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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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란 세상

느와르는 남성 전유물? ‘작은 아씨들’이 완성한 여성 느와르

D.H.Jung 2022. 10. 11.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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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 주인공도, 최종 빌런도 여성으로 채운 느와르의 탄생

작은 아씨들

tvN 토일드라마 <작은 아씨들>이 종영했다. 12부작으로 쉴 틈 없이 폭풍 전개된 <작은 아씨들>은 한 편의 판타지 느와르에 가까웠다. 엄청난 모험을 겪은 세 자매는 결국 빌런들을 모두 해치우고 해피엔딩을 맞았다. 첫째 오인주(김고은)는 그토록 원하던 자신과 자매들이 지낼 보금자리인 아파트를 얻었고, 둘째 오인경(남지현)은 기자직 제안을 거절하고 하고픈 공부를 하기 위해 유학길에 올랐다. 사랑하게 된 하종호(강훈)와 함께였다. 또 셋째 오인혜(박지후)는 친구 박효린(전채은)과 함께 해외에서 최도일(위하준)의 도움으로 빼돌렸던 비자금 7백억을 찾아 자매들과 골고루 나눴다. 그저 흔한 가족 판타지나 돈보다 중요한 가치 같은 걸 내세우기보다는 느와르가 그리기 마련인 보다 욕망에 충실한 세속적인(?) 엔딩을 담았다. 

 

되돌아 생각해보면 <작은 아씨들>은 일찌감치 흔한 가족 서사를 저 뒤편으로 밀어낸 후 이야기를 시작했다. 세 자매의 엄마가 막내의 수학여행을 위해 언니들이 마련한 돈을 들고 해외로 튀는 이야기가 먼저 전개되기 때문이다. 그 후로 부모가 부재한 세상에 덜렁 남은 세 자매의 분투기가 펼쳐졌다. 지긋지긋한 가난으로 지지고 볶는 가족 서사를 일단 치워버린 드라마는 인주, 인경, 인혜 세 자매가 각각 원상아(엄지원), 박재상(엄기준) 부부의 집안과 얽히며 벌어지는 사건들 속으로 뛰어들었다. 

 

즉 이 작품은 사람이 죽어나가는 느와르지만 세 자매라는 여성 주인공들이 이야기 전체를 끌고 나간다는 확실히 다른 설정으로 시작했다. 세 자매는 각각 저마다의 다른 방식으로 원상아와 박재상으로 상징되는 자본화된 시스템이 가진 폭력과 맞선다. 폭력과 맞서는 세 자매의 방식은 그들의 직업과 연결되어 있다. 오인주는 경리로서 비자금과 관련된 사건 속에 휘말리고 그 돈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오인경은 기자로서 어떠한 외압에도 굴하지 않고 진실을 파헤쳐 나간다. 오인혜는 놀라운 미술적 재능을 가진 인물로 그 예술적 능력이 저들과 맞설 수 있는 힘이 되어준다.   

 

<작은 아씨들>은 이들 여성 주인공들이 대적하는 최종 빌런 역시 여성으로 세웠다. 처음에는 박재상이 최종 빌런처럼 여겨졌지만, 사실상 원상아가 그를 가스라이팅하며 수족처럼 부린 인물이라는 게 드러났다. 원상아는 그의 대저택 지하에 숨겨진 아버지 나무에 의지해 살아가는 푸른 난초처럼 매혹적이지만 죽음의 냄새를 풍기는 인물로 형상화됐다. 아버지의 폭력을 폭로하려던 엄마가 ‘닫힌 방’에 갇혀 살게 되고, 결국 그런 엄마를 회유하려다 실수로 피를 흘리고 쓰러진 엄마가 딸을 위해 저 스스로 장롱 옷걸이에 목을 매 죽게 되면서 이 최종 빌런이 탄생했다. 

 

<작은 아씨들>은 물론 아버지 나무나 베트남전쟁, 정난회 같은 상징들로 그려진 남성성의 폭력적인 세계와 맞서는 여성들의 서사를 그리긴 했지만, 그러한 성 대결보다 이 작품이 보다 추구하려 한 건 주인공도 악역도 또 주변인물들까지 여성 캐릭터로 채워 넣어 만들어낸 여성 느와르였다. 원상아 같은 최종 빌런도 그렇지만, 이 드라마에는 보디가드이자 비서실장도 고수임(박보경) 같은 여성캐릭터이고, 부패한 언론을 상징하는 인물도 장마리(공민정) 같은 여성 캐릭터로 그려진다. 또 유산을 상속해주는 고모할머니 오혜석(김미숙)이나 느와르의 시작이자 끝을 만든 진화영(추자현) 같은 인물들은 흔한 키다리 아저씨의 여성 버전들처럼 보인다. 

 

이 모험담에 빠지지 않은 멜로 서사 역시 남녀 관계는 역전되어 그려진다. 오인주에 대해 최도일은 호감을 갖고 있지만 오인주는 그럼에도 늘 거리를 유지하고, 오인경과 하종호의 멜로에서도 주도권은 오인경이 끌고 간다. 같이 유학을 가자고 한 하종호의 제안을 오인경은 처음에는 거부했다가 나중에는 받아들인다. 이 작품에서 멜로는 이어지는가 아닌가가 중요한 게 아니고 그 관계 속에서 여성이 주체적으로 어떤 선택했는가 아닌가가 중요해 보인다. 심지어 원상아와 박재상 같은 빌런 부부의 관계 역시 박재상이 순애보를 보이지만 원상아는 제 목적을 위해 그를 이용하는 인물로만 그려진다. 

 

<작은 아씨들>이 그린 판타지 여성 느와르는 현실성이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예를 들어 세 남매가 위험에 처해 있는데 부모가 해외에서 여행하듯 살고 있는 상황이나, 부모가 모두 인주와 인경에 의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는데 그 딸인 효린이 인혜와 함께 손을 잡고 떠나는 광경이 그렇다. 하지만 이건 리얼리티가 아니라 어떤 욕망을 투영시킨 느와르 판타지이고 그 욕망이 그리는 건 여성들의 연대다. 인주, 인경, 인혜의 자매애와, 인주와 화영, 인혜와 효린의 워맨스로 그려낸 여성 느와르의 완성. 그것만으로도 남성 중심으로 그려지곤 했던 서사들의 세계 속에서 <작은 아씨들>이 이뤄낸 성취는 충분하다. 그것도 남성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느와르를 여성들의 이야기로 숨 막히게 풀어낸 것이니. (사진: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