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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운도 조이현도 매력 폭발한 이 퓨전사극의 특별함

D.H.Jung 2023. 12. 17.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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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례대첩’, 이 퓨전사극은 무엇이 달라 정주행을 부르나

혼례대첩

퓨전사극은 뻔하다? 글쎄 적어도 KBS 월화드라마 <혼례대첩>은 예외다. 아니 예외 정도가 아니라 이 퓨전사극은 과거의 것들과 확연히 선을 긋는 진화의 면면들을 갖췄다. 거기에는 몇 가지 근거들이 있다. 

 

그 첫 번째는 ‘옛이야기 사극’을 흥미롭게도 복원해냈다는 점이다. 사극하면 언제부턴가 옛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와 관련된 어떤 것이라는 경향이 생겼다. 역사를 제대로 다루는 정통사극, 역사와 상상력을 적절히 섞은 퓨전사극, 현대적 장르를 옛 역사적 시공간에서 재해석하는 장르사극 등등. 그래서 역사에 무게를 주면 무거워지고 상상력에 무게를 주면 가벼워지는 방식의 사극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과거에 사극 중에는 <전설의 고향>처럼 옛이야기나 설화 등을 마치 할머니가 들려주는 것처럼 풀어내는 사극도 있었다. <혼례대첩>은 바로 그 “옛날 옛적에...” 하며 전개되는 옛이야기 같은 면모들이 있다. 등장하는 임금(조한철)이 그저 ‘임금’으로 불리는 것도 그렇고, 특히 ‘맹박사댁 늙은 아씨들’ 결혼시키기 서사 같은 게 그렇다. 또 혼례 첫날 공주가 사망하는 사건을 겪어 재가도 못하고 출사도 못하게 되어 ‘울분남’이 된 심정우(로운)의 이야기도 그런 푸근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옛이야기의 느낌을 준다. 

 

이 옛이야기 같은 사극은 그래서 편안하게 볼 수 있으면서도, 마치 심정우에게 갑자기 닥친 저주를 정순덕(조이현)이라는 인물과 만나 인연을 엮어가며 풀어내는 수수께끼 같은 재미가 있다. 겁도 많고 무술 실력은 아예 없지만 뭐든 글로 쉽게 배우고 익히는 심정우는 그래서 천재과에 속하는 주인공으로 복잡미묘한 사건들을 풀어나간다. 

 

결국 정순덕이 좌상 조영배(이혜영)의 며느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래서 좌상이 역모를 한 사실을 알면서도 그저 살인죄로 처벌하기 위해 임금을 설득시키고 또 묘안을 제시하는 심정우는 풀어야할 난관들을 재치와 슬기로 풀어내는 옛이야기 주인공을 닮았다. 그는 조선사회의 완강한 유교적 문화 속에서 울분남이 된 자신이 양반집(그것도 좌상댁의) 과부 며느리인 정순덕과의 사랑을 이룰 수 있는 묘안을 찾아내야 하고, 또 공주의 죽음과 관련된 미스테리를 풀어냄으로써 임금의 정적들을 몰아내야 한다. 그 과정 하나하나가 몰입감을 줄 수밖에 없다. 

 

두 번째는 이 이야기를 구현해내는 데 있어서 미학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미장센을 사극에 부여했다는 점이다. 이 작품은 모든 시청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듯 ‘눈이 즐거운’ 사극이다. 연등회나 단오날 풍경은 그 아름다운 등불들과 그네 타고 씨름하는 풍속들이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것처럼 드라마에 담겨졌다. 색감이 뛰어난데다, 조명이 더해지고 게다가 색색의 한복들이 멋을 살린 이 드라마의 미적인 연출은 아마도 해외에서 보면 반색할만한 것일 게다. 당장 한국에 와서 한복을 입어보고 고궁을 걸어보고 싶을 만큼. 

 

이러한 미적인 완성도를 더해 넣자, 퓨전사극이라고 하면 어딘지 가볍게 느껴졌던 것들이 무게감을 갖게 됐다. <혼례대첩>은 물론 보는 이들을 계속 미소짓게 만드는 코미디적 요소들이 곳곳에 등장하지만, 심정우와 정순덕이 때론 진지해지고 애틋해지는 순간에는 아름다운 한옥 정경과 어우러져 기막힌 심도를 만들어낸다. 고즈넉한 한옥 대청마루에 앉아 고개를 한껏 숙인 소나무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모습은 그래서 그 정조까지 담아낸 한 폭의 풍속화 같은 느낌을 준다. 

 

세 번째는 현대적인 연출과 균형감 있는 연기자들의 연기다. 이 드라마는 특이하게도 매회 도입 부분에 현대적인 로맨틱 코미디에서나 자주 쓰던 ‘인터뷰 형식’의 연출이 등장한다. 카메라를 바라보며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이 연출방식은, 그 회차에 벌어질 사건 속에서 이 인물들이 어떤 역할을 할 거라는 걸 암시하면서, 동시에 이 작품이 사극이긴 하지만 현대적인 장르적 해석이 들어간 작품이라는 걸 분명하게 해준다. 또 연등회에서 ‘광부1호’ ‘광부2호’ 같은 지칭이 등장하는 대목은, <짝> 같은 연애 리얼리티에 대한 패러디로서 이 작품이 가진 연출의 발랄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러한 자유자재로 풀어내는 연출의 묘미 위에서 배우들의 연기도 균형감 있는 앙상블을 만들어낸다. 박씨부인 역할의 박지영이 드라마의 긴장감을 계속 이어가는 강력한 카리스마 연기를 보여준다면, 임금 역할의 조한철은 준엄한 권위를 내보이다가도 순식간에 긴장을 풀어냄으로써 웃음을 터트리게 만드는 양면을 쥐락펴락 연기해낸다. 맹박사댁 조씨부인(최희진)이 엄격한 자애로움을 드러낸다면, 그 딸들인 맹하나(정신혜), 맹두리(박지원), 맹삼순(정보민)은 저마다 톡톡 튀는 개성으로 시청자들을 기분좋게 만든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칭찬받아 마땅한 연기자들은 주인공들이 로운과 조이현이 아닐 수 없다. ‘안구 정화’의 배우로 ‘얼굴 공격’만으로도 팬들을 반색하게 만드는 로운은 이 작품에서 진지함과 장난끼 가득한 양면을 보여주면서 연기의 폭을 넓혔다. ‘능청스러움’을 더한 연기는 앞으로 이 연기자의 연기에 보다 다채로운 면들을 만들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또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 주목받았던 조이현은 이 작품을 통해 한없이 귀여우면서도 주체적인 면과 동시에 양반가 며느리로서의 기품까지 역할에 부여하는 연기를 보여줬다. 

 

그래서일까. <혼례대첩>을 애초 그저 그런 퓨전사극이라 여겼다 막상 보고 난 이들이 정주행을 하게되는 건 당연해보인다. 이건 그저 그런 퓨전사극이 아니라, 퓨전사극의 진화를 보여주고 있어서다. 무엇보다 역사의 진지함에 지나치게 매몰되지 않고, 또 그렇다고 상상력의 가벼움으로 한없이 휘발되지 않는 ‘옛이야기’ 같은 매력을 복원한 건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차근 차근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그 맛이 오랜만에 떠올랐으니. (사진: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