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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영은 어째서 일할 때 가장 빛날까

D.H.Jung 2023. 12. 17.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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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박씨 계약결혼뎐’, 조선도 현대도 일하는 이세영이 빛나는 이유

열녀박씨 계약결혼뎐

“박연우란 이름은 늘 내 것이 아니었소. 그래서 부러웠어요. 새 조선 사람들이 누구든 제 이름으로 사는 것이.” MBC 금토드라마 <열녀박씨 계약결혼뎐>에서 박연우(이세영)가 그렇게 말할 때 불쑥 이세영이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던 <옷소매 붉은 끝동>의 성덕임이 겹쳐진다. “여기선, 내가 나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 설령 사소한 거라도 좋아. 선택이란 걸 하며 살고 싶어.” 어린 성덕임은 자신의 이름으로 서는 주체적 삶에 대한 갈망을 그렇게 표현한 바 있다.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 성덕임이 이산 정조(이준호)의 구애를 받으면서도 세 번이나 거절의 의사를 표한 이유는 ‘자신을 잃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자신의 주체성을 드러내며 자신을 거부하는 성덕임에 오히려 이산은 더 애틋해지고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열녀박씨 계약결혼뎐>에서도 마찬가지다. 조선에서 현대로 훌쩍 넘어온 박연우가 자수에 남다른 능력을 보이고, 그것으로 계약결혼을 하게 된 강태하(배인혁)를 오히려 돕는 존재가 되면서 이 인물은 점점 빛나기 시작한다. 

 

사실 <열녀박씨 계약결혼뎐>의 초반부는 다소 밋밋하게 느껴졌던 게 사실이다. 조선에서 혼례를 치르지만 첫날밤 남편을 잃은 박연우가 누군가에게 보쌈을 당해 우물에 내던져지는 그 상황 속에서 이 인물의 능동적인 이야기는 별로 등장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우물을 통해 마치 시간의 터널을 빠져나오듯이 현대로 들어오게 된 박연우 역시 이 낯선 세계 앞에 자기 존재의 가치를 드러내기 어려웠다. 

 

그래서 현대에 오게 되어 모든 게 낯선 상황에서 벌어지는 해프닝들이 코미디로 주로 엮어졌다. 초코파이에 매료당하고, 문도 차문도 제대로 못여는 모습이나, 조선 사회와는 너무나 다른 일상 앞에 놀라고 무너지는 모습들이 그것이다. 게다가 돈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이 곳에서 집도 가족도 하나 없는 이 인물이 어찌 자신의 존재를 매력적으로 드러낼 수 있을까 싶었다. SH서울의 부대표인 강태하(조선에서의 죽은 남편과 얼굴도 이름도 같은)의 천거를 받는 조선에서 온 신데렐라 정도랄까. 

 

하지만 조선에서의 어머니와 똑같은 얼굴을 한 한복 브랜드 미담의 이미담(김여진) 대표를 만나고, 그로부터 자신의 재능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박연우의 매력과 존재감은 빛나기 시작한다. 조선에서 다름 아닌 어머니에게 배웠던 자수 실력과 남다른 안목으로 한복 디자이너로서의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 이미담은 그 능력을 알아보고 박연우의 든든한 지지자가 되고, 박연우는 이 능력으로 호시탐탐 강태하를 밀어내려는 민혜숙(진경) SH서울 대표의 공격을 막아낸다.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도 그러했지만, <열녀박씨 계약결혼뎐>에서도 이세영은 일할 때 가장 빛나는 캐릭터를 연기한다. 그가 연기한 성덕임이나 박연우 모두 일할 때 더 빛나는 건 이 남녀 간의 사랑을 담는 멜로 속에 그저 매몰되는 캐릭터를 더 이상 우리가 매력적으로 느끼지 않기 때문일 게다. 사랑에 목매는 게 아니라, 자기만의 영역이 존재하고 거기서 자신의 이름으로 당당히 설 수 있는 존재여야 지금의 대중들에게 사랑받는다는 이야기다. 

 

<열녀박씨 계약결혼뎐>은 그래서 이세영이 전면에서 끌고 가는 드라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매력이 폭발하는 순간에 시청자들도 이 드라마에 반색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5.6%(닐슨 코리아)로 시작해 박연우가 드디어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6회에 9.6%로 시청률이 급등한 게 우연이 아니다. 웃음을 주면서도 사랑스럽고 그러면서도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한 이세영의 매력에 <열녀박씨 계약결혼뎐>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사진:MBC)