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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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란 세상

‘슬의생2’ 조정석, 그저 까불이 같지만 의외로 섬세한

D.H.Jung 2021. 8. 22.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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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의생2’의 멜로와 의드, 무심한 듯 섬세한 조정석을 닮았다

슬기로운 의사생활2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이익준(조정석)은 전 시즌부터 이번 시즌까지 가장 웃음을 주는 인물일 게다. 그는 등장부터가 남다르다. 시즌1에서는 다스베이더 헬멧 가면을 쓰고 등장했다. 아이가 헬멧에 본드를 바른 걸 모르고 썼다가 머리에 붙어버려 응급실로 오게 된 것. 다른 인물들이 율제병원에서 다소 심각한 얼굴로 환자를 치료하는 모습으로 등장한 것과 달리, 그는 다스베이더 헬멧을 쓴 채 응급한 환자를 위해 수술실에 들어가는 모습으로 등장했다. 

 

시즌2에서도 이익준은 쫄쫄이 사이클 복장을 한 채 <맨 인 블랙>을 흉내 내고,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다 만난 어르신이 쓰러지자 응급처치를 한 후 병원으로 오는 에피소드로 시작했다. 장난꾸러기에 까불이 같은 모습은 시즌1에 이어 시즌2에도 계속된다. 특히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종종 보여주는 코믹한 상황에 이익준은 단골로 등장하는 인물이다. ‘병원장배 10회 율제탁구대회’에서 경기를 시작할 때마다 응급호출이 와서 운 좋게 결승까지 올라갔다가 ‘국가대표’ 수준의 기량을 가진 상대(현정화)를 만나 0패를 당하는 이야기에도 역시 이익준이 빠지지 않는다. 

 

아마도 이건 조정석이라는 배우가 코미디 상황을 너무나 잘 소화해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는 영화 <건축학개론>에서도 납득이로 등장해 그 짧은 분량에도 엄청난 화제를 만들었던 배우가 아닌가. 물론 드라마 <녹두꽃> 같은 사극에서의 정극 연기도 빼놓을 수 없지만 <질투의 화신>, <오 나의 귀신님> 같은 코미디 속에서 조정석은 독보적이다. 그의 코미디 속에서는 그저 웃기는 것만이 아닌 페이소스가 깔려 있어서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조정석이 연기하는 이익준이라는 인물은 그저 가벼운 까불이 캐릭터가 아니다. 그가 환자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 그의 유머는 온전히 환자들을 편하게 해주기 위한 배려에 가깝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환자 앞에 친절하기만 한 건 아니다. 딸들에게 간 이식을 두 차례나 받고도 또 술을 마셔 다시 간 이식을 받아야 되는 비정한 아버지에게는 자식이 간 기증 해주는 건 “목숨을 거는 일”이라며 일침을 하기도 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대부분 그는 자신이 어떻든 웃으며 상대방을 배려하려 한다. 

 

여동생 익순(곽선영)이 갑자기 안 좋아진 몸 상태 때문에 김준완(정경호)과 애써 이별을 통보했지만, 그의 핸드폰 화면을 여전히 채우고 있는 김준완의 사진을 보고는 익준이 남몰래 하는 오작교 역할은 그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친구도 동생도 아끼고 두 사람이 서로를 잊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는 두 사람 사이에 직접 개입하기보다는 우연을 가장해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지방에 갔다 오는 같은 버스에 일부러 자리를 예약해주고, 두 사람이 약속한 날 익순이 갑자기 몸 상태가 안 좋아 응급실에 가게 되자 김준완에게 연락해 동생이 아파 응급실에 와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준다. 그리고는 김준완이 도착할 시간에 맞춰 동생에게 문자를 일부러 보내 그 메인 화면을 김준완이 보게 만든다. 그의 사진이 들어 있는 메인 화면을. 이보다 섬세할 수가 있을까. 

 

9회에서는 특히 율제병원에서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열심인 사람들을 조명해줬다. 드라마가 익준, 정원(유연석), 준완, 석형(김대명), 송화(전미도) 이렇게 율제병원 99즈로 불리는 5인방 의사들에 맞춰져 있지만, 병원은 그들만이 아닌 무수히 많은 이들의 보이지 않는 헌신들이 모여 환자의 생명을 돌보고 있다는 걸 담아낸 것이다. 

 

교통사고로 심장과 복강 수술을 모두 받아야 하는 응급환자가 들어오고 결국 그 수술을 위해 익준과 준완이 함께 수술실에 들어와 번갈아가며 수술을 함으로써 환자가 살 수 있게 된 상황이었다. 환자 가족이 너무나 고마움을 표하는 가운데, 이 수술이 성공하게 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게 누구냐는 질문에 준완은 ‘초반 응급처치’ 덕분이라고 말한다. 자신도 익준도 아닌 응급실 사람들이 잘 대처했기 때문에 수술도 가능할 수 있었다는 것. 

 

우유를 잘 먹지 못해 병원에서 지내게 된 아기가 이제 우유를 잘 먹게 된 일로 부모가 감사함을 표하자 정원 역시 그 감사는 자신이 아니라 거의 하루 내내 아기를 돌봐준 간호사들에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갑작스런 수술 때문에 지방 출장을 가다가 되돌아와 수술에 참여하는 영상의학과 교수(유재명)의 에피소드 역시, 한 사람의 생명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헌신이 있는가를 드러내는 대목이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2>는 물론 율제병원 의사 5인방을 중심으로 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모든 걸 해내는 영웅으로 그리고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들 역시 부모의 병 때문에 아파하고 사랑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는 인간이라는 걸 드러낸다. 또 그들이 모든 환자들을 구해내는 영웅이 아니라 그들만큼 주변에도 보이지 않는 무수한 헌신들이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그런데 그 방식은 마치 조정석 같은 캐릭터의 성격을 빼닮았다. 무심한 척 가벼운 척 하지만 그 이면에 남다른 섬세함이 느껴진다. 이것은 <슬기로운 의사생활2>가 장르적으로 취하고 있는 멜로와 의학드라마 두 분야에서 모두 마찬가지다. 너무 내놓고 드러내기보다는 무심한 듯 슬쩍 꺼내놓는 진심. 아마도 시청자들이 마치 조정석을 볼 때 짓게 되는 미소처럼 이 드라마를 보며 미소 짓게 되는 건 이런 낮은 시선 덕분이 아닐까.(사진: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