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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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란 세상

지소연까지 출격한 ‘골때녀’, 승패만이 아닌 스포츠의 진가

D.H.Jung 2021. 8. 20.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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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때녀’, 그녀들의 피, 땀, 눈물에 담긴 스포츠의 진가

골 때리는 그녀들

스포츠는 어쩔 수 없이 경쟁을 할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승패만이 중요할까. 지금껏 그 많은 스포츠중계들이 보여준 건 경기와 결과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스포츠는 그 이외에도 중요한 가치들이 적지 않다. 함께 공통의 목표를 향해 달리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동료의식이나, 이기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만들어내는 초인적인 성실함, 결과를 이뤘을 때의 희열과 더불어 좌절했을 때 서로를 토닥이며 또 나갈 수 있게 해주는 끈끈한 연대의 힘 등등 그 진가는 적지 않다. 

 

SBS <골 때리는 그녀들>이 리그전을 통해 4강을 확정짓고 본격 대결을 하기 전 팀들의 훈련과정을 담았다. 최종 4강에 올라간 팀은 FC불나방, FC월드클라쓰, FC국대패밀리, FC구척장신이다. FC개벤져스는 FC월드클라쓰와 승, 패, 골득실, 다득점이 다 동일했지만 승자승 원칙에 의해 개벤져스를 이긴 월드클라쓰가 4강에 올랐다. 새로 팀이 꾸려져 리그전을 벌였던 FC액셔니스타는 선전했지만 아쉽게도 2패로 4강 진출에 실패했다. 

 

숨 가쁘게 경기 중심으로 달려왔던 <골 때리는 그녀들>이 잠시 멈춰서 4강전을 저마다 준비하는 훈련과정을 담은 건 여러 가지 목적이 들어 있다. 그간 지치고 다친 선수들을 회복시키는 시간이 필요한데다, 훈련을 통해 좀 더 4강전을 준비할 수 있게 하려는 뜻이 담겨있다. 그리고 그것만큼 중요한 건, 4강전에 앞서 이제 경기에 나설 선수들의 각오나 그 간의 소회 등을 담아냄으로써 그들의 면면을 좀 더 주목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이 훈련과정에서 무엇보다 반가웠던 건 우리네 여자축구의 상징이자 말 그대로 월드클래스인 지소연 선수가 원 포인트 레슨을 해주기 위해 프로그램에 모습을 드러낸 점이다. 지소연은 2010년 U-20 월드컵에서 사상 첫 3위, U-17 청소년 여자축구 월드컵 사상 첫 우승을 기록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한 선수이자, 2014년 한국 여자 축구 선수 최초로 잉글랜드 첼시FC 위민에서 뛰었고 2015년 잉글랜드 프로축구선수협회 올해의 선수상을 받는 등 7년 간 10개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던 말 그대로 월드클래스 여자축구선수가 아닌가. 

 

지소연은 영국에서도 남자축구와 달리 조악한 지원을 받던 여자축구에 똑같은 지원을 해달라 요청하면서 변화를 만들고 다시금 여자축구의 부흥을 이끌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니 <골 때리는 그녀들>이 보여주는 여자축구라는 종목에 지금껏 2002 월드컵의 주역이었던 남자축구 레전드들만 감독들만 부각된 면들이 남긴 아쉬움을 지소연의 출연이 어느 정도 상쇄해주는 면이 있었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을 통해 점점 축구의 묘미를 알고 여자축구의 꿈을 꾸게 된 이들에게도 지소연의 출연은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1대1 대결을 통해 지소연도 당황하게 만들었던 FC불나방의 박선영의 놀라운 기량은 그 자체로도 흥미로운 볼거리를 만들었지만, 누구나 열정을 갖고 뛰어들면 성역처럼 여겨져 온 편견을 넘어 멋지게 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더욱 흥미로운 건 잠시 멈춰 4강전을 준비하는 훈련 과정을 통해 이들이 여자축구라는 스포츠를 통해 얻게 된 저마다의 성취를 들려줬다는 점이다. 

 

FC액셔니스타로 뛰며 아쉽게 탈락하게 된 최여진은 애초 축구를 자신이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처음 연습하고 나서는 “이걸 안했으면 내가 못 버텼겠다” 했다고 말했다. 몸은 힘든데 정신이 너무 맑아져서 일도 더 잘됐다는 것. 부상투혼을 보였던 장진희 역시 축구를 한 이후 정신적인 것도 몸도 너무 건강해졌다고 말했다.

 

특히 월드클라쓰에서 최진철이 팀원들과 나누는 이야기는 감동적이기도 했지만, 스포츠를 승패를 떠나 얼마나 다양한 것들을 해줄 수 있는가를 들려준 것이기도 했다. 구잘은 하루 종일 축구 연습을 하는 자신을 보며 “살면서 이런 열정이 있을 거라고 상상도 못했다”고 했다. 마리아는 3년 전 한국에 와서 너무 외로웠는데 축구를 하면서 패배도 같이 경험한 동료들과 더 끈끈하고 정이 깊어졌다고 했다. 

 

그 누구보다 열정적인 게 경기 중에서도 보이는 사오리는 남다른 사연을 들려줘 모두를 뭉클하게 만들었다. “내가 선택한 삶을 살아야겠다”고 선택한 한국행으로 한글과 한국어 수어 아티스트로 활동하는 사오리는 자신이 선택한 것에 대해 책임을 갖고 끝까지 해내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더 열심히 축구를 하게 됐다고 했다. 그래서 하다 보니 “축구중독”이 됐다는 사오리는 매일매일 조금씩 성장하는 자신의 모습 때문에 재미와 성취감을 느꼈고 “삶이 밝아진 느낌”이라고 했다. 학교 다닐 때 왕따를 당한 경험을 털어놓은 사오리는 그 때도 소프트볼팀에 들어가 함께 스포츠를 하면서 그 어려움을 극복했다고 했다. 

 

아비가일은 미군인 남편과 결혼 후 평택에서 살면서 외로움과 우울증이 있는데다 아기가 생기지 않아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는데 축구를 하면서 이런 게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아비가일의 이야기를 들은 에바는 육아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테니스를 했는데 운동으로 몸도 마음도 좋아지면서 둘째도 생겼다며, 아비가일 역시 축구를 통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덕담을 해줬다. 

 

우리는 과연 스포츠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대부분 스포츠중계 중심으로 보고, 특히 국제대회 같은 국가 스포츠 관점으로 보다보니 실제 스포츠의 진가를 제대로 보지 않고 있었던 건 아닐까. 물론 승패는 스포츠에서 어쩔 수 없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얻게 되는 건강함이 진짜 가치가 아닐까 싶다. 그러니 스포츠에 남녀 차이 같은 걸 편견과 선입견으로 세워 아예 시도 자체를 못하게 되는 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골 때리는 그녀들>은 스포츠에 드리워진 성차의 편견만이 아니라, 승패로만 바라보는 스포츠의 진가에 대한 편견 또한 걷어내 주고 있다. 피와 땀 그리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축구가 좋다는 이 여성들을 통해서.(사진:S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