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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란 세상

유치해도 남궁민이니까, ‘천원짜리 변호사’ 잘나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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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고게임으로 사건 해결? ‘천원짜리 변호사’가 풍자하는 것

천원짜리 변호사

엉뚱하고 다소 유치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속이 시원하다. SBS 금토드라마 <천원짜리 변호사>가 가진 이상한 관전 포인트다. 단 돈 천 원에 변호를 맡아주는 이상한 변호사가 등장하고 뭔가 대단한 법 조항을 들어 반전의 승소를 이끌어내는 그런 드라마가 아닐까 싶지만 이 변호사가 풀어내는 의뢰인 변호는 엉뚱하기 이를 데 없다. 

 

천영배(김형묵)의 갑질사건이 결국은 천지훈(남궁민)이 제안한 빙고게임으로 해결된다는 에피소드는 단적인 사례다. 아파트 경비아저씨는 물론이고 개인 운전기사, 회사 내 직원들에게 툭하면 폭행, 폭언 같은 갑질을 해온 천영배. 천지훈은 경비아저씨가 차에 스크래치를 냈다고 생떼를 쓰는 천영배의 차를 모두가 보는 앞에서 손수레로 밀어버리고, 소송을 걸겠다는 천영배의 으름장에 백마리(김지은)를 자신의 변호인으로 내세운다. 천지훈 밑에서 시보를 하려는 백마리에게 일종의 숙제를 준 것. 

 

하지만 사건을 오히려 키워버린 천지훈의 행동에 백마리는 법적인 해결책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돈을 들여 차를 고쳐주거나 돈이 없으면 구치소에 들어가거나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 결론이었던 것. 여기에 백마리가 무료법률상담을 해줬던 김태곤(손인용) 역시 바로 그 천영배의 상습적인 폭행, 폭언으로 갑질을 당했던 운전기사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백마리는 심지어 천영배와의 학연까지 이용해 어떻게든 의뢰인들에게 도움을 줘볼까도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방식은 천지훈이 원하는 해결책이 아니었고, 백마리 역시 끝내 천영배에게 “선배님-”이라는 말을 내뱉지 못한다. 

 

“마리씨. 일을 해결하는 방식에는 말이죠. 굉장히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단순히 사과를 해서 일을 무마시키려는 사람도 있을 테고. 어떤 사람은 법으로만 해결하려는 사람도 있겠죠. 헌데 여기 찾아오는 사람들이 법에 대해서 알고 싶어서 온 게 아니잖아요. 도움이 필요해서 온 거지. 변호사니까 무조건 법으로 해결해야겠다 이런 생각보다는 본인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을 한 번 생각해 봐요.”

 

고민하는 백마리에게 천지훈이 건네는 이 말은 <천원짜리 변호사>가 그리는 법정물이 여타의 그것들과 어떻게 다른가가 잘 드러나 있다. 법이든 법이 아니든 천지훈이 꿈꾸고 있는 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을 돕겠다는 것이다. 물론 법적 지식이 필요하겠지만, 그렇다고 꼭 법정 안에서의 해결만을 생각하지는 않겠다는 것. 

 

결국 백마리는 언론에 천영배가 자신의 차량을 파손한 경비원에게 수리비를 요구하지 않았다는 거짓 미담을 터트리고, 대외적인 이미지를 유지하려는 천영배의 심리를 이용해 차량 분쟁을 해소하면서도 경비원이 일자리를 잃지 않게 만들어줬다. 하지만 갑질을 일삼는 천영배에 대한 처절한 응징은 천지훈의 몫으로 남겨졌다. 천지훈은 천영배가 모시는 모회장의 변호를 맡아 집행유예로 풀려나게 해준 후, 그를 등에 업고 천영배에게 거꾸로 갑이 됐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갑질에는 갑질로 대응해준 것. 

 

또 천지훈은 모회장이 구치소에 갇혀 자리를 비운 사이 천영배에게 갑질을 당해온 직원들의 집단 소송 대리인이 되어 그 사실들을 폭로하고, 기상천외하게도 모회장에게 빙고게임을 제안하며 자신이 지면 고소를 취하할 것이고 자신이 이기면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와 보상 재발방지 약속 그리고 천영배를 사직시켜달라고 한다. 그간 구치소에 모회장을 면회하며 빙고게임을 계속 이겨온 천지훈이 그 승부욕을 건드려 게임에 응하게 한 것이다. 

 

결국 빙고게임은 숫자를 불러줄 파트너로 백마리가 지목되면서 사실상 승부는 끝나버렸다. 둘 만이 아는 법 조항들을 암호처럼 주고 받으며 천지훈이 원하는 숫자를 백마리가 추리해 불러주는 방식으로 게임이 진행됐던 것. 물론 법정에서 벌어지는 법의 대결이 아니라, 빙고게임으로 사건을 해결한다는 건 황당하고 어찌 보면 유치하게까지 보인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통쾌하게 느껴지는 면 또한 있다. 그건 어찌 보면 법으로는 해결되지 않는(혹은 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안들이 우리네 서민들의 현실이라는 점에 대한 공감 때문이다. 

 

천지훈이라는 캐릭터는 그래서 마치 이러한 부조리한 법을 조롱하고 풍자하는 인물처럼 보인다. 그 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그렇게 법을 잘 아는 이들이 오히려 가진 자들이 잘못을 저질러도 법망을 벗어나게 해주기 위해 법을 활용하는 부조리한 현실을 꼬집고 있는 그런 인물. 그래서 이러한 돈키호테 같은 판타지 캐릭터는 비현실적이지만 그 자체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잡아 끈다. 

 

그 비현실적인 캐릭터를 코믹함과 진지함을 오가며 실제로 존재했으면 싶은 인물로 형상화해내는 것에 있어 남궁민이라는 믿고 보는 배우의 역할과 아우라를 빼놓을 수 없다. 그의 든든한 연기력이 있어 <천원짜리 변호사>의 유치함이 가벼움으로 치부되지 않고 세태를 꼬집는 속 시원한 판타지로 그려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사진:S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