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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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소매’, 이준호와 이세영이 MBC드라마 부활시키나

D.H.Jung 2021. 12. 11.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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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소매’, 이준호와 이세영이 그린 이산 그 강력한 힘의 원천

옷소매 붉은 끝동

어쩐지 심상찮다. 벌써부터 MBC드라마의 부활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MBC 금토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에 쏟아지는 반응이다. 이런 상황은 시청률 수치로도 드러난다. 첫 회 5.7%(닐슨 코리아)로 시작한 시청률은 매회 상승해 6회 만에 9.4%를 찍었다. 이 기세대로라면 두 자릿수는 당연히 돌파할 것으로 보이고 나아가 그간 부진의 늪에 빠졌던 MBC드라마 브랜드까지 일으켜 세울 조짐이다. 

 

물론 <옷소매 붉은 끝동>이라는 사극이 새로운 건 아니다. 이미 MBC가 사극으로 만들었던 <이산>의 이야기다. 워낙 영정조 시대에 사도세자의 아들 이산(이준호)과 그의 후궁이었던 의빈 성씨의 사랑이야기는 그 자체로 드라마틱할 수밖에 없다. 끝없는 신변의 위협을 받으며 말 그대로 ‘궁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투쟁을 벌이며 성군이 됐던 정조와 그를 옆에서 사랑하며 지켜줬던 의빈 성씨의 이야기. 

 

실제로 <옷소매 붉은 끝동>은 <이산>, <동이>, <대장금>을 만들며 퓨전사극의 시대를 열었던 이병훈 감독의 색깔이 느껴질 정도로, 이야기 중심의 서사와 분명한 선악구도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미션 구조와 성장드라마를 갖고 있다. 시종일관 긴장감을 끌고 가면서도 성덕임(이세영)의 궁녀 동무들인 김복연(이민지), 배경희(하율리), 손영희(이은샘) 같은 인물들로 밝은 웃음을 잃지 않아 드라마가 전체적으로 밝은 느낌을 주는 것도 그렇다. 

 

그런데 <옷소매 붉은 끝동>이 <이산>과는 다른 지점은 성덕임과 이산 사이의 멜로 라인과 더불어, 시시각각 위기에 처하는 이산을 성덕임이 기지를 발휘해 모면하게 해주고 나아가 그가 왕이 되는 그 순간까지 보이지 않는 실질적인 힘을 실어준다는 서사 구조다. 성덕임은 그래서 이산을 돕는 비밀조직인 동덕회의 일원이 되어 활약한다. 

 

성덕임의 궁녀라는 위치는 그가 이 살벌한 궁에서 이산의 최측근이 될 수 있는 이유가 된다. 영조의 노여움을 사 좋아하는 책을 모두 빼앗긴 채 금족령에 처해진 이산을 위해 성덕임이 문밖에서 책을 읽어주고, 중전(장희진)을 설득해 금족령에서 풀려나게 해줄 수 있는 것도 그가 궁녀이기 때문에 가능해진 일들이다. 

 

그런데 성덕임이 이산을 위해 보위에 오를 때까지 자신이 지켜주겠다고 말하는 데는 두 사람의 묘한 동병상련이 담겨 있다. 궁녀로서 갖은 어려운 일들을 당하며 살고 있는 성덕임이지만, 그는 세손인 이산이 영조에게 꾸지람을 듣고 심지어 손찌검을 당하는 걸 알고는 어쩔 줄 몰라 한다. 그 역시 궁궐 내에서 결코 쉽지 않은 위치에 서 있다는 걸 공감하는 것. 그래서 이산에 대한 성덕임의 충성 맹세는 자신의 이익이 아닌 ‘그에 대한 마음’이 담긴다. 

 

게다가 궁녀라는 낮은 위치에 있지만 그에게 던져지는 수수께끼 같은 문제들을 성덕임이 하나씩 풀어나가는 과정은 시청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기에 충분하다. 그는 이산이 보위에 오르기 위해 중전의 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그를 돕는다. 영조의 막내딸인 화왕옹주(서효림)가 대놓고 무시하는 중전이 친잠례 행사 때 그를 무릎 꿇릴 수 있는 묘수를 내놓는다. 조선의 비단을 사용해야 한다는 의미로 치러지는 친잠례 행사에 옹주가 청나라 비단을 뽐내는 걸 모든 이들이 보는 앞에서 중전이 벌주었던 것. 

 

마치 전통적인 옛 이야기의 재미처럼 수수께끼와 미션을 풀어가며 궁내에서 이산과 성덕임이 입지를 마련해 가는 과정은 편안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긴박한 상황이 이어지면서도 전체적으로 밝은 분위기는 여러 캐릭터들의 매력에서 비롯된 부분이다. 영조나 중전 그리고 최측근인 겸사서 홍덕로(강훈)까지 이산을 돕는 것처럼 보이지만 또한 위협적인 존재들로 그려지고, 화완옹주나 제조상궁 조씨(박지영), 홍정여(조희봉) 같은 인물들이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드는 상황 속에서 이산과 성덕임의 관계는 더 긴밀해진다. 거의 유일하게 서로를 믿을 수 있는 관계가 되는 것. 

 

여기에 이산과 성덕임 사이에 조금씩 피어나는 멜로는 드라마에 강력한 힘을 부여한다. 어쩌다 자꾸 선을 넘어 들어오게 되는 성덕임과 그런 그가 자꾸 신경 쓰이고 눈길이 가게 되는 이산의 신분을 뛰어넘는 밀당이 주는 두려움을 뛰어넘는 설렘이 그것이다. 이러니 <옷소매 붉은 끝동>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이 뜨거워질 수밖에 없다. 달달한 멜로에 치열한 궁중에서의 권력 대결이 균형 잡힌 이야기의 재미로 풀어지고 있어서다. 

 

최근 몇 년 간 거의 투자 자체가 이뤄지지 않아 ‘드라마 공화국’이라 불렸던 MBC드라마의 위상은 바닥을 쳤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검은 태양>이 괜찮은 반응을 이끌어내며 열어 놓은 MBC드라마의 새로운 길에 <옷소매 붉은 끝동>이 거침없이 달려 나가는 형국이다. 무엇보다 이준호와 이세영 같은 아직 중견이라 할 수 없는 젊은 배우들이 이 놀라운 일을 전면에서 해내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실로 심상찮다. MBC드라마가 부활하고 있다. (사진: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