히 ‘여자 축구’라는 소재 때문에 ‘여자’라는 지점을 너무 강조하거나, 혹은 ‘○○의 아내, ○○의 며느리’식으로 불렀던 파일럿에서의 문제점들을 모두 수용해 변화를 보여줬고, 남녀라는 성별과 상관없이 ‘축구’ 자체에 집중한 면이 이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에게 공감대를 얻은 이유가 됐다. 

 

시청률이 성공의 지표? 이제는 팬덤이 생겨야

과거 금기시되던 마니아 소재들이 예능에서 새로운 성공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고, 예능의 성공방정식이 ‘진심이냐 아니냐’로 구분되는 이 변화는 어떻게 생겨난 걸까. 그건 ‘취향’이 점점 중요해진 시대에 숫자는 상대적으로 적어도 열성적인 찐팬(마니아)의 힘이 더욱 강력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방송 프로그램 성공의 지표가 시청률이 아닌 ‘팬덤’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즉 시청률이 높다고 해도 찐팬들이 모여 팬덤이 형성되지 않으면 성공한 프로그램이라 하기 어렵지만, 반대로 시청률이 낮아도 팬덤이 형성되면 나름 성공한 프로그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TV조선의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인 <미스터트롯>과 <미스트롯2>의 성패를 들 수 있다. 두 프로그램 모두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미스터트롯>과 달리 <미스트롯2>는 성공한 프로그램이라 일컬어지지 않는다. 그 차이는 팬덤에서 비롯된다. <미스터트롯>은 여기서 배출된 톱7이 모두 강력한 팬덤을 만들었지만 <미스트롯2>는 누가 우승을 차지했는지조차 모르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찐팬은 이제 글로벌 네트워크로 연결되면서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됐다. 방탄소년단의 팬덤 아미는 단적인 사례다. 유튜브를 통해 모여든 찐팬들이 각국에서는 적어도 글로벌하게 연결되면서 결코 적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했고, 그 힘들이 모여 방탄소년단의 현재를 만들었다. 이 성공사례는 그래서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방시혁 대표가 참여했던 Mnet <I-LAND>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이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은 최고시청률이 겨우 0.7%에 불과했지만 오디션 과정에서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팬 커뮤니티 플랫폼인 위버스를 통해 글로벌 팬덤을 확보했다. 이 팬덤의 힘은 여기서 배출된 아이돌그룹 엔 하이픈이 반년만에 빌보드 앨범차트에 18위로 입성하는 결과로 드러났다. 어째서 팬덤 확보가 새로운 성공의 지표가 되는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미 취향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디지털 네트워크로 묶여진 취향에 진심인 이들은 더 이상 마니아라 부를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만일 글로벌로 묶인다면 글로벌 스타가 탄생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러니 이 취향에 진심인 자들을 매료시키는 건 ‘진심으로 미친 자들’이다. 이들이 보여주는 진정성이야말로 예능의 성패로 자리하게 된 이유다.(글:시사저널, 사진:채널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