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 오진 날’이 담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사회적 의미
“저, 고통을 못 느껴요.” 금혁수(유연석)는 사고로 편도체에 문제가 생겨 공포도 고통도 못느끼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금혁수(유연석)는 그걸 ‘신기한 능력’이라며, 운전을 하고 있는 택시기사 오택(이성민)에게 굳이 손바닥을 칼로 긋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모습을 보며 오택은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른다. 마치 제 손을 긋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금혁수는 무표정하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장면은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운수 오진 날>이 이 살벌한 논스톱 스릴러를 통해 담고 있는 게 무엇인가를 정확히 드러낸다. 그건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이야기다. 한 평범한 택시기사가 연쇄살인범을 손님으로 태우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스릴러의 근간은 바로 금혁수라는 사이코패스에서 나온다. 별 이유 없이 재미로 무고한 이들을 살해한 이 사이코패스는 이제 해외로 밀항을 하려 하고, 거기에 택시기사가 말려들게 된 것.
금혁수가 살인까지 아무런 감정없이 하게 된 건 자신은 물론이고 타인의 고통을 전혀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저들이 어떤 고통을 당하는지에 대한 감각 자체가 없다. 하지만 그와 달리 오택은 자신은 물론이고 심지어 사이코패스가 자랑하듯 제 손을 긋는 장면을 보면서도 견디지 못한다. 그러니 금혁수와 오택 사이에는 고통과 공포에 대한 간극이 극명하게 존재한다. 바로 이 간극이 이 작품의 스릴러가 극대화된 이유다.
휴게소에서 누군가 시비를 걸어와 분노를 느낀다고 해도 오택은 화가 날 뿐 그 이상의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만일 폭력을 행사한다면 그것이 타인에게 미칠 고통을 그가 알고 있고, 또 그 폭력이 자칫 자신에게도 돌아올 상처에 대한 공포도 갖고 있어서다. 하지만 고통도 공포도 없는 금혁수는 다르다. 그는 기분 나쁘게 한 그를 그저 살해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마치 자신이 대신 한 것이라는 식의 무용담처럼 오택에게 늘어놓는다.
<운수 오진 날>은 이 차이에서 오는 공포감을 다양한 상황 속에서 스릴러로 꺼내놓는다. 오택이 지나는 차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금혁수 모르게 비상등을 켜고 달리고, 무언가 위급한 상황에 놓였다는 걸 알게 된 한 차량의 사내들은 두려우면서도 오택을 도우려 한다. 오택이 처한 고통을 공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혁수는 그들마저 잔혹하게 살해한다.
원작 웹툰에는 없는 캐릭터지만 드라마 리메이크에 새롭게 창조된 황순규(이정은)는 그래서 금혁수와는 정반대에 서 있는 인물이다. 아들을 죽인 금혁수를 추적하는 이 엄마는 자신이 느끼는 고통만큼 오택이 느낄 고통도 공감한다. 금혁수가 오택의 딸마저 납치 감금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복수와 처벌만큼 딸에 대한 오택의 절절한 마음을 이해한다. 금혁수에게 협박받으며 어쩔 수 없이 그를 돕는 오택이 자신마저 따돌리려 해도 그걸 이해하는 것이다.
‘타인의 고통’이 어떤 지를 그 누구보다 절절하게 아는 황순규는 금혁수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그에게 공격받아 죽어가는 한 사내를 발견한다. 황순규는 죽어가는 사내의 손을 잡고는 하는 말은 그래서 너무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내가 옆에 같이 있어 줄게요. 좋은 것만 생각해. 사랑하는 사람들, 가족들 떠올려 봐요.” 그건 마치 죽어가는 아들에게 미처 하지 못했던 말을 사내를 빌어 하는 말처럼 들린다.
아들의 고통을 누구보다 자신의 고통처럼 느끼기에 낯선 사내의 고통 또한 절감하며 그 옆을 지켜주려는 황순규의 모습은, 아무런 고통도 공포도 없는 걸 ‘신기한 능력’이라 치부하며 살인행각을 벌이는 금혁수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그리고 그 공감은 죽어가는 사내에게도 그대로 전이된다. 황순규의 말을 듣던 사내가 힘겹게 그의 손을 잡아주는 것.
<운수 오진 날>은 눈을 뗄 수 없는 스릴러의 진가를 보여준다. 그래서 전체 10부작 중 6부작까지 공개했지만 그 6회를 단번에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몰입이 나오는 건 여기 등장하는 금혁수라는 괴물에 의해 끔찍한 고통과 공포를 겪는 오택이나 황순규 그리고 무고한 피해자들을 바라보며 그 고통과 공포가 끝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이를 통해 <운수 오진 날>은 인간다운 것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나의 고통만큼 타인의 고통이 어떠하다는 걸 느낄 수 있는 바로 그것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는 거다. 그리고 이건 굳이 연쇄살인범 같은 살벌한 범죄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게다. 자신이 하는 어떤 말과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상처와 고통을 주는 지 모르는 이들을 우리는 정치, 경제, 사회 곳곳에서 마주하고 있으니. (사진:티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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